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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 춘암에서 하이 월흥리 가려면 타래고개 넘어야

거북이 육지로 걸어다녔다는 전설의 섬 거북섬(가매섬), 임란 때 대군 주둔했던 대군막 사적 남아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8년 06월 13일
ⓒ 고성신문

춘암리 1914년 장춘 신기 입암 합병 지명 따, 동화리 1924년 행정구역 통폐합 송학동 청화동 불려져



5.
춘암리(春岩里)


춘암리는 1914년 3월 1자(조선총독부 경상남도령 제2)로 행정구역을 통폐합 조정할 때 장춘(長春)·신기(新基)·입암(立岩)을 병합해 장춘과 입암의 이름을 따서 춘암리라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이 지역이 사계절 기후가 온화한 봄과 같다하여 봄 춘()자와 선바위가 있다 하여 바위 암()자를 따서 춘암으로 하였다고도 전하고 있으며, 행정리로 춘임·용암포(龍岩浦), 전·입암(立岩), 맥전포(麥田浦) 3개 마을이 있다.


 


▣ 춘암(春岩)


춘암마을은 춘암리를 분도하면서 당초에는 춘암과 신기를 합해 춘암1구로 맥전포와 입암을 합해 춘암2구로 분동하였다가 1986년 6월 30 고성군 조례 제961호로 맥전포를 분동하면서 춘암1구를 춘암으로 춘암2구를 입암으로 그리고 맥전포를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춘암동과 신기동마을이 있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없으나 본 마을에 입촌하여 오랫동안 살았다는 씨족들의 분묘나 족보들을 살펴보아 김해김씨가 1660년경(임진왜란 후)에 입촌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다음에 김녕김씨가 1750년경에 입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거주민의 성씨는 해주최씨, 진양강씨, 천안전씨, 밀양박씨 등 10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해 거주하고 있다.


 


◎ 지명 일화


◇ 타래고개() : 춘암리에서 하이면 월흥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 도로가 없을 때 이 고개를 넘어 왕래한 재로서 타래고개()라 한다.


 


◇ 발막개 : 춘암리 맨끝에 있는 작은 포구로 태풍이 불어도 선박대피에 안전한 지대로 지금은 마을 주민의 선착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질매섬(일명:장구섬) : 마을 앞에 있는 작은 섬으로 섬의 형상이 장구같다 하여 ‘장구섬’이라 하고 있다.


 


◇ 다복산 : 좌이산 우측에 있는 하이면과 경계를 이룬 산으로 이산에 묘를 쓰면 자손이 잘 된다고 하여 ‘다복산’이라 한다.


 


▣ 용암포(龍岩浦)


가룡마을은 고려현종 9년에 고성이 고성현으로 개칭될 당시 하일운면(현 하일면)의 가룡으로 존치한 마을로 마을명을 한자로 가룡(駕龍·伽龍·加龍)으로 썼으나 지금은 가룡(加龍)으로 통일해 쓰고 있다.


 


그리고 본마을은 1986년 6월 30자(고성군 조례 제961)로 용태리에서 분동된 마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구전에 의하면 진주지역에서 피난하여 현 상리면 ‘모종골’로 온 주민이 씨족 싸움에 밀리어 이 곳에서 산능선을 타고 남으로 내려와 지금의 용태리 가룡마을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거주민의 성씨는 함안조씨, 경주이씨, 분성배씨, 성주배씨, 능주구씨, 남원양씨 등 10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해 거주하고 있다.


 


◎지명 일화


◇ 질매섬 : 마을 앞에 있는 섬으로 동백나무가 많으며 바다낚시로 유명하다.


◇ 섬바위(立岩) : 마을 바닷가에 우뚝 서있는 바위로 병풍처럼 생겨 장관을 이루고 있어 이 바위를 ‘선바위’라 하여 마을명을 입암으로 하였다가 지금은 용암포로 바꾸었다.


 


▣ 맥전포(麥田浦)


맥전포는 춘암리의 행정마을로 마을 뒷산에 있는 묘비에 ‘1856 3 3 고성현으로 일운면 선암(仙岩)에 장사 지내다’ (哲廟丙辰 三月初三日 葬干 固城縣 一運面 僊 岩 壬坐之 原)로 된 비문이 있어 이를 미루어 보아 고성이 1018(고려현종 9)에 고성현으로 개칭될 이전의 하일운면 때부터 하일운면의 선암으로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살피건대 당시의 선암은 지금의 맥전포권(麥田浦圈)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맥전포를 중심으로 동으로 하일면 용암포(입암)와 서쪽으로 하이면 입암을 포괄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 3 1에 면의 명칭이 개칭되고 이동의 행정구역이 병합되면서 맥전포가 춘암리에 속하였을 때에도 선암으로 불렸다. 그 후 춘암2구로 분동되고 다시 춘암2구에서 독립된 행정마을로 될 때까지 맥전포는 ‘보리발개’, 하일면 입암은 ‘야안개(雨浦), 하이면 입암은 ‘선바구(바위)’로 별칭되면서 이 셋 마을은 서로 접해 있으면서 그 연안 일대의 바위들이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인들이 노니는 바위 같아서 이 일대를 통털어 ‘선암’이라 일컬어졌을 것이다.


 


이 선암권 중에서도 맥전포는 유독히 보리밭이 많은 갯마을이어서 그 별칭도 ‘보리밭개’였던 것이 행정리로 독립되면서 마을명을 한자(漢字)로 쓰는 과정에서 맥전포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본 마을에 입촌해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창녕조씨 입향조(入鄕祖) 1780년부터 1860년까지 생존하였다.


 


그가 개천면에서 1830년경에 이곳에 이주하였다는 문중의 기록이 있으나 그가 무인향(無人鄕)을 개척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마을은 형성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거주민의 성시는 창녕조씨, 진양정씨, 밀양박씨, 김해김씨 등 여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다.


 


◎ 마을의 지세


맥전포의 지세는 북쪽 와룡산 향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줄기가 이 곳 바닷가에서 주산을 이루면서 동쪽으로 하일면 입암을 경계로 풍수지리상 청룡을 이루고, 서쪽으로 하이면 입암을 경계로 백호를 이룬 지대로 마을 앞바다에 방파제가 길다랗게 설치돼 주작(朱雀)을 이룬 형상이다.


 


마을 앞의 농가섬(弄珂島)은 옛날 선암(仙岩) 동네 사람들이 손바닥 위에 놓인 구슬 같다고 하여 농가섬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주변에 조성된 농경지는 해안지대로 좁은 편이며 수원도 좋지 못한 어촌마을이다.


 


◎ 나루터 주막집 : 옛날 사량섬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이 곳 ‘보리밭개’(麥田浦)에서 나룻배를 타야 했는데 그때 나그네들이 머물던 주막집이 개축은 되었으나 지금도 남아 있다.


 


6. 동화리(東禾里)


동화리는 하나의 법정리로 형성된 마을로서 1924년 3월 1자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하일면의 동화리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화리를 솔복개(松浦)라고도 함은 임진왜란 때 수군 통제사의 통제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산림이 우거져 아름드리 노송이 바닷가를 뒤덮고 있어 ‘솔복개’ 송포동(松浦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분동으로 동명을 송학동(현·동문·대구막·간이골)과 청학동(큰골)으로 불렀으며 한일합방 이후에는 ‘구진’ 또는 ‘동화’라고도 하였는데 구진이라는 동명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본 마을에 입촌한 씨족들의 연대를 살펴보면 밀양박씨가 1240년경에, 그 다음에 남원양씨와 동래정씨가 1630년경에, 김해김씨가 1690년경에 입촌해 현재는 영양천씨, 수원백씨 등 10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다.


 


◎ 사적


◇ 범계(梵溪) : 동화리 소을비포 옆에 있는 만인영(萬仁營)이 있었던 곳으로 후에 영을 당포(唐浦)로 옮겨 갔다고 한다.


 


◇ 소을비포 성지(所乙非浦 城址) : 동화리에 있는 성터로 남쪽으로 사량도를 방패삼아 동화리와 춘암리 사이의 깊숙한 내만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포구의 요쇄지이다.


 


세종실록, 성종실록, 중종실록, 난중일기 등에 소을비포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성의 진영은 조선조 세조 이전에 구축된 것으로 알 수 있으며 통제영이 폐지 되기까지(1894) 존치한 것으로 지금도 성보의 흔적이 남아 있다.


 


◇ 가매섬(거북섬) : 동문 남쪽에 있는 섬으로 전설에 거북이가 육지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선원이 정지시켜 섬으로 변했다고 하여 ‘거북섬’이라 부르고 있으며 옛날 소금가마를 걸어놓고 소금을 제조한 곳으로 ‘가마섬’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 대구만 : 임진왜란 때 대군을 주둔 시킨 곳으로 ‘대군막’이라 부르고 있다.


◇ 기꽂먼덩(기 꽂은 먼덩) : 대구막 남쪽에 있는 산으로 왜적이 이곳에 침입하여 산위에 기를 꽂았다는 먼당이다.


 


◇ 북섬(토끼섬) : 만아섬 서남쪽에 있는 섬으로 지형이 ‘북’처럼 생겼다 하여 ‘북섬’, 또는 토끼처럼 생겼다고 ‘토끼섬’ 이라 부르고 있다.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8년 0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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