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보훈의 달,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명복을 빌며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펼쳐질 6월을 경건히 맞이하며 너의 입영 후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6시에 잠이 깨이더구나.
아마 너의 기상시간이 6시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훈련과정에 있는 너와 같이 나도 긴장하고 있나 보다.
네가 조국의 부르심을 받아 군 입대를 한지도 며칠이 지났건만 난 너를 한시도 잊을 수가 없구나.
지난 5월 29일이 너의 입영일이었지. 집결지는 멀지 않은 창원 39사단이었지만 소집시간인 오후 1시 30분이라는 시간이 그날은 왠지 긴장감을 갖게 하더구나. 평소에 가끔 다니는 길이긴 했지만 너를 입대시키는 그날의 창원 길은 걱정과 아쉬움 등으로 내 머리를 꽉 채웠단다.
너는 입영장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잘 다녀오마며, 잘 지내라며 친구들에게 쉼 없이 휴대전화로 입영 길의 아쉬운 인사를 주고 받았지.
집결지 39사단에 도착해 부대에서 진행하는 순서에 따라 부대 내의 강당에서 교육일정과 너희들이 생활 할 내무반 외 식당 등 몇 곳을 영상으로 시청했다.
또 입소식이 끝난 후 직접 방문해 볼 수 있다고 할 때 여자로서 접해볼 수 없는 주로 남자들의 생활공간인 대한민국의 젊은 군인들의 생활공간 일부분이나마 아들이 있기에 청해볼 기회가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진행순서에 따라 너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너를 돌려세우며 당부할 말들이 많았지만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보면 너의 마음 편치 않을 것 같아 많은 눈물 보이지 않으려, 단지 “몸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건강히 생활하거라”라는 말밖에 못했었지.
그러나 그 짧은 말 속에 모든 당부의 말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너도 알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는 내게서 돌아서 가며 너도 울먹인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내 마음 더욱 아프더구나.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네 생의 내실을 살찌우는 여물음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 나오는 내게 선임 부대원들은 “어머니, 아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지금도 너를 보낼 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단다. 그리고 그 때(지금도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내 스스로를 위로했다.
너와 헤어져 우리(환송인 모두)는 입소식 행사가 진행 될 연병장으로 이동하여 너희들이 마주보이는 단상 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넓은 연병장의 잔디도 기합소리 속에 자라서인지 더욱 푸르고 강인해 보이더구나.
10~20분 후 너희들은 연병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4소대로 나뉘어져 식이 진행 될 장소로 이동할 땐 너를 비롯한 모든 입영 병들은 이미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변해 있더구나.
비록 군복은 입지 않은 차림이었으나 너희들의 정신과 자세는 대한민국 아들로서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듯하였다.
또, 잣대로 잰 듯 한 차렷 자세의 정열, 약 300명에 이르는 입영 병들이 넓디넓은 연병장을 뒤흔드는 듯 한 경례(충성)의 엇박소리 내는 이 한 명 없는 함성을 39사단을 꽉 채웠다.
너희들의 모습은 연병장 푸른 잔디 위에 핀 믿음직하고 강인한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를 연상케 하였다.
또 모두들 두려워하고 힘들다고들 하는 훈련기간과 군복무기간을 너희들은 거뜬히 헤쳐나가리라는 믿음 또한 있었다.
불과 입영 집결 후 짧은 몇 분 사이에 마치 기계로 찍어낸 듯 한 느낌을 받을 정도의 엄청나게 변화 된 너희들의 총명함과 단결심 또 대한민국 군인의 위력에 감탄하였다.
식순 끝으로 부르던 대한민국 군가 진짜 사나이를 합창하는 너희들은 우리의 아들 정녕 대한민국의 멋진 사나이임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