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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여 수행하는 스님은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다. 청정한 계행을 지니고 학업을 닦고 자신의 학업취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널리 퍼트리며 도량(道場)을 잘 가꾸고 지키는 일이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평생을 방심하지 않고 실천에 전념한다.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딱따구리와 풀 벌레 소리로 가득한 남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보광사의 도홍 스님을 만나다.
죄수보다 불완전한 삶
“이 세상 모든 생명체와 물체 본래의 주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주어진 것이지요. 그것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대한 선을 끊는 행위까지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가진 자는 그것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며 집안 곳곳 CCTV를 설치해 감시하는 풍경은 교도소에 갇힌 죄수보다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라며 물질화로 변화된 세상에 도홍스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잘사는 세상
“물질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이죠. 이 모든 것을 일찍 깨달은 부처님은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버리고 출가를 결심합니다. 이후 고행자로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절제하면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부처님은 평생 걸식으로 먹거리의 소중함을 마음속 깊이 새겨 넣고 이를 제자들과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고 말했다.
“걸식 또한 주는 자 모두가 선량하면 자연스럽게 방문을 열게 됩니다. 이는 ‘나와 남이 따로 없고, 천지와 더불어 우리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소박하고 진실하게 살며, 베풀고 이해하고 용서한다면 나와 남이 함께 잘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며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셨다.
아나바다 운동의 원조, 부처님
“지금도 천주교는 여성이 미사를 직접 할 수 있지만 사제는 못하고 있는 반면에 부처님은 2500년 전 여성을 수행자를 넣었고 여성을 비구니 스님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IMF 겪을 당시 아나바다 운동 열풍이 일어났는데 이의 원조는 부처님입니다. 분소의(糞掃衣)로 더러운 누더기 조각을 빨아서 옷을 꿰맞춰 입을 정도로 검소해 소비가 적어 남용 또한 없었겠죠?”
부처님의 제자
“저의 보광사 신도님들이 남몰래 봉사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신도님들에게 봉사활동으로 절을 하러 오지 못해 미안해 부처님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럼 전 절에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봉사 또한 사회의 보탬이고 부처님 제자 가르침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당신 또한 절 몇 천 배 하는 신도님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신도님들의 가치를 평등하게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그분의 생애를 당신이 오시는 날에 깊게 되새겨 봅니다.” /이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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