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갑자기 수업이 중단되었다.
2교시를 시작하자마자 교실 앞문이 열렸고 쪽지를 받아 읽어보신 선생님께서 서둘러 책가방을 챙기라고 하시더니 ‘한 눈 팔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라’는 말을 몇 번씩 하셨다.
우루루 교문 앞으로 나왔는데 어떤 아이가 길에 귀를 대면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 하나가 신작로에 납작 몸을 낮추자 우리들도 덩달아 귀를 길 위로 가져갔다.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고 멀리서 들어오는 전차 바퀴 소리에 놀라 얼른 몸을 일으켰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이 하나씩 흩어지고 나 혼자 남아 집을 향해 부지런히 종종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면서 너무나 뜻밖의 광경에 놀랐다.
넓은 길-2차선 정도의 길이었다-에 사람들이 꽉 모여 있는 것도 처음 보는 일인데 우리 앞집이-그 당시 부산 시장 집 이었다-불길에 싸여 있었다. 한달음에 뛰어와서는 군중들을 헤치고 집 앞에 오니 대문 앞이 물바다가 되어있어 또 한번 가슴이 철렁했다.
집으로 곧장 가라고 하신 선생님 말씀이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늘 열려있던 대문도 잠겨있었고 급하게 대문을 열어주는 아랫방 아주머니는 내게 꼼짝 말고 집 안에만 있으라고 하신다.
1960년 4월 19일이 불길 속에 타고 있었다.
정치니 데모니 하는 것들을 알 수 없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타오르는 불길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갑자기 보따리 하나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옷가지들이 흩어지면서 떨어졌다. 미처 피하지 못한 가정부의 옷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자 이름도 모르는 큰언니가 걱정 되었다.
어느 여름날에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우리 집 우물 뒤에 몸을 낮추고 있었다. 숨 죽여 술래의 동정에 귀를 바짝 세우고 있었는데 술래의 발소리 대신 목덜미 위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살며시 들어 살피니 앞 집 2층 베란다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언니가 웃으면서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처음 보는 언니였다. 하기야 우린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도 몰랐다. 푸성귀가 자라던 밭에 커다란 집이 지어졌고 울퉁불퉁하던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더니 어느 날 부산 시장이 이사를 왔다.
성문처럼 큰 대문은 까만 세단차가 움직일 때면 잠깐 열렸다가 닫혔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오가는 가정부는 작은 문을 사용했다.
어쩌다 열리는 큰 대문 틈새로 보이던 파란 잔디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던 앞집에 들어가게 되다니. 손질이 잘 된 파란 잔디밭을 보는 순간 달력 속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물이 반 쯤 채워진 수영장도 있었다.
엉거주춤 서있는 우리들에게 잔디밭에서 놀다가라고 말하는 언니의 손에는 먹을 것이 들려 있었다. 커다란 유리접시에 갖가지 과자들을 담아왔는데 모양이나 맛이 구멍가게에서 사먹는 건빵과는 너무 달랐다. 먹기가 아까우리만큼 예쁜 비스킷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우유와 버터의 이국적인 냄새와 함께 살살 녹았다.
돌아오는 길엔 우리들 주머니에 과자를 채워주던 언니를 여름이면 만날 수 있을 것-서울서 대학을 다니는 언니는 방학이면 집에 머물렀다-이런 생각을 했는데 여름이 오기 전에 이런 난리가 났으니 이제 언니를 만나볼 길이 없겠다는 생각은 불 꺼진 뒤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허전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강한 여름 햇살을 등지고 걸어오던 언니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되살아난다. 난생 처음으로 ‘초대’ 받았던 그 여름의 싱싱함과 풍성함을 곱게 기억하고 있지만 단 한번 만난 언니의 얼굴을 그려낼 수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기도 하지만.
4.19 기념식을 할 때면 그 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잘 살고 있을까? 걱정이 되곤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양조장 집 며느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4.19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들은 노인이 되었고 젊은 세대들은 역사책에서 보는 동학란과 별로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만 받아들이겠지만 70을 바라보는 그 언니에게는 여전히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날이 될 것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처럼.
내가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간혹 그 언니라면 참 푸근한 엄마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쯤은 다정다감하고 인자한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4월이 아프기 보다는 아름답고 따뜻하게 바뀌었다. 물론 생기 넘치는 연두빛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이 왔고 언니를 아니 넉넉한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친구들이랑 이웃에게 행복한 4월이 되라고 문자를 날린다.
제일 먼저 그 문자를 보내고 싶은 곳은 번호를 몰라 여기저기 날아다닐 꿀벌 날개에 얹어 보낸다. 어디에 계시든지 건강하고 평화로운 얼굴로 여생을 보내셨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