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위를 유난히 타는 체질이라 겨울에 노상에서 장을 보기가 만만치 않다.
입춘과 우수가 지났지만 이번 5일장 역시 한겨울 차림을 하고 나서도 추에 떨어야만 했다.
하지만 내 추위와는 달리 노상에는 어느새 연둣빛 봄이 와 있었다. 냉이, 달래, 쑥이 여기저기 나와 있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매생이와 다시마도 있다.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쪽파도 있다.
하기야 버들강아지 눈 뜨고 매화도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봄소식이 이미 전해지기도 했으니….
새해 들어 쑥국을 세 번 끓여 먹으면 한 해 동안 잔병치레 없이 무사히 잘 넘긴단다.
쑥은 여리고 귀하다. 가격도 비싼 편이라 쑥을 파는 할머니에게 ‘좀 더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야! 야! 그런 말 하지마라. 검불 뒤져가며 쑥 캤더니 손이 다 갈라졌다”며 꺼칠꺼칠한 손을 내밀었다.
이렇듯 장터에서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대부분은 이 노점상 할머니들이다.
지난 가을 햇빛에 말려 노상에 내놓은 호박, 가지, 시래기, 피마자 잎, 박 속같은 나물도 이 어머니같은 할머니들 덕분에 맛볼 수 있으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저녁은 봄 도다리 쑥국에다 쪽파 겉절이와 다시마 쌈, 매생이 전으로 맛깔스럽게 차려 봐야겠다.
“뻥이요!” 크게 외치는 뻥튀기 장수 목소리와 터뜨리는 소리에 놀라 돌아봤더니 튀밥이 하얗게 쏟아져 나왔다. 군침이 돌며 한 주먹 집어 먹고 싶다. 다음 장날에는 강냉이 한 되 튀겨 실컷 먹어야지.
짧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해 서둘러 장을 봤다. 시금치 한 묶음을 사고 있는데 옆에서 “새댁아, 고구마 줄기랑 취나물 떨이해라. 막차시간이 다 돼서 그런다. 반값만 주고 가져가라”며 까만 비닐봉지 채 건네주는 할머니.
엉겁결에 봉지를 받아 쥐었다. “볶을 때는 참기름 넣지 말고 식용유에 볶아라”며 친절하게 요리법도 일러준다.
‘새댁’ 소리에 기분이 좋아 어서 계산을 했다. 돌아서고 보니 아무래도 상술인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엿 먹으시오!”라며 우스개 소리로 장꾼들을 불러 모으는 엿장수 아저씨. 넉살 좋은 말투를 보아하니 상술이 보통이 아니다.
갖가지 나물 등을 사고 보니 열 손가락에 비닐봉지들이 주렁주렁 걸렸다. 손가락 끝이 저리고 아팠다.
재래시장에도 쇼핑 카트를 비치해 두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냄새 가득한 나물로 맛난 반찬을 준비할 생각에 봄처녀 마냥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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