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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며칠 앞둔 시점에 이 글을 쓴다. 아주 경건하게 쓴다. 이레 지나면 설이고 엿새만 지나면 까치설 이다. 묵은 설이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렇게 꼬마들이 귀여움 떨면서 노래한 바로 까치설날이다. 바로 묵은세배를 다니는 귀한 까치설날이다.
왜 음력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 했는지 자못 궁금하지만 꼭 집어서 알 수는 없다. 길조(吉鳥)로 믿어진 새가 까치라서 묵은 한 해 마지막으로 길하고 정(淨)하게, 맑고 곱게 넘기자고 또 복되게 보내자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다름 아닌 ‘까치설’이 아닐까 싶지만 장담할 건 못된다.
이제 와서는 세상이 아주, 아주 잘 못 돌아간 나머지 그 귀한 까치설날도 또 묵은세배도 모두 까맣게 까먹고 말았다. 참 못 난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도 까치설날과 묵은세배를 그리움 가득하게 되돌아보자. 잃어버린 귀물 찾듯이 되살펴 보자.
“ 묵은 한 해, 안부 자주 여쭙지 못했습니다. 격조(隔阻)한 사이에 큰 탈 없이 잘 지나셨는지요? 여기 과일 몇 알은 제수에 써주시면 제가 고맙기 이를 데 없겠습니다. ” “지난 한 해 동안, 신세 너무 많이 지고도 그냥 저냥 넘어 간, 제 잘못 허물을 조금이라도 벗을까 하고 왔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여름에 진, 묵은 빚 여태 갚질 못했습니다. 요긴하게 참 잘 썼습니다만 제가 힘이 없어서 그만 여태껏 묵히고 말았슴을 사과드립니다. 오늘에야 겨우 여기 원금 갖고 왔습니다. 이 굴비 몇 마리는 제 감사와 사과의 뜻이오니 귀찮다 마시고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이런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이 바로 묵은세배다. 그게 뭘 의미할까? 요즘 젊은 세대는 궁금할 것 같다. 거기엔 여간 큰 뜻이 담겨 있는 게 아니다.
묵은 설과 묵은세배는 한해의 총결산이고 연말 정산 같은 것이다. 지난 일 년을 깨끗하게 청소하자는 것이다. 마음의 때 말끔히 씻어내고 마음의 빚 깔끔하게 갚는 행위, 그게 묵은세배다. 돈 빚만 갚아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남에게 신세 져서 마음에 끼쳐진 빚도 갚아야 하는 게 묵은세배다.
묵은 세배에는 감사의 뜻이 사무쳐 있다. 갚을 것 다 갚고 물 것 다 물고 그래서 자기 정화(淨化)를 하자는 것이 묵은 세배을 하는 목적이다. 지나간 한 해 동안의 세월을 씻고, 씻고 또 씻고도 모자라서 헹구는 일이다. 그와 함께 사람들 누구나 그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저지른 크고 작은 죄과(罪過)며 과오를 헹궈내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죄하고 또 용서를 빌었다. 그러면 상대방은 기꺼이 용서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였다. 서로 사이에 화해가 이룩되고 마음은 더 없이 다스해졌다. 정이 새삼스레 두터워졌다. 그래야만 정갈하게 또 엄숙하게 새 해, 설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우리 선인들은 다들 묵은 세배를 다닌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새 해 새날의 해돋이를 부끄럼 없이 우러르게 될 것이라고 다들 믿었었다. 새 마음 지니고 새사람 되어서 동트는 태양 앞에 서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그러기에 묵은세배는 사죄며 뉘우침이었다. 거기 참회도 있었고 고회도 있었다. 지극한 자기반성도 있었다.
묵은세배 다녀온 그 밤은 한 숨도 자지 않았다. 꼬박 같이 바른 자세로 앉아서, 정월 초하루의 새벽맞이, 설날의 새벽맞이를 했다. 왜 그랬을까? 새해 새아침을 정중하게 깎듯이 모셔서 받들자는 것이었다. 어영부영 잠결에 원단(元旦)을 맞이할 할 수야 없다고 다들 다짐한 때문이다.
그래서는 새 해 일 년, 365일을 맑게 깨끗하게 살아가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제 우리는 까먹고 말았다.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렸다. 이제 되살려 내기도 어렵게 되고 말았다.
아쉽게도 귀한 풍습은 가버렸다. 하지만 지은 허물 벗고 마음 빚 갚고 , 이웃끼리 거듭 정을 도탑게 간직코자 하던 그 정신마저 저버릴 수는 없다. 아니 오늘날 그 정신은 더 한층 간절하게 이어받아져야 할 것이다.
참회와 감사! 그 둘에서 고개 돌리면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걸 모른 척하면 인간 관계는 허물어지고 만다는 것을 다함께 다짐 두면서 올해 설을 맞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