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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과 송아지

고성군 상리면 출신 경남문학 신인상 등단
박귀희경남문협회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2월 08일









▲ 박귀희 경남문협회원

 


서랍을 여니 반지 통이 보인다. 두 아이의 돌 반지가 한 개씩 들어있다.
 몇 년 전 시골에 계신 시아

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들의 돌 반지를 팔아서 송아지를 산다기에 한 개씩만 남겨두고 모두 갖다 드렸다.
그것으로 송아지를 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얼마 후 시댁의 마구간에는 아들의 이름표가 달린 잘생긴 송아지 한 마리가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이 시골 가는 날이면 마구간의 소들은 정신이 없었다. 마당에 쌓아둔 볏 짚단의 지푸라기를 뽑아다가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렸다. 자기네들의 금반지가 송아지로 둔갑되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마당 어질러진다고 야단을 쳐보지만, 은근슬쩍 송아지를 들여다보고 싶은 맘은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송아지는 무럭무럭 자라서 어미 소가 되어 새끼를 낳았다.
그 송아지는 다시 어미 소가 되고…. 그러기를 몇 차례였던가. 팔려간 어미 소는 돈이 되어 고스란히 아들이름의 통장으로 입금이 되었다.
 아버님은 아이들이 대학교에 갈 때까지 살아있겠느냐며, 생전에 손주들 등록금이라도 마련해주고 가고 싶다고 하셨다.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아침마다 허리가 휘도록 마구간의 쇠똥 치는 일을 하셨다.
 처음에는 송아지를 보기 위해서라도 시골에 가고 싶어 안달하던 아이들도 커가면서 조금씩 시들해져갔다. 해와 더불어 늘어만 가는 나이에 비해 아버님의 일손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럴수록 손주들이 더 많이 보고 싶었을 것이란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쑥쑥 자라나는 송아지를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외로움에 대한 아버님의 노후대책의 방안이었을지도 모른다.
팔려가면서 뒤돌아보는 어미 소의 멀뚱멀뚱한 눈망울에 속울음 삼키며 남겨진 송아지를 손주 대하듯 어루만졌을 것이 눈에 선하다. 그런 날에는 거나하게 약주를 드신 아버님의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전해져왔다.
 아들의 통장을 펼쳐본다. 두 아이의 등록금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돈이 들어있다. 통장에는 몇 해에 걸쳐서 아버님의 이름자가 또박또박 새겨져 있다. 돈이 통장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아이들에게 통장을 보여주었다.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나도 덩달아 들떠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있는 두 아이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아버님은 입버릇처럼 남자인 당신이 먼저 가야한다고 하시더니 꽃피는 봄날에 홀연히 떠나셨다. 몸이 조금 불편하신 듯하여 검진하러 가신다더니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시고 말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미처 통장을 만들어주지 못한 막내 손주들이 내내 걱정이었다고 한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부조금으로 마지막 통장을 만들었다. 아버님의 뜻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평생을 농사와 소를 키우며 살아오신 분이다.
해가 바뀔 때면 지긋이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점을 쳐보며, 소 값의 오르고 내림새를 가늠하는 모습은 마치 도인을 닮은 듯 했다. 소 값이 폭락하기 전에 살찌운 소는 내다가 팔고, 값이 폭락했을 때는 송아지를 사들였다. 이러한 삶의 지혜로 자식들을 키웠으리라.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주인 잃은 외양간의 소들도 떠나갔다.
 나른한 오후 단잠에 취한 귀를 간질이던 슬근슬근 소의 되새김질 소리도, 빗소리로 착각하여 밤잠을 설치게 하던 세찬 오줌줄기소리도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산 너머로 해가 빠지면, 아버님은 옷자락의 검불을 훌훌 털어 내면서 마구간의 소들을 살핀다. 그리고는 짬짬이 갈증난 목을 적시던 막걸리의 얼얼한 취기에, 하신 말씀을 또 하시며 허허롭게 웃으셨다. 이제는 동네방네 다니시며 며느리 자랑해줄 아버님이 안 계신다.
 을씨년스럽던 겨울을 보내고 따사로운 햇살이 찾아온 봄날에, 아이들과 함께 시댁의 텅 빈 마구간 앞에다 매화나무를 심었다. 아버님이 자식, 손자들을 위하여 평생을 소를 키워왔듯이, 매실을 얻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땅을 파는 법부터 배워야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음 세대를 생각해보는 내 모습이 은연중에 아버님을 닮고 싶음일까. 나무를 심고 있는 우리들을 쳐다보며 옆에서 아버님이 웃고 계신 듯 했다. 텅 비어버린 마구간이지만, 문고리를 살짝 잡아당기기만 하면 그 속에서 송아지들이 쏟아져 나올 것 만 같다.

박귀희경남문협회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2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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