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09 10:47:4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특별기고

산내음

속세에 살면서 소망 하나 두고 삶을 살아가는 인생
백필기재경향우(수필가)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2월 03일
ⓒ 고성신문











커다란 흙더미 위에, 영겁의 무량한 세월을 두고, 눈비를 맞으면서, 기이하게 솟아오른 우람한 바위들.


 


그 틈 사이로 뿌리내려 수많은 연륜을 거듭하는 동안 모진 고갈과 싸늘한 풍상우로에 시달리면서, 난쟁이가 된 나무들의 찬 이슬에 새빨갛게 멍든 잎새를 본받아, 아래로 아래로 유행되어 맨 아래 초랑이까지, 선혈 같은 붉은 단풍이, 바람 부는 벌판의 불길처럼 훨훨 타올라 만산홍엽의 요원이 되었다.


 


추산에 만연한 단풍은 빠알갛게 보이지만, 근접해서 자세히 보면 주홍색, 빨강색, 검붉은색이 있고, 그보다 좀 연한 색을 띈 것들도 있다. 빨강색에 보라색을 겹치고 초록을 겹친 나뭇잎이 있는가 하면, 탐스러운 노랑잎, 주황색 잎도 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샛노란 형광색 단풍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우며, 갈색, 파랑 등, 삼색 유화물감 세트의 색깔로써도 부족하여 채색을 섞어서 색을 내는 조색솜씨를 발휘해야만 연출될 것 같은 아름다운 색깔들로 용모가 다기한 심산유곡에 형형색색으로 조화롭게 배색하여 흐드러지게 수를 놓았다.


 


외아하게 솟아오른 산척에서 뻗어 내린 웅장한 산릉석의 척릉을 굽어서 산호를 끼고 산곡을 굽이굽이 감돌아 산비탈을 내려 산협을 거슬러 돌아서 나와 계곡을 내리 잇는 심산궁곡의 깊숙한 협곡에 흩어지듯 붙박힌 모서리 닳은 바위 사이로, 하아얀 물줄기가, 가득 머금은 찬란한 산색을, 산명처럼 해맑은 소리로 도란도란 내뱉으며,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명경같이 맑은 수면위로 노오란 나뭇잎 빠알간 단풍잎 배가 동그라미 그리며 떠돌다가 바위를 스쳐 흐르는 급류를 만나 빠지는 듯 떠나가지만, 사공 없는 배라, 예고 없이 만난 작은 폭포를 피할 길이 없다. 폭포 아래에 패인 조그마한 웅덩이의 잔잔해진 물속에 비친 흰 구름 속으로 유유히 헤엄치는 물 빛깔을 닮은 산천어가 날렵하게 유영하는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고, 예까지 쏟아지는 물살을 헤치고 헤엄쳐 온 유영능력이 예사롭지 않아 가히 탄복할 만하다.


 


소슬바람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단풍잎 사이로 날아든 산새의 나래소리에 고개 돌려 눈길이 따라가지만 작은 멧새의 가느다란 지저귐이 있을 뿐 다시 또 고요 속으로 되돌아가는가 싶더니 한참 후에야 푸르르 나는 이름 모를 산새의 멀어져가는 예쁜 모습 뒤에는 노오란 단풍잎이 흩날려 뱅그르르 돌면서 사뿐히 내려앉는다.


 


계절 따라 찾아드는 원색 옷 입은 등산객들의 신기해하는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는 다람쥐의 귀여운 재롱을 보면서 가을 산의 아취가 더 해져 산행의 즐거움이 더욱 고조됨을 느낀다.


 


넝쿨 얽힌 산길을 돌아서 올라 넝쿨 잎 아래로 매달려 열린 산다래를 맛보면서 한 움큼 따 모았다가 일행에게 뒤쳐진 발걸음을 단숨에 따라잡기에는 숨길이 너무 가빠 마음만 먼저 갈 뿐 육신은 뒤로 쳐지고 만다.


 


산험궁곡을 지나서 산모롱이를 돌고 바윗길을 오르면서 아직도 더 가야하는 중봉을 바라보는 눈가에 이마를 타고내린 땀방울이 스며들어 닦아내는 수건이 따가워진 눈을 진정시키기에는 너무 젖어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 벼랑위의 바위 끝에 앉으며 마르지 않은 땀을 닦으면서 굽어보는 무애한 주홍빛 경개는 가을 산바람보다 더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가슴 가득하고도 넘칠 것만 같은 절승의 경이로움에 저절로 탄성이 질러짐은 어이 소양이 부족한 소치로 치부하랴.


 


해가 중천에 이르려 하는 늦은 아침나절에도 채 걷히지 않은 산자락의 골짜기에 깔린 뿌연 안개 속으로 아련하게 보이는 면사포 안으로 살며시 고개 숙인 신부의 아리따운 홍안의 용자 같은 유난히 붉은 단풍이 더욱 아름다워서 산의 운치를 돋우어 준다. 산명수청한 산하를 굽어보면서 찬란한 산경에 매료되어 심원으로 들어가 미수한 풍광을 즐기며 자연과 더불어 산가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속세간의 사회에 살면서 살아가는 영광을 누리고도 못다 이룬 소망하나 두고 삶을 마감하고 나서야 동산에 들어가 자연으로 귀의하게 된 인걸들의 영면의 터전을 이제 와서 다듬어본 들 어찌하여 허무하고 무상함이 없어지겠는가.


 


깎아 세운 듯이 준초하고 창연한 산곽의 천태만상 입석들이 태고 적부터 물려받은 이끼 옷 입고 장엄하게 열병하는 군사처럼 도열한 틈 사이로 뿌리내려 잘 길러져 온 해묵은 분재들이 멋진 맵시를 자랑하면서 개선장군처럼 의젓하게 양지바른 벼랑에서 서 빠알간 단풍잎 손을 흔들어 반긴다.


 


낙엽 구르는 중봉 위의 산길을 따라 하늘 가까운 곳으로 오를수록 더 키가 작은 나무둥치에 더덕더덕 불거져 붙은 나이 먹은 겉껍질만 왕성한 난쟁이나무들의 군상 사이로 단풍잎 잃은 앙상한 가지가 티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을 손가락질 하고 있다.


 


마른 입을 적시기에는 수통에 담긴 물이 너무 적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려는 천상바래기 목이 한참 후에야 바로 서지만 목 안까지는 물이 도달하지 않는 것 같아 적게 담겨진 물통이 원망스러워도 이미 하늘에 맞닿은 산마루가 너무 가까운 곳이라 샘물을 찾아 나서기에는 너무 늦어 마른 침만 자꾸 삼킬 뿐 목 안이 점점 말라들어 갈 때까지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몇 개 넣어 온 과일이 갈증을 해결해 준다.

백필기재경향우(수필가)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2월 03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