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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추고 정이 가득한 마을 대밭등성이 명당자리라 ‘죽동마을’

▶ 고성군 고성읍 죽계리 죽동마을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1월 03일
ⓒ 고성신문

아주아주 넓은 대밭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대밭 등허리쯤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을에 자리를 잡고 보니 앞에 큰 내가 흐르고 뒤는 야트막한

산들이 줄줄이 서있는 꼴이 명당자리가 따로 없다. 그래서 죽동마을은 인물도 많고, 두루두루 평안한 동네였다.



#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죽동













아무리 다녀 봐도 마을에 사람이 없다. 털이 길어 눈을 덮은 강아지만 깡깡 짖어댄다. 또 한 집에는 얼룩강아지가 끙끙 앓으며 안기려고 용을 쓴다. 마을은 강아지들만 사는 듯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처럼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마을을 둘러봤다. 한창 추수할 때라 들에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없다. 얼룩소가 아니라 황소만 헤설피 금빛 울음을 운다.


 


고무줄에 묶인 얼룩똥강아지와 노닥거리는데 들들들들 바퀴소리가 들린다. 유모차를 끌고 할머니가 들어간 집으로 쫓아 들어갔더니 낯선 기자의 방문에 놀라지도 않고 “요 앉아라”하며 마루 한 켠을 내주신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시며 연심 쿨럭쿨럭 기침을 하신다. “할매 오데 아프십니꺼?”했더니 “개~딱가리가 걸리가 이리 안하나. 이 구~(구기자)로 삶아 무모 좋다 캐서 이거 딸라꼬 나갔다가 참말로 죽을 욕을 봤다 아이가”한다.


 


얘길 하다 보니 할머니 시집오기 전 얘기가 나왔다. 창녕서 시집을 왔는데, 17살 먹어서 급하게 시집을 보내더란다. 그때는 제국시절(일제시대)라 처이들을 쏙쏙 잘도 빼가더란다. 그래 할매는 정신대 안가려고 시집을 가버렸더란다. 친구들 중에도 죽은 사람이 더러 있다며 긴 한숨을 쉰다.


 


# 길이 이리 잘든 소로 내보낼라 쿠모...













구기자를 골라내는 할머니 댁을 나와 얼룩똥강아지네 집을 지나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음메~하는 긴 울음과 함께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들여다보니 소 주인아저씨가 황소 앞에서 한숨을 연신 푹푹 쉰다.


 


아저씨네 농장에는 내일모레 출하될 소가 2마리다. 700kg이 넘는 소들이다. 털에 윤기가 자르르한 한우지만 그놈의 한미 FTA 때문에 소값이 말도 안되게 내렸다.


 


송아지 한 마리가 FTA 전에는 300만원씩 하다가 지금은 근 100만원 돈이 떨어져버렸단다. 그래서 육우로 출하해봤자 사료값에 이런저런 것들을 빼면 오히려 손해라며 소 주인 아저씨는 울상이었다.


 


“보낼 거 생각하모 마음이 마이 안좋습니더. 이 소들이 얼마나 길이 잘 들었는데요. 볼라요? 이리 오이라~. 소가 말을 알아듣는다는 말은 처음 들었는데, 마술처럼 700kg이나 되는 소가 어슬렁어슬렁 아저씨에게로 다가온다.


 


그런 소를 바라보는 아저씨 눈에는 말로는 다 못할 마음들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차마 말로는 못하겠는지 소 등만 긁어줄 뿐이다. 소도 아저씨 마음을 벌써 읽어버렸는지 그 큰 눈을 꿈뻑꿈뻑할 뿐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 논 좀 봐라, 을매나 좋노













마을 앞을 시원하게 흐르는 고성천. 총쟁이국밥 얻어먹은 거지들이 목욕했다는 그 고성천이 보이는 평상에 앉아 동네를 구경했다.


 


고성천은 자연형 하천 공사를 한다고 수억을 들여 대공사를 했는데, 할매들은 아무래도 그전만 못한 것 같다고들 한다.


 


옛날에는 고성천이 거지들이 목욕을 하면 때가 싹 벗겨지는 맑은 물이었는데, 지금은 거지들이 씻어도 때가 오히려 묻을 것 같단다. “어차피 저리 좋그로 해놔도 태풍이 오고 큰비 오고 하모 또 떠내리가끼다”란다.


 


3년 전에 이사온 할매가 두 분이 계신댔다. 아까 그 구~자 할매가 그 중 한 분이고, 회관 앞을 뒷짐 지고 걸어가던 쪽찐 할매가 또 한 분이다. 통영에서 한 3년 전에 이사를 왔다는 이 할매는 아들과 며느리가 같이 산단다. “이 동네 와서 봤드마는 논이 억수로 좋은기라. 그래서 고마 이 동네로 왔다 아이가”하며 아들이 농사짓는다는 논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그러고 보니 논이 온통 황금빛이다.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논농사를 지어서 먹고 산다.


 


농사를 짓는 동네라서 그런지 젊은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요새는 하우스 농사도 많이 한단다. 하지만 그 ‘한미 FTA인가 나발인가’ 때문에 농사 지어봐야 밥 먹고 살기도 힘들다고 동네어르신들은 한숨이 주름살만큼 자꾸만 늘어간다.


그놈의 한미 FTA가 우리 농촌을 정말 다 잡겠다. 할매들도 FTA라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 나겠다 한다.


 



뒷산의 푸근한 산세와 앞뜰의 넓은 논 그리고 마을 앞의 길고 맑은 내가 어우러져 참으로 명당자리인 죽동마을. 명당에 묘만 써도 집안이 흥한다는데, 사람 사는 집을 만들어 살았으니 그 복이 오죽했을까. 태왕사신기에 담덕은 주작 현무 청룡 백호가 나타나 힘을 더한다더니 죽동마을은 산과 들과 물과 사람이 있어 마을의 힘이 더해지려나 보다.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1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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