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09 07:01:05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그곳에가면

덕선리 대평마을 태봉산 밑‘붓골’로 불리던 곳

1680년 문화유씨 처음 집성촌 이뤄 살아… 양천 허씨·의령남씨·칠원제씨 등 17성 24본관 거주
김화홍본지논설위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1월 03일

마을중앙 느티나무의 돌무덤에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자정 당산제 지내 마을 안녕을 기원
함안이씨 문중 광조 효행 기려 ‘함안이공정려’ 나라에서 표창 


밤내는 율천의 순수한 우리말, 예전에 물 맑은 밤내천 흘러


9. 무량리(武良里)


본래 고성군 서읍면의 지역으로 무량산 밑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무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무량리로 하여 철성면(고성읍)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무량리는 무량마을 단독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량산<武良, 혹은 無量山 : 해발 581m로 철마산(鐵馬山)이라 불린 적도 있다>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이러한 동명이 붙었다. 내무량(안무량)과 외무량(바깥무량)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 마을의 형성


300여 년 전 청송심씨가 입촌하여 터를 닦았고 그 뒤 100여 년이 지나 김해김씨가 입촌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뒤이어 나주정씨, 고성박씨, 함안이씨 등이 입촌하여 지금은 10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사적 및 기타


◇ 함안이공정려(咸安李公旌閭)


함안이씨 문중의 광조(光朝)라는 분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이다. 그의 사후 조정에서 표창하여 세운 것이다.


 


이광조라는 분은 효심이 남달라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피눈물을 흘리며 삼년간 죽을 마시고 3년상을 지냈으며 이어서 부친이 병환으로 신음 중일 때는 엄동설한에 메추리와 자라를 먹고 싶어 청하거늘 얼음을 깨고 이것들을 잡아 고아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극진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부친이 별세하자 3년간 부친의 산소를 지키면서 소금이 든 음식을 먹지 않고 추운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았다고 한다.


 


정려의 정식 명칭은 증조봉대부동몽교관함안이공정려(贈朝奉大夫童蒙敎官咸安李公旌閭)이다.


 


10.대평리(大坪里)


대평리는 고성읍사무소 소재지에서 서북방 약 2km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본래 고성군 서읍면의 지역으로서 큰 들이 있으므로 한들 또는 대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동, 율촌을 병합하여 대평리로 하여 철성면(고성읍)에 편입되었다가 1945년 광복직후 행정구역 정리에 따라 다시 대평마을과 평촌마을로 나뉘었다.


 


▣ 대평


넓은 들을 가진 동네라 해서 한들 또는 대평이라 불렀다. 예전에는 양동을 앞담, 건천(대평마을의 중앙)을 뒷담, 태봉산 밑을 봇골이라 일컬었고 이를 합하여 대평이라 부르게 되었다.


 


◎ 마을의 형성


이 마을은 1680년대에 문화유씨가 맨 먼저 터를 잡아 개척하였고 그 후 합천이씨, 양천허씨, 진양정씨 등이 입촌하고 1800년대 말기와 19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주이씨, 의령남씨, 칠원제씨 등 여러 성이 입촌하였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70()에 달하는 비교적 큰 마을이었으나 작금에 이르러서는 이농현상으로 토박이들은 다수가 도시로 떠나고 오히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물 좋은 곳을 찾는다고 하여 이 마을로 들어오는 가운데 지금은 50여 세대에 17 24본관의 혼성 마을이다.


 


◎ 사적 및 기타


◇ 당산제와 탑신


마을 중앙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마을 위 20m 지점에 있는 돌무덤에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자정이면 당산제를 지낸다.


 


◎ 전설


◇ 느티나무 전설


옛날 이 마을에 중년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마음씨 곱고 부지런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자식이 없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마을이 물바다를 이루자 이들 부부는 수로를 틔울 요량으로 마을 입구까지 나가 있는 힘을 다해 고랑을 치웠다.


 


기진맥진하여 잠시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소복 차림의 노파가 나타나 부부더러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노파의 손짓이 하도 간곡하여 이들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이윽고 정자나무 밑에 다다르자 노파가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자식을 점지할 것이니 치성(致誠)을 드려라” 하고는 노파는 홀연히 사라졌다.


중년부부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합심하여 밤이 새도록 기도를 올렸다. 이튿날 아침 무릎에 까맣게 피멍이 들었으나 그 후로도 쉬지 않고 매일 밤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렸더니 노파의 말대로 10달 후 옥동자를 얻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마을사람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이 나무에 와서 기도를 드리면 어김없이 자식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후 동민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믿어 해마다 동제를 올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 태봉산의 전설


언제부터인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태봉산이라고 불려지는 조그만 야산이 고성읍 대평마을에 있다.


옛날 어느 가난한 농가에 딸만 다섯 명을 둔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항상 웃으면서 다섯 딸을 곱게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이웃마을에 친척 한 분이 세상을 떠나자 노부부는 상가에 일을 돌봐주기 위해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날이 어두워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노부부가 이곳 부근에 이르렀을 때 난데없이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노부부는 일어나 소리나는 곳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으나 사방은 어두워 지척을 구분할 수 없었다.


 


부부는 할 수 없이 찾는 것을 포기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향할 때 더벅머리 소녀가 길을 막으며 흐느끼고 있었다. 노부부는 “아가, 무슨 곡절이 있기에 야밤에 혼자 이렇게 울고 있느냐”고 묻자, 더욱 흐느끼면서 자기를 따라 오라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갔는지 알 수 없으나 소녀가 뒤를 돌아보며 불쑥 다음에 태어날 아이의 태()를 이곳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노부부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벌써 먼동이 트고 있었다.


 


소녀의 말대로 노부부는 다음에 태어날 아기의 태를 그 곳에 묻기로 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지 10개월이 지나 노부부는 또 다시 예쁜 딸 하나를 낳았고 그 아이의 태를 지금의 태봉산에 묻었다고 한다.


 


그 후 노부부는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며 그때부터 주민들은 좋은 산이라고 생각하여 공동묘지로 사용하였고 소가야시대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를 낳을 경우 이곳에 태를 묻었다고 한다.


지금도 태봉산에 가면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간혹 들린다고 한다.


 


▣ 율촌(栗村)


흔히 밤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밤내는 율천의 순수 우리말로써 옛날 성천(율천) 가장자리에 밤나무가 줄지어 있었다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율촌의 동명은 율촌마을이 읍면 행정구역 조정 시 대평리의 행정마을로 분동 되면서 율촌으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


넓은 들판 가운데에 밤내라는 개천을 끼고 있는 지형적인 조건으로 보아 무척 오래전부터 사람의 왕래가 있었으리라 믿어지나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910년 경 부터 김해김씨, 칠원제씨, 경주이씨, 밀양손씨 등이 입촌하였다고 하며 지금은 위 성씨 외에 김해허씨, 창원황씨, 진양정씨, 경주최씨 등 여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김화홍본지논설위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1월 03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