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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안 계신 추석, 할머니 제사 정성 다해 모실 거예요”

부모님 생사 모른 채 올 1월 할머니마저 세상 떠나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0월 05일










4시 5분에 마치면 스쿨버스가 출발하는 5시까지 한 시간 정도를 뛰어놀아야하는데 신문 취재한다고 놀지를 못하는 것이 제일 불편하다는 아이(이름

과 얼굴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명 정지훈)



꼬불꼬불 기자의 경차도 제대로 올라가기 힘든 좁은 언덕길을 넘어서니 바다가 보이는 지훈이의 집이 나온다. 집에는 지훈이가 들어서기 전까진 아무리 깜깜한 밤이라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



지훈이와 함께 살던 할머니마저도 올해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숨을 놓으실 때 지훈이는 그저 황당하기만 할 뿐 슬프지도 않았더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방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이제 조금 혼자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단다.



“불편한 거 없어요. 혼자 있는데 이정도면 됐죠, 뭐”
조심스럽게 부모님 얘길 꺼내봤다. 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시지만 소식을 전혀 모르고, 어머니는 돌아가신 건지 가출을 하신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도 부모님 얘긴 도통 꺼내질 않으셔서 지훈이가 물어보면 할머니 마음이 아프실까 물어보지도 못했단다. 부모님 보고 싶지는 않냐, 궁금하지 않냐 물었더니 “보고 싶은 건 모르겠어요. 얼굴도 모르는데요, 뭐”란다. 지훈이는 아무 표정도 없이 도리질만 친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렇다고 자기를 내버려두고 나가버린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어쩐지 그 표정이 기자에겐 더 슬픈 표정이었다.



군에서 지훈이에게 보조금이 지급된다고 했다. 보조금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었더니 옆집 어른들이 관리해주신단다.



한 달에 생활비로 얼마 쓰느냐 물으니 ‘10만원’이란다. 그걸로 교통비도 하고 간식도 사먹고 이것저것 살 거 다 사곤 하는데, 그래도 돈이 남는단다. 혼자 살다보니 반찬 해먹기도 수월찮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급식반찬을 좀 가져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대수롭지 않게 ‘네’하더란다.



그나마 방학 때는 반찬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지훈이네 동네가 집성촌이라 다들 집안사람이다 보니 아이를 많이 도와준다.



얼굴도 이름도 밝히기 싫어하는 아이라 아주 어릴 적 사진이 없느냐 물었다. 주섬주섬 들고 나온 사진첩에는 친구들이 전부 다 본 사진들뿐이다. 돌 사진이 있다고 가져오는데 보니 지금 얼굴과 똑같다.



사진첩을 넘기니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이 있다. 그때의 지훈이는 지금보다 훨씬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에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아기다. 그때만 해도 10년이 지나서 혼자 남겨질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친구들이 이런 사정을 아느냐 물으니 전부 다 안다고 한다. 부모님이 안계셔서 혼자 지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며. 정답이다.  똑똑하다더니 정말이다. 부모님이 안계신 건 지훈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편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창피한 일도, 주눅들 일도 아니다. 지훈이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지훈이 방 벽에 쪽지 하나가 붙어있다.
‘법. 컴퓨터는 11시까지만 하기.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기...’
대학교 다니는 ‘형아’가 쓴 거라며 저게 자기한테는 법이란다. 형은 사촌이다.
가끔 방학 때면 지훈이가 사는 집에 와서 돌봐주곤 하는데, 형의 방학이 지훈이에겐 설날보다 크리스마스보다 더 기다려진다.



게임 좋아하는지 물으며 컴퓨터로 눈을 옮기니 정부 무궁화마크가 붙어있다. 중학교엘 올라와서 선생님들이 신경써준 덕분에 컴퓨터도 받았고, 학비도 지원받고, 생활비도 지원받는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공부도 어찌나 잘하는지 반에서 5등 아래로 내려가 본 적도 없단다.



선생님께도 애교 많고 선생님이 피곤하면 어깨도 주물러주는, 아들 같은 학생이란다. 이제 장래를 생각해야할 나이. 당장 고등학교엘 진학하자면 인문계로 갈지 실업계로 갈지 고민해봐야 한다. 담임선생님은 사천의 한 실업계 고등학교를 추천하며 바로 취업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훈이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눈치다.



나중에 얼굴이 좀 익고 나서 슬그머니 얘기를 꺼내는데 “형아가 나중에 졸업하면 같이 살자고 얘기도 해요”한다.



말투를 보니 꼭 “나는 형아한테 가고 싶어요. 형아랑 같이 살고 싶어요. 공부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지훈이는 도시로 나가서 살게 되면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그게 아무래도 걱정이다. 겨우 15살 된 아이가, 자칫하면 홧병 나겠다 싶을 만큼 참는다.



지훈이네 집을 나서는데 문밖까지 아이가 따라 나온다.
“읍에 놀러 나오면 전화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하며 전화번호를 주고 아이를 남겨놓고 돌아 나오는데 어쩐지 기자의 콧날이 시큰해졌다.



저 아이가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으면, 잘 먹어 키가 쑥쑥 자랐으면, 원래가 그릇이 큰 아이니 선생님 소원대로 큰 사람이 되었으면...그 전에 아이의 꿈을 키워줄 수 있는 누군가가, 무언가가 있어 줬으면 한다. 도움문의) 674-8377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10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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