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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에서 보낸 어린 시절 지금도 고성이 그런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 저녁을 먹고 멍석을 들고 집을 나서요. 그래서 학동 바닷가에 누워있으면 별이 쏟아질 듯이 많죠. 지금 제가 사는 곳도 그다지 도시는 아닌데 그런 장관을 보기 힘들어요. 어릴 적 얘기하면 저는 항상 그때의 그 장관이 떠올라요.
# 관심 없던 전통문화를 업으로 대학 대신 직업훈련원 공예과엘 들어갔어요. 졸업하고 처음 실습 나간 곳이 탈은 아니지만 악기를 만드는 공방이었죠. 나중에는 제 이름을 걸고 악기를 만들었으니까 제가 어릴 때 겪은 그 오광대와 농요 같은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몰라요.
# 경상도 ‘돌놈’이 악기장으로 실습을 나가서 일을 하다 보니 저만 경상도 출신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말로 왕따를 당하기도 했죠. 그래도 혼자 남아 연습하기도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 일을 빨리 익혔어요. 뿐만 아니라 악기는 만들기만 해서는 안되고 소리를 알아야 제대로 만들겠다 싶어 악기 연주 공부도 하고 요즘은 지인들이랑 같이 연습도 자주 합니다.
# 나무나 사람이나 속이 꽉 차야지 나무는 건조가 생명이에요. 사람도 속이 꽉 차야 진국이라고들 하잖아요. 나무도 같아요. 수분이 10% 이하가 될 때까지 5년 6년을 진득하게 말려야 해요. 그래야 속이 꽉 차서 소리가 좋은 악기가 나와요. # 옛것을 지키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사실 힘들어서 다른 일로 외도를 하기도 했죠.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한 3년 나무를 가공해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일을 하던 중에 선배 한 분이 “너는 그런 일보다 계속 악기 만들어라. 재주가 아깝지 않냐. 옛일을 지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서 다시 악기를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 저는 악기장입니다 그 자부심 전통악기를 만들면서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요. 처음 본 사람들끼리 직업을 이야기하는데 자기 직업을 말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돈도 잘 벌고 사회에서 필요한 일이지만 유흥업 같은 일을 하는 분들은 말을 못해요. 저는 자신있게 말하죠. 악기장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래요, 대뜸...“밥은 먹고 삽니까?”내가 밥만 먹는 줄 알아요? 술도 먹고...
# 고향을 지키고 싶지만 쉽지 않아 물론 고향이니 내려가고 싶어요. 바다도 좋구요. 하지만 이 악기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한 저 같은 사람은 생활하기 힘들죠. 지금 양산에 있는 이유도 대학 전공자들이나 연주자들, 아니면 취미로 악기를 필요로 하는 수요가 많아서예요. 저도 먹고 살아야죠. 고성엘 간다면 기분 좋게 이 업에서 은퇴해서 기분 좋게 집 지어서 멋지게 내려가고 싶은데 제 생각에 저는 아직 일을 다 못했어요. 그러니 고향엘 가고 싶다는 그 생각은 꿈이죠.
# 내 고향 고성, 문화는 왜 뒷전인가 충북 영동엘 가면 거문고 잘 타던 난계 박연 선생 고향이라고 국악축제를 해요. 거긴 150억을 투자해서 국악기 제작촌을 만들어뒀어요. 고성도 그렇게 돼야합니다. 국악도 관광자원이 될 수 있어요, 충분히. 이 일은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못하는 일입니다. 저 혼자 힘으로는 안돼요. 고성은 조선산업특구 지정됐다고 축제 분위기더라구요. 그런데 고성은 아직도 전형적인 농어촌이에요. 그래서 자연이 망가지지 않아 아직도 아름다움을 갖고 있죠. 그걸 살려야 해요. 마음에 간직한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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