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09 00:41:0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그곳에가면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우물 ‘남산새미’

대동남산빌라 뒷편 천도교 초대 교구장 지낸 황익태 선생 묘소, 독립만세운동 역사 증명
김화홍본지논설위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9월 09일
ⓒ 고성신문

1969년 행정구역 개편시 송학리와 무학리 2개로 분리, 송학천 맑은 물 흐르던 곳 
남산 김부자집 딸 사모하다 죽은 머슴 원혼 소리 “내 팔 내놓아라”
정동마을 정월 초이튿날 자시 마을 태평안녕 비는 당산제 지내


 














▣ 남산 2(南山 2)
소가야시대 성문 중 동문 밖이었던 동외리의 한 마을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남산 2마을의 동명은 남산 1마을과 마찬가지로 남산 밑에 형성된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각 가문의 기록으로 확인되기는 약 300여 년전 나주정씨가 입촌하여 터를 잡았고 그 다음으로 김해김씨, 전주최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하며 나주정씨의 9대손이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 사적 및 기타
◇ 남산새미((南山井)
남산공원의 아래쪽 계곡 밑에 있는 우물로, 지형적인 조건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물맛이 좋고 물이 마르는 날이 없어 지금도 수돗물이 고갈되면 많은 읍민들이 이 우물을 이용한다.



◇ 당산나무와 당산제(堂山祭)
남산정 윗편에 있는 수령 300년이 넘는 나무를 말한다. 예전에는 많은 주민이 상시로 이곳에 기도를 했다. 지금도 섣달 그믐날이면 마을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워하는 당산제를 지낸다.



◎ 전설
◇ 내 팔 내 놓아라
남산 공원 오르막이 있던 거목에 얽힌 진설이다. 옛날 조선시대 때 고성읍 동외리에 김씨 성을 가진 부자가 살았다. 김 부잣집에는 예쁜 딸이 둘 있었다. 두 딸 중 막내딸은 눈매가 곱고 콧날이 오똑하며 입술은 앵두빛이요 살결은 백옥같이 예쁘기 그지없었다.



김 부잣집에는 또한 종(머슴)이 셋 있었는데 이 중 하나가 막내딸을 내심 사모하였다. 자신의 신분으로는 언감생심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노릇이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애만 태우는 날이 계속되었다.


 


머슴은 급기야 죽어도 좋으니 막내딸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 봤으면 하는 원을 품게 되었다. 그러한 날이 흘러 오월 단오날이 돌아왔다. 남산 입구에는 오월 단오날이면 그네를 매곤 하던 그네 터가 있었다.


 


김 부잣집의 두 딸도 여느 처녀들처럼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터로 향했다. 김 부자에게 청하여 머슴도 딸의 경호원 자격으로 두 딸을 따랐다. 머슴은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 왔었던 것이다.



마침내 막내딸이 그네를 탈 차례가 되었을 때, 머슴은 다가가 주인 아씨의 손을 잡아 그네를 태웠다. 막내딸을 아끼는 충정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행동이었건만 이것이 화근이 되어 머슴은 김 부자의 커다란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신분상의 제약이 엄격한 시절이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을 신앙시 하던 시절이 아니던가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김 부자는 머슴의 팔을 자르고 죽이고 말았다. 그날 이후 그네터에는 비오는 밤이면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 팔 내놔라, 내 팔 내놔라.'
마을 사람들은 이 소리를 그 머슴의 원혼이 울부짖는 소리라고 믿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나무가 병들어 고사하자 마을 사람들이 합의하여 나무를 베었는데 그 속에는 두 마리의 구렁이가 나왔다고 전하고 있다.



▣ 정동(鼎洞)
마을 이름이 지어진 확실한 고증은 없으나 전래되는 말에 의하면 마을 뒷산인 고소산(高蘇山) 정상이 가마솥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정동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정동마을은 고소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졌는데 고소산 동쪽 마을이 위에서 말한 솥골이며, 서쪽은 다시 도덕골과 장좌골로 나뉘어 불린다.


 


통영 가는 길목의 고개를 말티(馬峙)라 부르며 그 안쪽 마을이 도덕골인데, 도덕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에 도덕사(道德寺)라는 절이 있어서 그 절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장좌골은 현 오광대연수원 소재지 마을을 일컫는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을의 가장 오랜 문중인 고성박씨 족보에 의하면 박씨가 이 마을에 거주를 시작한 것은 약 600년 전이라고 하며, 현재는 고성박씨 외에 김씨, 한씨, 최씨, 양씨 등 다양한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사적 및 기타
◇ 마을 당산제
언제부터인가는 확실하지 않으나, 마을 뒷산인 고소산(高蘇山) 남녹(南麓)에 매년 음력 정월초 이튿날 자시(子時)를 기해 마을의 태평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당산제를 지낸다. 그 제단 옆에는 수령이 오래된 포구나무 1그루가 있다.



◇ 마을 공동 우물
1970년대까지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하던 우물로 기단석(基壇石)은 화강암으로(가로ㆍ세로 173㎝, 높이 80㎝로 정사각형), 우물의 깊이는 지하 5m로 지름 120㎝의 원형이다.


 


수량은 200여 명의 주민이 식수와 생활용수로 동시 사용하여도 고갈(枯渴)된 적이 없을 만큼 풍부하다. 우물 돌에 새겨진 신유동중(辛酉洞中)이라는 글귀로 보아 1141년, 혹은 1081년 무렵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 독립지사 눌암 황태익(黃泰益) 선생의 묘소(墓所)가 있고 선생은 천도교 초대 고성교구장으로서 1919년 4월 3일 마산시 진전면에서 교민들과 함께 삼진의거를 일으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종교인으로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눌암 황태익 선생의 묘소가 마을 내 동외리 산 625-5번지(대동남산빌라 뒷편)에 있다.



6.송학리(松鶴里)
본래 고성군 서읍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무학동 약재방과 동읍면의 송도를 병합하고 송도와 무학의 이름을 따서 송학리라 하여 철성면(고성읍)에 편입되었다. 그후 주민수의 증가로 1969년 행정구역 개편 시 다시 송학과 무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송학
송학마을은 예전에는 송도(松島)라 불리던 마을도 야산이었던 지역이다. 이곳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서너 채의 집이 띄엄띄엄 숲속에 묻혀 있었는데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송학천)도 수량이 풍부하여 이러한 천혜의 조건으로 인해 학들이 무리지어 이곳으로 날아들었다고 하며 소나무가 많고 학이 많은 동네라 하여 송학동이라 불리었다.



◎마을의 형성
마을이 생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역적 여건으로 미루어 소가야시대부터 주민이 거주했으리라 추정된다.
김해김씨, 능성구씨, 창원구씨, 제씨가 오래전에 입촌하였다고 하며 지금은 위 성씨 외에 40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무학(舞鶴)
학이 춤추는 마을이라 해서 무학동이라 불렸다고 한다. 들 가운데에 있었던 송도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이곳에 학이 떼 지어 날아와  군무(群舞)를 추곤 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의 형성
마을이 생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말엽만 하여도 소나무 숲 주위에 가옥이 띄엄띄엄 있었다고 하며 어느 성씨가 맨 처음 이곳에 들어와 살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고 다만 현재의 거주민 중 다수를 이루는 주요 성씨는 김해김씨, 전주최씨, 함안이씨 등 성씨이다.



◎사적 및 전설
◇송학리 고분군
송학리 무학마을에 있는 이 고분군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소가야 당시의 왕족 또는 장군들의 무덤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대부분 일정 때 일인들에 의하여 도굴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고분 5기는 주능(主陵)을 중심으로 서편에 산재해 있다. 소가야시대 왕족과 귀족들이 이곳에서 미기(美妓)들을 불러 무예하던 곳이라 하며, 그 당시부터 이곳을 무기정(舞妓亭)이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김화홍본지논설위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9월 09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