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맺히기 시작한 새끼감이 지붕위로 통통 경쾌하게 떨어지지만, 할머니 마음은 영 경쾌하지 못하다.
당장 오늘 끼니도 걱정해야하는 고필연 할머니. 아들과 손자가 같이 살고 있지만 그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오히려사는 게 더 힘들어질 뿐이다.
“묵고 사는 기 제일 힘들지, 다른 게 뭐가 힘들긋노.”
그래서 85살 먹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상근예비역인 손자만이라도 배부르라고, 얻은 쌀로 밥을 조금 지어 역시 얻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김치장국밥을 끓였더란다.
손자는 이게 뭐냐며 획 돌아 나갔는데, 저녁에 와서 한다는 말이 “할머니, 오늘 배가 고팠다”더란다. 푸짐하고 화려하고 맛깔난 밥상은 아니지만 배불리 먹이고 싶었는데, 내가 전생에 뭘 그리 죄를 많이 지어 이날 입때껏 이렇게 사나...80이 훨씬 넘은 고필연 할머니는 누워서 훌쩍거렸다.
“복을 타고 나라해도 남들 다 타는 복을 못타고, 왜 이렇게 사는가 참 마이 울었다. 그래도 울모 뭐하긋노. 울고 있으모 누가 보태주나. 그래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는데...”
할머니는 스스로를 ‘누운뱅이’라고 했다. 원래 그 나이면 안아픈데 없이 다 아프기 마련이지만, 할머니는 얼마 전 군에서 만들어준 간이 화장실의 턱 높은 계단을 오르다 굴러 떨어져 척추를 다쳤단다. 거기다가 팔까지 부러져 꼼짝없이 병원신세를 졌다.
두 달을 병원에 누워 있다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퇴원을 고집했단다. 병원비가 걱정돼서. 그 이후로는 새로 생긴 신식 화장실은 근처도 못가고, 잠시만 엉덩이를 까고 앉아도 모기가 회를 쳐놓는 재래식 화장실을 갈 수 밖에 없다.
“선풍기도 누가 덥다고 줬고, 전에 한 번은 내가 고기가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 먹는다 했드마는 누가 돈 만원을 꼭 쥐어 주드라.”
할머니는 지금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한 달에 25만원씩 받던 돈도 못 받는다. 25만원 받던 그때는 이렇게까지 사는 게 괴롭지는 않았다면서 금세 눈물이 그렁해진다.
며느리는 암으로 죽은 지 오래지만 아들은 없는 집에 시집오면 고생밖에 더 하겠냐, 그리고 이런 집에 누가 시집오려 하겠냐며 재혼은 할 생각도 없다.
손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는 아주 조금 나았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할머니 쓰시라며 몇 푼 쥐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없어 월세 5만원에 전기세, 가스비 등등을 감당하기 힘들다.
“땟거리가 없는데 우짜긋노. 동네 사람들한테 쌀 얻어다가 먹고 그라지. 그래도 영감이 살아 있을 때는 이리 힘이 안 들었는데...”
16살에 통영에서 고성으로 시집왔다는 할머니는 지금 같이 사는 아들 말고도 딸 둘이 더 있다. 하지만 두 딸 모두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어머니까지 미처 신경 쓸 틈이 없다.
그나마 어쩌다 한 번 찾아와서 만 원짜리 몇 장 드린단다.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다른 거는 모르긋고, 영세민 그기나 좀 받그로 해주소. 그거라도 있으모 좋긋다.”
고필연 할머니는 당장 땟거리도 없다. 쌀 몇 됫박 얻어다 놓은 그게 전부다. 반찬도 없고, 할머니가 거동하기도 불편해 주변에서 해다 주지만, 여름이라 그 반찬들마저도 끊겼다.
할머니 소원은 당장 땟거리 걱정 없이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사는 것뿐이다.
<고필연 할머니를 돕고 싶으신 분은 고성신문 674-8377로 전화를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