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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읍 적십자봉사대 백순임 대장
140여 년 전 장 앙리 뒤낭이라는 스위스인이 참혹한 전투의 참상을 보고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을 썼다. 구호단체의 필요성을 알리고 국제의료봉사단체를 만들 것을 제안한 책이다.
이후 스위스에서는 제네바에서 회의를 개최해 흰색바탕에 붉은 십자모양의 표장을 선정하고, 이를 적십자라 부르며 국제적십자운동이 시작됐다. 고성에는 각 읍면에 하나씩의 적십자봉사대가 있다.
대부분 주부들로 구성된 이 봉사대는 금전적인 보상도, 남들 다 바라는 명예도 사양하며 묵묵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 백순임 고성읍 적십자봉사대장을 만났다.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나요?
백순임 : 봉사활동 하면서 사정 딱한 집을 참 많이 갔어요. 개천면에 살던 아이들 집엘 갔는데, 가서 이불 빨래며 청소며 다 하고 반찬해 놓고 그랬더니 처음에는 슬슬 피하던 애들이 나중에는 익숙해졌는지 다가오더라구요. 집도 지어줬어요. 그 집 아들이 자기가 받은 만큼 베풀겠다며 이장을 하겠다 할 때는 내 가슴이 찡했지.
그것만이 아니에요. 거류면에는 부모가 장애인인데 다행히 아들은 정상으로 태어난 집이 있어요. 인물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아들이 여자친구 데려오고 그런다고 부모들이 자랑도 참 많이 했어요. 아들은 부모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용돈이 적어서 불만이라고 농담하기도 했죠. 그래도 그 아들 반듯하게 잘 큰 거 보면 내가 키운 것처럼 대견하고 그래요.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백순임 : 왜 안힘들었겠어요. 사실 처음 봉사 갔을 때는 냄새나고 그러니까 구역질도 하고 그랬죠.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렇지도 않아요. 10년 정도 전부터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 생신을 챙겨드리고 있어요. 생일잔치를 하다보면 어르신들은 감동해서 우시고, 그걸 보는 저희도 따라 울고...봉사를 하다보면 가슴 찡할 때가 참 많아요.
회원들은 다들 잘 따라와 주시구요?
백순임 : 회원들이 다 잘해요. 한 번 들어오면 전부 안 나가죠. 보통이 10~20년 이상씩 활동을 해요. 타 단체보다 봉사 잘하는 건 자부합니다. 저희 단체 최연장자는 70대고 최연소자는 30대예요. 어머니와 딸 뻘이죠. 저희 봉사단원들은 봉사다 하면 열일 제쳐놓고 나와요. 단합도 잘 되고.
회장인 제가 잘하지 못하면 다른 회원들은 차고 올라가질 못해요. 제가 총무만 한 20년 하다가 회장이 됐는데, 지금은 그냥 흉내만 내는 거예요.
목표가 있다면요?
백순임 : 올해는 기금마련이 제일 큰 목표예요. 전에 알뜰시장에서 간장장사 해서 돈 좀 벌어 기금을 모았고, 올해는 원래 8월에 김치장사 하려고 했는데 너무 더워서 못했어요. 9월 5일 월례회 때 결정한 다음에 추석 앞두고 생김치 장사해서 또 기금 모아야죠. 군민체육대회 때는 국밥 장사해서 돈 벌어야 하고요. 차 봉사도 하고 행사 봉사활동도 하는데 그 재료나 비용들이 전부 우리 회비에서 나오니까 돈을 벌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없으세요?
백순임 : 뭐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라...우리 단체는 숨어서 봉사해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뭐 그런 거죠. 우리가 알려지는 걸 얼마나 싫어하냐면 처음에는 회장을 맡은 걸 남편도 몰랐어요. 몇 달 전에 우연히 누가 말해줘서 알았을 정도예요. 앞에 나서는 일이 반갑지 않아요. 지난번에 고성신문에 우리 기사 난 걸 보고 회원들이 굉장히 좋아하길래 그게 신기했을 정도죠. 그래서 그렇게 알려지는 걸 좋아하면 안 된다 그랬어요.
고성읍 적십자봉사대는 적어도 고성에서만큼은 외롭거나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소외받는 장애인도, 기죽은 아이들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적십자봉사대는 지금까지 그랬듯 묵묵히 봉사할 것이다. 이런 작은 도움이 밝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