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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바위처럼 생긴 곳 ‘구암마을’

서외리 창원황씨, 성주배씨, 전주최씨, 능성구씨 집성촌 이뤄 살아
김화홍본지논설위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8월 24일
ⓒ 고성신문

남외마을 대섬은 대나무숲 포구나무 울창 갈가마귀떼 휴식처


고성읍 구암마을 해마다 섣달 그믐에 마을

태평위해 동제 지내 



남포하면 몰라도 철뚝하면 다 아는 곳…곡부공씨 김해김씨 입촌


 











▣ 서외 2(西外 2)


서외라는 이름은 서외 1 마을과 유래를 같이하며 1968년 고성읍 공설시장이 이곳으로 옮겨져 주민수가 증가하면서 1972년 서외 1 마을과 분동되어 서외 2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 마을의 형성


무척 오래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서외 1 마을과 분동되기 전에는 전주최씨, 능성구씨, 창원황씨, 성주배씨 등의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③ 수남리(水南里)


소가야시대에 쌓았던 성에는 네 개의 문이 있어 각각 동문, 서문, 남문, 수문이라 불렀다. , , 남의 세 문이 방향을 가르키는 것이었다면 수문은 서문과 남문 사이에 있었던 문으로 수로(水路) 위에 세워졌던 문으로 추정된다. 수외마을은 바로 이 문 밖에 있었던 마을이란 뜻이다. ‘수문 밖’ 또는 ‘숨 밖’이라고도 불렀는데 이 말들이 한자화 되면서 수외로 된 것이다.


 


◎ 마을의 형성


이 마을에는 문화유씨(文化柳氏)와 김해김씨가 처음 입촌(入村)하여 살았다고 하나 사실을 정확히 증명할 자료가 없고, 구전으로만 누구 집 몇 대가 살았다고 전할 뿐이다. 그러나 고성의 유구한 역사로 미루어 볼 때, 이 마을 역시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리라 믿어진다.


 


◎ 사적 및 기타


◇ 옹성(壅城)


읍사무소에서 남쪽으로 약 300m 지점, 수남리 수외마을에 흔적만 남아 있는 소가야시대의 성의 일부를 일컫는다. 소가야 말로왕 때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백성들을 동원하여 7년간에 걸쳐 주위 길이 2, 높이 약 10m의 성을 쌓으면서 성의 중앙지점에 옹성<壅城:큰 성() 문 밖의 작은 성, 원형 또는 방형(方形)으로 성문 밖에 부설하여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든든히 지키기 위하여 만듦>을 쌓았다고 한다.


적이 침공하여 오면 이곳에서 사방으로 고함을 질러 상황의 위급을 알렸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때에도 왜군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자취마저 방치된 채 신축가옥의 담 벽으로 활용되고 있다.


 


◇ 사두(蛇頭)


남산의 숨 밖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산세가 뱀의 머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아래쪽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어 농사에 큰 도움을 주었으나 지금은 이용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남외(南外)


수남리의 4개 마을 중 중심이 되는 마을로 본래 고성군 동읍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ㆍ폐합시 수남리에 편입되었다. 남외라는 마을 이름은 고성읍성의 남문 밖 즉 남문의 바깥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남 밖이라고도 불린다.


 


◎ 마을의 형성


마을이 생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곳이 바다와 가까운 지역이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거주가 이루어졌으리라 짐작된다. 구한 말까지는 50호 남짓의 가구가 거주했다고 하며 1904년 남포마을에 제방(일명 철뚝)이 축조되어 바다가 육지로 변하면서 주민수가 증가하여 큰 마을이 되었다. 현재는 준 도시형태의 마을로 다양한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 전설


◇ 대섬(竹島)


대섬은 고성군청에서 서남쪽으로 1㎞ 지점에 위치한 남북 0.4, 동서 0.1㎞의 돌섬으로 현재는 육지화되어 고성읍 수남리 79번지 상에 가옥이 들어서 있으나 조선말기까지만 하여도 바닷물에 둘러싸인 섬이었다.


이 대섬은  대나무 숲과 아름드리 포구나무 등 잡목이 우거져 하늘을 가렸고 갈가마귀 떼가 몇 백 마리씩 날아와 서식하던 곳이기도 한다.


 


섬 지방 고깃배들이 와서 정박하여 물물교환을 하기도 하고, 특히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뭇가지가 휘는 날이면 선박들의 긴급 피난지로서의 역할도 하였으나 평소에는 한적한 바닷가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여 섬 위에 정자를 짓고 시인묵객이 거쳐가면서 한 수의 시와 그림을 남기던 곳이기도 하다. 일찍이 고려 공민왕 때 중랑장(中朗將)이던 호은(湖隱) 허기(許麒)가 신돈(辛旽)의 부정을 공박하는데 가담했다가 유배와서 더욱더 알려지게 됐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호은 선생을 다시 중용하려 하였으나 선생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대의를 몸소 실천하여 대섬에 은거하니 고을의 원님이나 양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호은 선생께서는 춘추 70이 넘어 돌아가시니 김해허씨의 고성지방 중시조이다. 후손이 집터에 비를 세워 지금도 후덕을 기리고 있는데 선생의 한 많은 일생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밤이면 집터에 도깨비불이 자주 나타나고 그때마다 비가 왔다고 한다.


 


▣ 구암(龜岩)


◎ 마을의 유래


오래 전부터 이 마을은 읍앞에 있는 갯마을이라 하여 읍전포(邑前浦) 또는 읍전개라 불리었다.


 


지금의 마을 이름은 그 생긴 형태에서 연유한다. 일제시대는 간척사업을 위해 이웃한 남포마을에 제방을 쌓으면서 고성읍 교사리까지 미치던 바닷물이 빠지고 이 일대의 지형이 변하게 되었는데, 마을 뒷산에서 내려다 보면 마을의 지형이 마치 거북이와 같이 생겼다 하여 한자어로는 거북구(), 바위암()자를 빌어 동명을 구암으로 삼았다고 한다.


 


◎ 마을의 형성


 문서상의 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약 200여 년 전에 장흥고씨(長興高氏)가 맨 먼저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장흥고씨 외에 의령남씨, 진양강씨, 김해김씨, 경주이씨, 안동김씨, 경주최씨 등 여러 성씨가 거주 하고 있다.


 


◎ 사적(史跡 ) 및 기타


◇ 읍전정(邑前井)


인간이 주거생활을 하면서 필수적인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식수원이라 할 것이다. 읍전정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구전에 의하면 약 80년 전에는 옹달샘과 같은 작은 샘이었다고 한다.


 


상수도 공급이 되지 않던 일제시대 소화(昭和) 3(1928)에 보수를 하여 현재의 형태처럼 되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 실시된 수질검사에서 군내 1등을 한 적이 있다고 전하며 지금도 가뭄 때에는 마을주민은 물론 이웃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기도 한다.


 


◇ 동제(洞祭)


구암 마을에서는 지금도 매년 섣달 그믐날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동제는 마을주민들의 정신적 통합체로 이루어진다. 그 절차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제전(祭前) : 마을 회의에서 마을 유지들이 제관을 선정, 택일을 하고 금기사항을 알린다.


② 동제(洞祭)를 모신다.


③ 축제(祝祭) : 마을 전체가 축제분위기 속에 농악놀이 등이 전개된다.


④ 제후행사(祭後行事) : 행실에 따라 상과 벌을 내리는 마을회의로 동제가 끝난다.


 


▣ 남포(南浦)


행정구역상 수남동 구암부락에 속해 있다가 왜정말기에는 수남리 제4구였는데 그후 분동되면서 남쪽 바닷가의 포구마을이므로 이러한 이름이 정해졌다. 제방공사의 토사운반시설인 철로와 제방이 견고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철뚝이라는 이름으로 흔히들 부르는 마을이다.


 


◎ 마을의 형성


1904년 간척지 제방공사를 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맨 먼저 입촌한 성씨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의령남씨(宜寧南氏) 등이라고 하며 이후 곡부공씨(曲阜孔氏),김녕김씨(金寧金氏),제주고씨(濟州高氏)등 제씨가 입촌하였고 현재는 위 성씨 외에 다양한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사적 및 기타


◇ 철뚝


고성에 현재 거주하는 사람이나 고성출신 출향인들이 ‘남포’하면 몰라도 ‘철뚝’하면 알만큼 유명한 곳이다.


1904년에 간척사업을 하면서 쌓았다는 남포마을과 삼산면 판곡리를 잇는 제방으로 토사운반 시설이던 철로와 제방이 견고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김화홍본지논설위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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