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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을 지나온 학동마을 돌담길

돌담길 사이로 세월이 비켜가더라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8월 19일












수태산 줄기에서 나온 납작돌을 쌓아 만든 담장에 세월이 흘러 담쟁이가 뒤덮으면서 마을 전체

문화재가 됐다.


 


황토와 납작돌을 켜켜이 쌓아놓은, 시루떡 같은 담장을 작년에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 제 258호로 지정했다.


 


지세가 좋아 나랏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나왔다는 학동마을은 원래 이름보다 옛날담장동네라는 말이 더 많이 알려졌다.




# 우리 집이 전부 문화재 아이가


 


담장이 있으니 그 안에는 당연히 집이 있을 터. 마을을 조금만 돌아보려는데 말 그대로 대궐 같은 기와집이 연달아 몇 채가 나타난다. 그 중 한 집에 말도 없이 불쑥 들어갔다. 아무리 불러도 주인은 나오질 않았다.


 


“계세요, 할머니”를 열 번은 족히 채우고 나니 뒷마당에서 “누요”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벌써 50년이 넘게 전주 최씨 종가를 지키고 있는 박종혜 할머니. 전형적인 남부 부농의 주거형태를 띄는 최씨 종가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179호로 지정돼 있다.


 


산청에서 소녀시절을 보내던 할머니가 시집올 때부터 있었다는 최씨 종가는 벌써 350년이나 됐다. 무뚝뚝하게 “그렇소, 아니오”만 하던 할머니께 기자가 전주 최씨 찰방공파 25대손이라 말하자 만연에 화색을 띄며 “아이구, 그렇나? 비가 와서 우찌 하긋노”를 연발하신다.


 


“은자 힘이 안돼서 몬하긋다. 젊을 때나 이 큰집을 쓸고 닦고 하지, 은자 나이도 묵고 힘이 들어서 몬하긋다. 내 젊을 때는 이래 넓은 집에 식구가 몇이고...


거기다 돌아서모 제사가 돌아 온다 아이가. 내가 종부 노릇 톡톡히 했다”며 한탄처럼 말하면서도 종가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해서 연신 TV에 나왔노라 했다.


 


3,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유심히 보고 간 우물도 문화재나 다름없음을 강조하면서.


 


# 학이 알을 품는 마을, 학동


 


학동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 보면 비석이 서있다. 구한말 나라를 배신하는 것 대신 죽음을 택한 서비 최우순 선생의 공적을 기린 비다.


 


1910년 일제 통치에 들어가게 되자, 나라가 망한 것을 탄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비가 27명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학동마을에 살던 서비 최우순 선생이다.


 


선생은 1832 6 22일 학동마을에서 농암 최백진의 아들로 태어났다. 1800년대 후반 농민운동이 한창일 때 선생 역시 의병으로 참여했고, 의병장으로 추대되기까지 했다.


 


서비 선생의 비 옆에는 두 개의 비가 더 서있다. 3대와 8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갑환, 최재구 부자의 비다.


 


동 시대에 한 마을에서 나오기도 힘든 국회의원인데, 지형이 학이 알을 품어서 학동(鶴洞)이라더니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최초로 부자지간에 국회의원이 나왔다.


 


땅값 높은 데가 명당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서비 선생과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한 최갑환, 최재구 부자 그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인물이 나온 학동마을이야말로 명당이다.


 












  양옆의 할머니 두분은'여서 나가 여서 죽을'할머니들


# 여서 나가 여서 죽을 거 아이가


 


어느 마을에서나 어르신들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 거리는 단연 시집, 장가 왔을 때 이야기. 학동마을에서도 “언제 결혼하셨어요?”한 마디에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는다.


 


회관에 모여 있던 어르신들 중 가장 ‘어리다’는 박보순 할머니는


 


‘다른 할매들보다 쪼깬 젊어서’ 21살에 시집을 왔단다.


 


하지만 태어난 마을도, 시집와서 아이 낳고 산 마을도 학동마을이다. 그래서 부녀회장도 아주 오랫동안 했단다.


 


박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지팡이에 의지하며 김숙계 할머니가 들어온다. “내는 다리가 아파서 영 쓰도 몬하긋다”며 아이구, 외마디 소리와 함께 앉는다. 김 할머니는 19살에 시집왔고, 이내 들어오신 하얀색 쪽찐 머리의, 모인 할머니 중 최고령이라는 정상림 할머니는 요즘 나이로 치면 중 3밖에 안됐을 16살에 시집을 왔단다.


 


그러면서 다들 하시는 말씀, “여서 나가 여서 시집가고 여서 죽을 거 아이가”


 













   지난해 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된,수태산


 줄기에서 나오 납작돌로 쌓은 학동마을 돌담길.


 


# 우리는 관광도 몬하지만 괜찮다


 


이제 학동마을에 남은 가구는 약 50가구. 거기다 나이들도 모두 많아서 농사일이 힘에 부치지만, 하나같이 없는 살림이라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한다.


 


다른 마을처럼 철마다 관광을 다니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단다. 


 


그러면 혹시라도 어려운 점이 있으면 한 마디 하시라 말했더니 김상석 할아버지는 “우리가 그리 함부로 이리 하라 저리 하라 할 수 있는가? 군수님도 알아서 잘 해주시긋지. 말을 하고는 싶지만 이거 말하고 저거 말하고 하모 군수님이 그거를 다 수용을 몬할 거 아이가. 고마 군수님이 알아서 하시그로 놔둬야지”라며 허허 웃는다.


 


수태산 장맥이 뻗어내리고, 마을은 좌이산의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와, 학이 양 날개로 알을 품은 듯한 형상의 학동마을. 어미학의 날개 아래 단잠을 자는 아기학처럼 학동마을은 오늘도 조용하고 포근한 숨을 쉬고 있다.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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