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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우치 문고 발견에서 반환까지

80년을 떠돌던 민족혼'데라우치 문고'알고 계십니까?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8월 19일











1910년 5월 조선통감이 부임했다. 그의 이름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 正毅, 1852 2 24~1919 11 3). 같은 해 8월 데라우치는 조선총독이 돼, 무단 통치를 감행했다.


 


데라우치가 총독으로 있던 1910년부터 5년 동안 총독부는 당시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구관제도의 조사’ ‘고적·사료 조사’를 단행했다.


 


그 중 80여년을 데라우치 가에서 잠들었던 데라우치 문고는 90년대 초반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혹자는 “볼모로 잡혀간 우리 문화들이 암에 걸려 돌아왔다”고 표현할 정도로, 발견 당시 데라우치 문고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문화재로 귀한 대접을 받았을 서화들이 먼지를 덮어쓰고 마치 수십 년 풀지 않은 이삿짐인양 처박혀 있었다. 여기에는 13~19세기의 고문헌들, 보물급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고향땅을 떠나 80여년을 떠돌던 데라우치 문고는 1995 11 11일 ‘야마구치 대학 데라우치 문고 소장 유물에 대한 기증각서 조인식’을 기점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 임창순 문화재위원장, 김영광 의원, 고성 이씨(李氏) 문중 이종영씨.


 


이들은 경남대학교가 데라우치 문고를 기증받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데라우치 문고를 처음 찾아낸 사람은 당시 대구에 살던 고성 이씨 종친회 이종영씨. 퇴임 후 종친회 사무실에서 소일거리를 하던 이씨가 데라우치 문고의 존재를 안 것은 1990년대 초. 1976년 판 ‘월간서예지’에 실린 송설체의 대가 행촌(杏村) 이암 선생(1297~1364)의 진적 중 2점이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종영씨는 종친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종친회의 도움을 받아 데라우치 문고의 소재를 파악한지 7개월 만에 야마구치 대학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조상의 진적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는 데라우치 문고에 웅크리고 있는 엄청난 분량의 한국 문헌들을 발견했다.


 


이씨는 귀국하자마자 이를 현재 한국문화연구소장을 맡고있는,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박영석 소장(건국대 사학과 교수)에게 알렸고, 박 소장 역시 곧바로 야마구치 현으로 달려갔다. 이후 박 소장은 3년 동안 야마구치 대학을 네 번 방문했지만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치권의 힘을 얻기로 한 박 소장은 김영광 한일의원연맹 운영위원장과 함께 문고의 반환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파트너인 가와무라 다케오 부위원장으로부터 야마구치 대학의 다카 학장을 소개받았다. 김 의원은 2년간 다섯 차례 야마구치 대학을 찾아가 다카 학장과 ‘데라우치 문고’ 문제를 협의했고 마침내 “돌려주겠다”는 말을 이끌어냈다.


 


이후 김 의원은 경남대학교의 박재규 총장에게 데라우치 문고를 경남대학교에서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의향을 물었고, 박 총장은 흔쾌히 그에 응했다. 마침 그 당시 경남대학교는 개교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렇게 돌아오게 된 데라우치 문고. 이후 데라우치 문고의 시와 그림, 글씨들은 서울 예술의 전당 등의 큰 전시에서 일반인들에게 선보였다.


 


그러나 사실 아직도 데라우치 문고에 대한 정보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성 이씨 문중 이암 선생의 글씨가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녀 일본에서까지 탐을 냈지만, 고성 사람 중 그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고성에서 태어난 행촌 이암 선생은 고려 말 최고의 명필로 꼽힌다. 공민왕 때 수상격인 문하시중을 지낸 이암 선생은 단군세기의 저자.


 


그리고 이러한 글 실력은 집안 대대로 이어진 것인지, 소지하기만 해도 참형에 처해졌다는 ‘태백일사’의 저자는 이암 선생의 고손자 이맥(李陌)이다.


 


이암 선생의 글씨는 조맹부의 송설체를 그대로 따라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암 선생의 글씨는 유려함과 근력을 고루 갖췄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그의 글씨는 고려 최고의 명필이라 꼽힌다.


 


그러나 그의 글씨가 남아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중 2점이 수록된 데라우치 문고는 역사적으로나, 고성 이씨 문중에서의 의미로나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중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반환 이후, 일반인들에게 알려질 기회가 없어 아직도 데라우치 문고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1995 11 11일 야마구치현의 한 호텔에서 야마구치 대학 데라우치 문고 소장 유물에 대한 기증각서 조인식을 가진 후 데라우치 문고는 당당히 한국 땅으로 돌아왔다.


 


1916년 일본으로 ‘납치’되어 간 보물급 유물들이 8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 문고가 중요한 이유는 그 내용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기증절차를 통해 환수된, 민간의 힘으로 성공시킨 매우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최민화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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