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따라 잡히는 생선을 자주 챙겨주는 이가 있다. 지금은 하모(갯장어)가 제맛을 낸다며 주말에 임포 위판장에서 만나자고 날짜를 임의로 정해 버렸다.
절친한 그 지인 덕분에 우리 집 아이들도 계절 어종을 외우듯 한다.
이른 새벽 임포로 가는 길 도로 벽에 ‘하모 중개인 모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7월은 분명 하모의 계절이다. 바다안개가 곱게 깔린 임포는 여전히 전형적인 어촌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조업을 준비하는 배의 모습, 그물을 정리하고 굴 종패를 끼우는 어민의 모습까지 어촌의 냄새를 느낄 수 있어 더 없이 좋다. 우리 군내에는 위판장이 삼산(두포리), 맥전포, 우두포, 동해 양촌, 회화 당항, 하일 학림(임포)등 6곳이 있었으나, 어획량의 감소로 지금은 임포를 비롯해 3곳에서만 경매가 열리고 있단다.
선어와 활어 등 수산물 위판은 대부분 임포에서 한다.
맥전포는 지금 유류만 공급하고, 굴은 수남리 위판장, 멸치, 건어물은 수협에서 수거하여 삼천포수협 건어공판장으로 가져간다. 1976년에 신설한 고성수협 하일 출장소(임포)는 3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공판장 판매 사업이 추구하는 목적은 어민들의 개별적인 수산물 판매 방식을 지양하고 공동판매함으로써 유통비용을 경감하며, 어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는 수협 관계자의 말을 옮겨 본다.
갈매기가 물살을 타고 있는 바다에서 크고 작은 어선들이 연이어 경매 시간을 맞추려고 속속 선착장으로 입항을 했다. 순간 어선에서 수산물을 부려놓는 어민들의 몸놀림이 펄떡이는 활어처럼 재빠르다. 위판장 바닥에는 색색의 플라스틱 대야와 둥근 바구니 200여 개가 여러 줄로 판장을 꽉 채우고 있다.
바구니 안에는 선주 이름이나 어선이름이 있었는데 아는 이의 이름도 몇 있었다. 납작한 바구니에는 선어가 보기 좋게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어종은 백조기였다. 싱싱함은 은빛 비늘의 반짝거림으로도 알 수 있었다.
6시 정각.
활어 진열 및 경매 작업 준비가 완료된 것을 확인한 경매인은 경매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길게 불었다.
각자 지정된 번호가 붙은 모자를 쓴 11명의 중매인도 단상 위에 올라가서 경매인과 마주 보고 섰다. 생선이 담긴 바구니에 놓인 차례대로 좌측에서 우측방향으로 경매를 했다. 전날 혹은 이른 새벽에 빈 대야를 놓아 각자 영역표시를 해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어획량이 많으면 늦게까지 경매를 하게 되고, 또 활어차 물량이 차 버리는 경우에는 제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매 순서는 성명, 품명, 수량, 단가, 금액 순으로 하는데 경매인의 음성이 특이하다. “아-쑤기미다.” “아-다섯 마리다.” “아-2만원이다.”라고 했다.
“아” “다”를 붙이는 게 참 재미있었다. 걸쭉하고 우렁찬 목소리도 특이하지만 2m가 넘는 긴장대로 고기대야를 툭툭 치거나, 밀고 당기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활어의 신선도를 파악하여 경매가의 높낮이를 매긴단다.
경매인(현장소장)은 11명의 중매인들의 현란하고 잽싼 손놀림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예의 주시했는데, 이는 아마도 공정하고 투명한 경매를 하여 어민들에게 땀의 결실을 더 얹어 주려는 자신만의 경매방법인 것 같았다.
오늘 경매된 수산물을 많은 양부터 나열해 보면, 성대(매운탕거리), 양태(낭태), 쑤기미, 문어, 낙지, 게, 장어 등 10여종이다. 낙지는 마리당 3,000원, 감성돔는 고급 어종이라 높은 가격에 경매되었다. 경매 도중 좋은 물거리를 중매인이 얼른 내려가 자기 몫으로 대야 하나를 덮어 놓기도 했다.
하모 위판장 경매는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오후 2시에 하고 있다는데, 하모 성어기여서인지 이 시간대에도 조금 나와 경매를 해 주었다. 하모는 대부분 주낙을 해서 잡은 것이라 입에 낚싯줄이 물려 있었다. 시기적으로 어획량이 적은 때이기는 해도 전날보다 물량이 많지 않아 1시간 정도 걸려 경매가 끝났다.
힘차고 정확한 수화로 어민들의 시선을 끌었던 00번 중매인도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는 못마땅한 어종들이 있었던지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꽃게 산란기이고, 또 치어 방류시기인데 싹쓸이 작업을 하니 걱정이다. 산란기의 포획행위는 꼭 근절되어야만 될 텐데...”라며 투덜거렸다.
걱정하며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바다 사랑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중매인은 위판장에 미성어가 보이면 즉시 방류해 버린다고 옆에서 누군가가 귀띔을 해 주었다.
위판장에 빙 둘러 서 있던 활어차들도 한 대씩 빠져나갔다.
갯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그 생생한 삶의 현장!
이윽고 애써 건져올린 어획물을 돈으로 환산하여 어민들 손에 쥐어졌다.
선속을 높이며 다시 바다로 향하는 어민에게 또 다른 희망이 밝아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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