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개의 계단을 한 달음에 오르는 것이 그렇게 힘에 부칠 일도 아닌데 꼭 그 앞에서는 가위 바 보를 해 이긴 사람이 한 계단 올라가곤 했다.
올라가보면 뎅그랑 뎅그랑 실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 짝을 찾는지 어미를 찾는지 쉬지 않고 우는 새소리, 그 소리에 맞춘 듯 나무 사이를 날다시피 하는 다람쥐가 살고 있었다. 30년쯤 전의 남산은 그렇게 조용한 곳이었다.
입구에는 여름밤이면 온 가족을 TV 앞으로 불러 모으던, 전설의 고향에 나온 거목이 있었다. 양반 딸을 짝사랑했다가 양반에게 죽임을 당한 후 비오는 날 밤이면 ‘내 팔 내놔라, 내 팔 내놔라’한다는 머슴의 이야기가 있던 거목은 잘리고 없다.
번뇌를 상징한다는 108계단을 올라서면 흙 마당에 소나무 냄새가 솔솔 올라오곤 했다. 그때는 벤치 몇 개와 커다란 바위 두 덩어리, 그리고 보광사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향내가 남산의 전부였다.
지금처럼 음악회를 하거나 운동을 하긴 힘들었다.바위 두 덩어리만 달랑 있던, 황량하기까지 하던 남산공원이 2006년 새롭게 단장하고 군민들의 건강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흙이 풀풀 날리던 공원은 보도블록으로 깔끔하게 정리됐고, 유리창은 다 깨진 채 을씨년스럽던 도서관은 주차장으로 변신했다. 여름밤이면 ‘내 팔 내놔라’ 대신 감미로운 음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운동을 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더니, 언제나 그대로일 것 같던 남산도 이제 ‘공원’이 돼, 고성읍뿐만 아니라 고성군민 모두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남산은 전설의 고향이 아니라 문화의 고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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