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고성신문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후 이종수(당시 민족청년단고성군단부단장)씨가 대청동 미공보부에서 상영한 피터� ��가의 ‘출판자유’라는 영화를 보고 고성에도 신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
그는 동지들과 공산주의를 이기기 위한 의식개혁과 투쟁방법을 바꾸기로 의논하고 힘을 모아 주간 고성신문을 창간했다고 전한다.
이에 제헌 국회의원이였던 이구수 의원을 만나 상의하니 찬성하여 1946년 8월 하순에 공보처 허가를 받아 창간했다.
이구수씨가 발행인을 맡고 주필 겸 편집인은 이종수씨가 인쇄인은 강익형(정문사 사장)가 맡았다.
당시 타블로이드 4면지로 매주 토요일에 발행됐으며 1천 부를 제작해 무료로 배부했다.
발행인 이구수씨는 한국전쟁 이후 평양으로 가 평양시장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신문사 운영비는 독지가의 기금으로 충당해 사용했다.
고성신문 발간이후 민족진영으로 전향하는 군민들이 늘어 나고 무질서한 사회질서가 평온을 찾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최초 고성신문은 21호까지 발간한 후 이구수씨의 지지청년단에 의해 발간권을 넘겨 주고 2회를 더 발간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우리 고성의 자랑 고성신문이 그 역사의 항쟁 속에서 다시 태동해 16년간의 고된 항해를 해 가고 있다.
이제 군민과 독자들의 깊은 관심 속에 전국 최고의 지역신문으로 자라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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