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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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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들녘·바다에서 허리 굽혀 일하기 시작해 해가 저물고도 또 부엌으로 향한다. 이들은 생업과 가족을 뒷바라지하며, 때로는 노모의 간병까지 감당하는 바로 여성농어업인이다. 그 고단한 노동에는 멈춤이란 단어를 붙일 틈조차 없다. 이들은 농어업·농어촌을 지탱하는 두 수레바퀴의 한쪽과 같은 존재지만 온당한 지위 없는 조력자에 머물러 주체적 위상을 갖지 못했다. 실제로 여성농어업인은 농어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농어업과 가족 돌봄을 병행하며 고된 노동을 감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농어업소득은 한계가 있어 생계유지를 위해 또는 농한기 유휴노동력 활용을 위해 그들은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이들을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현실은 변방, 때론 뼈아픈 생존의 문제였다. 그런데 오랜 요구와 기다림 끝에 2016년 여성농어업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공동경영주 제도가 생겼다. 경영주의 배우자에 불과했던 여성농어업인도 공동경영주란 지위가 생긴 것이다. 비로소 여성들도 농어촌·농어업의 당당한 구성원이 될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특히 경남은 경영주뿐만 아니라 공동경영주에게도 농어업인수당을 지급함에 따라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공동경영주가 생겨났다. 조력자·보조자로만 불리던 여성농어업인도 마침내 농어업 경영의 공동주체 지위를 갖게 된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제도에 숨겨진 또 다른 장벽에 부딪혔다. 바로 공동경영주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겸업제한 때문이다. 이들은 겸업하면 공동경영주 등록을 거부당하거나, 등록된 지위마저 상실하게 된다. 경영주와 동등하거나 더 많이 농사일에 기여함에도 경영주와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 즉 경영주는 겸업해도 되는데 공동경영주는 안 된다. 이는 불합리한 차별이다. 때문에 여성농어업인들은 농어촌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불합리한 규제 개선을 호소하고 있지만 속시원한 메아리는 없다. 농어가소득 구조를 보면 겸업제한이 농어촌 현실과 괴리가 있음이 더욱 명확해진다. 2024년 농가소득 중 순수 농업소득은 20%도 안 되고, 어가의 경우 순수 어업소득이 43.8% 수준이다. 특히 경남의 경우 그 비중은 더 낮다.
이는 농어업소득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농어업인의 겸업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연이다. 하지만 여성농어업인이 농어업·농어촌의 구조적 여건과 현실 때문에 겸업하게 되면 겸업제한 때문에 공동경영주 지위를 상실해 또다시 여성농어업인 지위 향상을 위해 도입된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겸업제한은 단순한 규제 이상의 문제다. 이는 농어촌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는 여성농어업인의 지위와 직결되고, 농어촌공동체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다. 여성농어업인을 위해 만든 제도가 벼랑 끝에 있는 농어촌과 여성농어업인의 현실을 보듬지 못한다면 이들은 속절없이 농어촌을 외면할 것이다. 사람이 떠나고 있는 농어촌, 여성농어업인이 삶의 터전으로 정을 붙일 수 없다면 농어촌은 과연 지속가능할까?
제도는 현실을 보듬고 미래지향적으로 개선되고 운영돼야 한다. 여성농어업인이 농어업의 거의 절반을 지탱하며 때로는 겸업으로 가계경제를 꾸려나가야 하는 경우가 상당한 것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경영주는 겸업해도 되나, 공동경영주는 안되는 현실성도 형평성도 떨어지는 불합리한 제도는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 여성농어업인은 오늘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행정당국은 간절한 목소리에 합당한 결과를 내놓는 것이 농어촌을 지키는 여성농어업인에 대한 책무다. 이는 농어업·농어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정책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