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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향교 심상정 전교의 서원이야기-5 문화와 역사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숲, 고성 수림서원

1856년 창건, 고종 서원철폐령 이후 중건
배현경 배연지 배인경 배맹관 배상곤 배경 제향
옛 서원의 모습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 건축양식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08월 14일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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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읍에서 마암면 방향으로 가다가 마암면사무소에 못 미쳐 오른쪽 농로로 들어간다. 화산리 서화마을이다. 한적한 이 마을에 수림서원이 있다.

# 선현들의 얼을 기리는 공간
수림서원은 1856년(철종 7년)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화산리에 창건됐다. 서원은 1983년 7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호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더욱 널리 알렸다. 달성배씨 문중이 소유, 관리하는 수림서원은 도기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수림서원(繡林書院)의 글자만 풀이하자면 ‘아름답게 수놓은 숲’이라는 뜻이다. 주변 산세가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워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보통 학문이 융성한 곳, 또는 인재들이 모여 있는 빼어난 배움의 터전을 말할 때 ‘수림’이라 쓰기도 한다. 수림(繡林)은 중국 한나라 시대, 문장과 학문이 뛰어난 사람들을 부르는 ‘수림지사(繡林之士)’와 연결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수림이라는 이름은 학문에 있어 빼어난 인물을 배출하거나 그런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수림서원은 달성 배씨 문중의 무열공(武烈公) 배현경(裵玄慶), 밀직(密直) 배연지(裵延芝), 고부군(古阜君) 배인경(裵仁敬)을 처음 제향하였다. 이후 낙포(樂圃) 배맹관(裵孟寬), 성재(省齋) 배상곤(裵尙崑), 백유당(百柳堂) 배경을 추가로 봉안하여 총 6명의 선현을 모시고 있다.
배현경(裵玄慶)은 고려 건국에 기여한 개국공신으로, 궁예 휘하에서 병사로 복무하다가 후일 왕건과 뜻을 함께하여 고려 개국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병졸에서 시작해 공을 세우면서 종1품 대광(大匡) 벼슬까지 이르렀다. 마군장군일 적에는 신숭겸이나 홍유, 복지겸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들과 함께 건국에 큰 몫을 했다. 태조 왕건으로부터 대광의 벼슬을 받았으며, 병으로 별세하자 태조가 친히 장례를 관장했다. 시호는 무열공(武烈公)으로 추증되었으며, 고려 무인의 상징적인 인물로 추앙받는다.
배정지(裵廷芝, 1259~1322)는 고려 후기 무신으로 충렬왕과 충숙왕 치세에 활약했다. 거란군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별장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탐라(제주)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워 밀직부사에 올랐다. 정치적 혼란기였던 고려 후기에 군사적 안정과 왕권 수호에 기여한 인물이다.
배인경(裵仁敬)은 고려 말기의 고위 문신으로, 추밀원사를 역임한 뒤 흥안부원군에 봉해졌다. 문중 내에서는 성주 배씨의 파조로도 알려져 있으며, 고려 말 중앙정계에서 주요 외교와 정책을 맡아 수행했다. 그의 정치적 역량은 달성 배씨 문중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배경(裵慶)은 조선시대 문과에 급제한 관료로, 학문적 소양과 행정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관직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후손들이 위패를 모셔 기릴 만큼 지역 유림 사회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녔던 인물로 평가된다.
수림서원 역시 고종의 서원 철폐령을 피하지 못하고 사라질 뻔했으나 후손들의 뜻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품격있고 아름다운 건축 양식
수림서원은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 재실, 부속 공간까지 전통적인 서원 건축의 형태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보통 서원은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 동재와 서재, 후원과 사당 등이 배치된다. 그러나 수림서원은 대문, 솟을대문인 조제문까지 지나야 마당을 만나는데 외삼문인 낙열문에서 서원 안으로 향하면 나무들이 수림서원을 에워싼 풍경이 아주 멋스럽다.
돌담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3칸의 대청이 있는 양정재, 오른쪽은 고직사가 있다.
서원의 중심을 이루는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졌으며, 좌우의 협실과 중앙의 넓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강당 앞으로 펼쳐진 정갈한 마당과 그 너머로 보이는 고즈넉한 산자락은 방문객들에게 여유로움을 준다.
강당 옆으로는 삼량 구조의 산해정이 있다. 과거 유림들이 학문을 논하며 시문을 나누던 장소로, 현재도 그 시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서원의 정문인 조제문은 솟을대문의 형태로 서원의 품격을 더욱 높이고 있다. 흠덕사에서는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어 서원의 정신적 중심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는 향사를 지내어 선현들의 덕을 기리며 전통 제례의 엄숙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서원의 풍경은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서원 앞에는 ‘서화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풍광이 서원과 어울려 소박하지만 보는 즐거움이 크다.
수림서원은 고성군의 유림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화유산이다. 유림 문화를 보존하며 교육의 장으로서, 지금까지도 지역의 자부심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주변의 도연서원, 장산숲 자연휴양림 등과 함께 고성군의 역사와 자연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수림서원중수기(번역 심상정 전교)
철성의 도기산 아래 사원의 옛 터가 있으니 이곳이 배씨의 육현을 모시고 향례를 하는 곳이다. 아아! 무열 밀직 2공의 공덕과 만은 낙포 성재 백유당 4공의 학행은 남쪽 고을의 선비들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영원히 잊지 못함이 마땅하다.
아! 고종 무진년에 서원이 훼철된 후로 서원이 황폐되어 꼴 베는 나무꾼의 놀이터가 되어 지나가는 행인들은 손가락질하고 사림에게도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무릇 옛것을 사랑하고 올바른 덕망을 갖춘 선비는 울분으로 탄식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다.
하물며 후손들이야 폐허로 버려진 것을 내버려 둘 수 있었겠는가. 석용씨가 이곳에 여러 간의 서당을 지어 편액을 수림이라 하니 서원의 이름도 그것에 따랐다.
지난 계해년에 아들 도홍이 선친의 뜻을 이어 여러 친척들과 함께 다시 중수를 논의하여 여러 해에 걸쳐 준공하니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당의 광활한 풍채가 이전에 비하여 크게 증축되었다.
이 당에 오르는 자 어찌 유적을 상기하면 감격하지 아니하며 여운을 완미하며 자랑스럽지 않으리오. 이렇듯 주변의 정취와 빛나는 서원의 모습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도홍 선비는 늘 의관을 반듯하게 하고 서원에 있으면서 향리의 수재들로 하여금 춘하추동 시례와 현송을 배우게 하니 한 지방의 학풍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이어졌다. 이를 어찌 훌륭하다 하지 않으리오.
도홍 선비는 일찍이 내 선친과 숙부를 스승으로 섬겨 힘써 배우고 바른 행실로 칭찬받았기에 나는 존경하는 벗으로 대하였다. 이제 그 아들 상흘 군을 보내 내게 서원의 기문을 의논하거늘 학문이 미천하나 정의상 물리치지 못하고 마음속의 소감을 약술하여 보내노라.
무진년(1928) 팔월 초순 덕은 송병헌 쓰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5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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