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일찍 찾았다면 보리밭의 싱그러움에 눈이 부셨을 것이다.
지금은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모가 마 치 갓 태어나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처럼 바쁘게 자라고 있다.
이렇게 장산리에는 여름이 왔다.하루 점도록 고매줄 따가꼬 5천원 번다 아이가
마을이 조용하다. 다른 마을에는 간다고 연락해두면 온 마을이 시끌시끌한데 장산리에는 회관 앞집 똥강아지만 깡깡 짖어댄다.
기다리고 있자니 장산리 허종원 이장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다. “할매들 저~있소. 가입시더. 잘 따라오소.”
마을을 가로질러 잠시 갔더니, 할머니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고구마 줄기 껍질을 까느라 바쁘시다. “이기 머꼬. 수박 무라꼬 줬드만 물 다 빠지도록 고마 놔두고. 이 할매들이 고매줄구리 따끼라꼬 묵도 안하고 이란다.”
하루종일, 손톱 밑이 새까맣게 닳을 때까지 껍질을 벗겨도 손에 쥐는 돈은 5천원이다. 그래도 제연희 할머니는 감지덕지, 감사한다.
“고매 줄 딴 것도 은자 10년짬 됐다 아이가. 은자 고마, 다리가 불편해가 몸도 쓰도 몬하긋다. 그래도 또 생각을 해보모, 5천원이 오데고.”
# 예쁜 사람만 좋아하는 개가 사는 허씨 고가
마을을 돌아 보다보니 마을 꼭대기에 정말 고래등만 한 기와집이 한 채 떡 버티고 섰다. 경상남도 문화재 115호, 허씨 고가. 솟을대문과 가묘(家廟)가 일본풍이 섞인 전형적인 조선말기 사대부집안의 그것이다.
향기는 없지만 독이 있어 사람을 끈다는 능소화가 핀 앞마당을 지나 바깥 사랑채로 들어가 보니 일본냄새가 풍긴다. 마을 뒷산이 꿩을 닮았다더니 사랑마당 가운데에 꿩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앉은 듯 나무가 꿩 모양이다.
나무가 많은데다 촉촉이 비까지 내려 그 내음이 흙냄새와 섞인 채 향긋함을 풍긴다. 흉하게 킁킁거리고 있는데 주인이 나뭇잎 하나를 똑 따서 반으로 찢어서 내민다. “냄새 함 맡아 보이소. 이 냄새 맡으모 참 기분이 좋아집니더. 고기 삶을 때 넣어도 이기 향이 쏙 배이서 얼마나 맛이 있는데.” 코에 대보니 정말 기분 좋은 향이 난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이기 바로 손기정 선수가 머리에 썼던 월계수 아이요.”
# 조상이 만들고 후손이 지켜내는 장산숲
장산숲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연못에 노니는 작은 배와 그 주위에 둘러앉아 술을 권하고 마시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환영이 보이는 듯 했다.
서어나무, 푸조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해송, 이팝나무, 물푸레나무...머리 나쁜 사람은 기억도 다 못할 정도로 많은 종류의 나무가 서늘하기까지 한 그늘을 만들어낸다.
600년쯤 전에 이퇴계의 제자인 천산재 허천수 선생이 연못을 파고 노산정을 지어 낚시도 하고, 뱃놀이도 하던 곳에 나무를 가득 심었다. 그래서 장산숲이 탄생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는 줄어들고 연못은 말라갔다.
후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후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복원해냈다. 그러나 처음의 1km나 되던 숲은 이제 10분의 1인 100여m 밖에 남지 않았다. 장산숲에는 전망대처럼 쓰이는 보인정이 있다.
여기서 보이는 마을 앞산은 볏단을 쌓은 것 같아서 노적봉이라고 한단다. 그래서일까. 장산에는 유난히 부자도 많고, 인심도 넉넉했단다.
# 지원금 좀 더 주라 해봐라, 기자야
장산마을은 장산과 서장산이 합쳐진 마을. 원래 두 개이던 마을이 하나로 합쳐졌는데 마을회관은 여전히 2개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모이는 것도 두 군데인데, 면과 군의 지원금 186만원은 서장산을 뺀 장산, 한 쪽에만 나온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자금이 부족해 변변한 관광도, 식사도 힘들단다.
어려운 점을 말씀해 보시랬다. 군수님도 우리 신문 보시니까 여기다 쓰면 군수님께서 신경써주실 거랬다. 이구동성 한 말씀들만 하신다.
“군수님한테 지원금 그거 좀 우찌 안되긋느냐 캐봐라, 기자야.” 기자가 지원금을 주는 것이 아닌데도 모두들 기자에게 사정을 하신다.
물론 어려운 지방재정이지만 그래도 우리 살림을 이만큼이라도 살게 하신 어르신들이 맛난 것도 드시고, 재미난 구경도 하고 싶으시다는데...군수님,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매주 부탁만 해대면 군수님도 피곤하시겠지만, 그래도 필요하시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장산마을을 막 빠져나오는데 길게 소 울음이 들린다. 마치 70평생 허리 펼 날 없이 농사짓다가 이제 겨우 허리 한 번 쭉 펴본 황혼의 촌부가 내지르는 탄성처럼.
“돈이나 명예보다 마을 분들의 건강이 먼저입니다 ”
장산 마을 이장 허종원씨 인터뷰
우리 마을은 보리농사, 벼농사가 주 소득원이며, 전답 모두 73.7ha인 농촌마을입니다.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약 90%를 차지하며, 인구수는 80세대 총 182명입니다. 할아버지들이 빨리 돌아가셔 지금은 할머니들이 93분, 할아버지들이 89분이 살고 계십니다.
농촌마을이지만 우리 마을의 영세 농가는 11가구로, 부농이라고 할 것까진 없습니다. 대신 조상대대로 선비, 양반 집안이 많아 저희 후손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장으로서 제가 바라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닙니다. 마을을 지탱해나가는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시는 것이 저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