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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노년을 위해, 노인 아닌 선배시민 되기-노인, 돌봄을 넘어 시민으로 지역사회를 주도하는 독일

학습 욕구 해소로 인생 이모작 실현하는 프로 제니오레스
지역사회 문제와 노인 정책 개선을 위한 노인 대변인제
노인의 사회참여를 법과 제도로 보장하는 시스템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5년 08월 01일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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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2024년 현재 전체 인구 약 8천400만 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약 1천850만 명으로, 인구의 22%를 넘는다. 이 수치는 유럽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고령화의 심화는 단지 인구 구조의 문제를 넘어, 복지비용 증가와 세대 간 격차, 사회적 단절 등의 복합적 문제를 불러온다.
사회적 고립은 단지 정서적 고통을 넘어 실질적인 건강 위협이 된다. 이에 독일은 노인을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닌, 사회의 동등한 시민이자 적극적 주체로 세우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 노인을 돌봄의 수혜자가 아닌 사회적 주체로 보는 독일
독일은 고령자를 두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 돌봐야 하는 복지 대상이 아닌,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주체적 역할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베를린에서 2006년 제정된 ‘베를린 노인참여법’이다. 이 법은 60세 이상 시민이 각 지역의 노인대표로, 노인대변인 선거에 출마하거나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이와 유사한 제도는 독일의 다른 연방주에서도 운영된다. 함부르크는 2012년 노인참여법을 제정해 지역 노인회의를 공식화했다. 특히 이 법은 성별, 이주 배경, 장애 유무 등을 고려해 대표 구성을 다양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령자의 자발적 활동을 장려하는 국가 차원의 제도도 운영 중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공기관이나 사회복지단체에서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방 자원봉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특히 은퇴 후에도 사회활동을 이어가고자 하는 고령자에게 제도적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3년마다 열리는 ‘독일 노인대회(German Senior Citizens’ Day)’는 독일연방노인단체연합(BAGSO)의 주관으로 전국 고령자가 한 자리에 모여 정책 제안과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토론의 장이다.
이 행사는 고령자의 삶의 질, 디지털 포용, 돌봄 정책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고령자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는 창구가 된다.

# 일단 나가서 배우자! 프로 제니오레스
베를린에는 자유대학교, 훔볼트대학교, 샤리테 의과대학 등 세 곳의 주요 대학이 있다. 이 중 샤리테 의과대학은 1978년부터 노인대학을 운영해 왔으며, 문학, 박물관, 건축 등 은퇴자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강의와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었다.
하지만 1989년 독일 통일 이후 체제와 문화의 차이는 노인대학 운영에도 어려움을 가져왔다. 운영을 담당할 단체나 담당자가 사라진 것이다. 이후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단체가 바로 프로 제니오레스(Pro seniores e.V.)다.
프로 제니오레스는 1995년, 샤리테 의과대학의 일부 교수와 직원, 시민들의 주도로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고령자 교육을 위한 시민사회 조직으로서, 베를린 내 여러 대학에서 의학, 생명과학, 사회문제, 환경, 문화 등 고령자의 삶과 밀접한 분야의 강의를 제공한다. 강의는 샤리테 의과대학 외에도 베를린의 다른 고등교육기관 소속 교수 및 전문가들이 맡는다. 개설되는 강좌 수는 학기마다 다르며, 주제는 강의 프로그램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성된다. 구체적인 일정과 강의 주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되며, 사전 등록 없이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정회원은 연회비 납부를 통해 정기적인 뉴스레터 수신, 프로그램 안내, 총회 참여 등의 권한을 갖는다. 총회는 연 2회 개최되며, 단체 운영 방향과 예산 집행 등에 대한 주요 결정이 이뤄진다.
창립자인 베른하르트 파이스커 박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철학은 ‘일단 나가서 배우자’라는 것이다. 신체 활동과 정신 건강을 위해 학습활동이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라면서 “고령자라고 해도 학습에 대한 욕구나 필요성은 분명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은 고령자의 고립감 해소에 매우 효과적이다”라고 강조했다.
학습 외에도 주 1회 산책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참가자 15명은 이미 80회 넘게 참여했다. 일반적인 산책과는 달리, 그 강도는 등산이나 트레킹에 가깝다. 한 번 나서면 10㎞ 정도는 가볍게 걷는다.
프로 제니오레스의 최고령 회원은 103세다. 고령으로 인해 매주 학습활동에 참여하진 않지만, 여전히 건강하게 활동 중이다. 산책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는 96세 회원도 있으며, 이들은 같은 관심사를 학습한 후 소그룹으로 토론하며 자연스럽게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사회활동에 나선다.
의료 관련 직업학교 교사로 일하다 은퇴한 로자 마리 쾨스틀러 씨는 “은퇴 후에는 사회적 활동이 줄어드니 고립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습활동을 위해 자주 외출하고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삶의 질이 좋아졌다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다.
IT 분야 강의를 맡고 있는 베즈너 씨는 “고령자들의 학습활동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고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자각하게 해주는 중요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프로 제니오레스는 교육을 지식 전달 이상의 가치로 바라보며, 고령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시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접근은 독일 사회에서 고령자의 사회참여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는 실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지역 밀착형 노인참여 시스템
독일에서는 베를린 외에도 지방정부 또는 시민사회 주도로 설립된 노인사무국 ‘알텐뷔로(Altenbüro)’가 전국 각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공식 명칭인 시니오렌뷔로(Seniorenbüro)와 병행해 사용되며, 연방노인사무소(BaS·Bundesarbeitsgemeinschaft Seniorenbüros)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이들은 고령자의 사회참여와 일상 속 활동을 지원하는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
지역의 특성과 수요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는 노인사무국은 고령자의 참여권을 보장하는 유연한 플랫폼이다. BaS의 보고서에 따르면, Altenbüro는 지역사회 내에서 고령자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그 역량을 사회적 자원으로 재발견하도록 돕는 기반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노인사무국을 통한 고령자의 참여율이 약 7%p 증가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구조는 고령자를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닌 지역사회의 주체로서 인정하고, 삶의 경험과 지혜를 다시 공동체로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노인사무국는 단순한 복지 창구가 아니다. 공공기관, 복지단체, 시민사회가 협력해 설립, 운영하며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정보와 사람, 기회를 연결하는 촘촘한 실천 공간이다.

# 문화로 세대를 잇는 KH2 프로젝트
독일 고령자 중 3분의 2 정도는 월 1천 유로, 한화로 160만 원 이하의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지만 문화생활까지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고령자 특히 연금생활하는 은퇴자들에게는 문화적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에서는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이 활성화돼있다. 고령자에게는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청소년들에게는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활동을 통해 문화가 오락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회복을 위한 도구이자 계기가 된다.
KH2로 불리는 Kulturisten Hoch2는 201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세대 통합형 문화예술 참여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65세 이상의 저소득 고령자와 지역 고등학생이 짝을 이뤄 연극, 공연, 전시 등 문화예술 행사를 함께 관람하고, 그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KH2는 문화 향유의 기회가 제한된 고령자에게 실질적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고령자와 청소년의 교류를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또한 청소년들은 사전 교육을 통해 고령자와의 소통 방식과 예절을 배우고 활동에 참여한다.
이 프로젝트는 출범 이후 함부르크를 넘어 킬(Kiel) 등으로 확장됐다. 2020년부터는 독일 내 다양한 재단과 협력해 사회적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2022~2023년에는 ‘KH2biografisch(비오그라피쉬·전기)’라는 프로그램이 추가되면서 청소년이 고령자를 인터뷰하고 그 생애를 기록하며 삶과 일상 전반을 두고 교감하는 등 프로그램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중 운영되지 못한 프로그램은 지난해부터 부활해 여름에는 고령자, 청소년들이 에른스트 도이치 극장(Ernst Deutsch Theater)에서 함께 문화행사를 관람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는 문화적 소외를 완화하고, 세대 간 민주적 소통을 실현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발언하고 행동하는 노인, 노인대변인제
베를린에서는 노인참여법에 따라 각 구청에서 노인대변인회를 구성할 수 있다. 만 60세 이상 주민이라면 경력, 분야, 정당 소속에 상관없이 선출을 통해 대변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템펠호프-쇠네베르크구는 노인대변인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최대 1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구청 및 시의회와 협력해 노인 정책과 생활환경 개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자문 활동을 수행한다.
위원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자발적으로 활동한다. 시와 구 차원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베를린 전체 노인대변인연합회와의 연계를 통해 시 단위 과제에도 공동 대응한다.
이들은 교통 안전, 고령자 주거환경 개선, 디지털 정보 접근성, 소비자 보호, 지역문화 참여, 건강 돌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베라 그란트케 씨는 “노인대변인은 정치색을 띠기보다 중립에 서서 노인뿐 아니라 지역 주민 전체를 대변한다. 생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이나 사업을 발굴하는 것이 역할이며,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위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어 풍부한 논의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안네도레 랄크 씨는 “홀로 사는 노인들은 외로움과 고립감을 겪게 된다. 노인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도 느낀다. 조직적으로 협업하고 소통하는 활동은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라고 전했다.
위원회는 지역 주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 간담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간담회에서는 구정과 관련된 문제 제기, 생활 개선 제안, 민원 청취 등이 이루어지며, 이를 바탕으로 구청과의 협의가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연중 2~3회의 집중 토론회와 연 12회 이상의 회의를 통해 주요 사안을 심층적으로 논의한다.
위원회는 템펠호프-쇠네베르크 구청과 공식 협력 관계를 맺고 구의회와 행정 부서와도 연계한다. 이들은 법적으로 ‘전문 시민(Sachkundige Bürger)’ 자격으로 일부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권을 갖는다. 의결권은 없지만, 고령자의 시각에서 정책을 보완하고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프란시스 홀츨자우어 씨는 “이 활동이 신체적·정신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고령자에 대한 사회적 비용 자체를 크게 줄이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독일에서는 근무 경력에 따라 연금이 다르며, 소득 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고령자들은 지출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 대변인 활동은 보조금으로 운영되지만 인건비는 없기 때문에 늘 예산이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 활동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보람은 금전적 보상보다 훨씬 크다”라고 덧붙였다.
노인대변인제는 상징적인 제도에 머물지 않고, 지역 민주주의 안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도적 기반 위에서 활동과 결과물이 축적됨에 따라, 독일의 고령자들은 더 이상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권리를 행사하고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시민으로 기능하고 있다.
템펠호프-쇠네베르크구의 노인대변인들은 고성군의 고령자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일단 나가라. 그리고 모여라. 그리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라. 그러면 우리의 삶과 우리의 지역은 바뀔 수 있다!”
/최민화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5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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