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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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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의 고장 영양’은 내 고향이다. ‘문향의 고장 영양’은 조지훈 시인과 이문열 소설가 덕분에 붙여진 별칭이다. 반딧불이 천문대를 품은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이 있는 영양이 이번 산불로 엄청나게 큰 상처를 입었다. 인구 일만오천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영양이 많고 많은 사람에게 안타까운 이름으로 새겨졌다. 4월 5일 아침 7시, 그 영양을 향해 길을 나섰다. 매년 5월 5일이 어머니 기일이라 산소를 가지만, 올해는 앞당겨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산소뿐만 아니라 조금 떨어져 있는 백모님 산소마저 그 산불의 손길이 뻗쳤기 때문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고성의 송화가든 백옥현 사장이 볏짚을 구해주고, 함께 동동숲을 가꾸는 정주락 선생이 반나절 작두질한 여섯 포대의 볏짚과 한참 자란 꽃나무 네 그루를 싣고 아침밥도 거른 채 나섰다. 비 예보가 있는 흐린 날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 톨게이트에서 동생 내외를 만나 내 차보다 좀 큰 차에 짐을 옮겨 실었다.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밥을 해결하고 영양으로 가는 중앙고속도로에 올랐다. 곧 의성이 나올 것이다. 의성, 의성, 의성…… 내 마음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고운사도 있고, 대학 동기 동화작가 권영호 선생도 사는 의성인데,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의성인데, 안동 분기점에서 상주영덕고속도로로 접어드니 그 의성을 북처럼 두드리고 싶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100㎞의 속도로 달려도 이리 먼 길인데, ‘달리는 산맥’이라더니 천리마처럼 달려간 그 불길이 한 마리 거대한 짐승같이 느껴졌다. 새까만 양탄자를 깔고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는 죽은 것일까, 울고 있는 것일까, 박제돼 있는 것일까? 청송영양 나들목으로 나와 지척에 있는 신촌약수터 슈퍼에서 일철에 큰집에서 쓸 음료수와 산소에 올릴 법주를 사서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카센터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불타 있었다. 학교 운동장과 생나무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건물이었다. 신촌에서 영양 답곡으로 가는 지방도 곁에 있는 건물과 비닐하우스와 산소는 표적처럼 하나둘씩 까맣게 타 있었다. 답곡 마을에 있는 천연기념물 만지송도 주변과 아랫부분이 화를 입었다.
석보면 주남마을 내 아버지 어머니 산소는 아무리 추리를 해도 이해가 되지 않게 화를 입었다. 앞산도 마을도 멀쩡한데 불화살이 날아온 듯 뒷산은 새까맣게 타고, 산기슭과 잇대어 있는 산소는 뒤에서부터 앞부분만 남기고 고스란히 타 있었다. 두 분이 마련해 준 볏짚을 뿌리며- 많이 놀라셨지요. 많이 뜨거웠지요. 고성에서 만들어 온 새 이불 덮으시고 편히 쉬세요.-하고 잔 부어 올리니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울음이 컥컥컥, 올라온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의성에서 여기가 어딘데 이렇게 만든다는 말인가.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보다 이제야 떠오르는 수많은 생명, 시커멓게 서 있는 목숨들을 생각하니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동동숲에서 캐간 네 그루의 꽃나무를 심고 나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서둘러 연장을 챙겨, 왔던 길을 되가지 않고 가장 피해가 컸던 화매와 삼의계곡으로 해서 영해, 축산, 영덕으로 해서 다시 상주영덕고속도로에 올랐다.
처참하다. 그렇게 울창하던 계곡, 산기슭과 잇대어 있던 순박한 집들과 따뜻한 비닐하우스, 봄과 가을을 아름답게 해주던 사과밭, 온갖 모양의 크고 작은 축사들, 바닷가에 예쁘게 지어졌던 펜션들, 그들은 한결같이 울고 있었다. 그냥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하늘도 울고 있었다. 그날, 그날 못 가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켜켜이 쌓인 낙엽 속에서 따뜻한 봄을 꿈꾸던 수많은 벌레들아, 알들아, 번데기들아, 씨앗들아, 다람쥐에서 산토끼까지, 곤줄박이에서 산비둘기까지, 너희들은 어떻게 그 뜨거운 불길과 매캐한 연기와 싸우다 갔느냐?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되뇌일수록 그날의 매캐한 연기 속에 있듯 가슴만 답답하다.
영덕IC에서 안동 분기점까지 한 시간을 족히 달려도 끝없이 펼쳐지는 시커먼 산과 박제처럼 서 있는 시커먼 나무들! 일간지에 누워있는 글자들아, 방송에서 흘러가는 말들아, 축구장 몇 개라고 하지 말고, 여의도 몇 배라도 하지 마라, 광장에서 삿대질하고 소리치던 사람들아, 여행 가방을 굴리며 국제공항에서 북적이던 사람들아, 내 아이를 의사 만들겠다고 초등학생 아이들을 학원으로 데리고 가는 사람들아, 학교를 하루 쉬더라도 하루 날 잡아 상주영덕고속도로를 타보자. 그리고 불길이 지나간 영양, 안동, 청송, 영덕에서 점심 먹고, 간식 사고, 기름도 넣어보자. 이보다 더 좋은 교과서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한 방울 빗방울이 되어보자. 반성하고 보듬는 빗방울이 되어보자.
새카만 숲속의 삼의계곡 물은 말없이 흐르고, 화마가 할퀴고 간 영덕대게로 길섶에는 그사이 벚꽃이 화사하게 피고 있다. 새까만 땅에서도 금방 파랗게 새싹이 돋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농부들은 계곡과 계곡 사이 작은 밭에 고추 모종, 배추 모종을 심을 비닐을 다시 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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