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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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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농사를 지었으나 아직도 갈 길은 지난하고 희망은 여전히 멀다.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다. 이젠 농업을 이해하고 이 땅의 농부로서 자긍심을 지고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며 농촌 생활을 하고 싶은데 미래를 생각하면 모든 게 불투명하고 가슴이 막힌다.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곡괭이와 삽을 들었고, 20대 청년시절부터 본격적인 농부의 길을 걸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을 믿었고 힘든 뒤끝은 웃음과 밝음이 있을 줄 알았다.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했으니 새벽같이 일어나 논으로 나갔다. 그런 뒤끝은 농업의 성공이며 농부의 보람이라 여겼다.
그 사이 농촌의 사정은 많이 변했다. 인터넷을 활용하여 온갖 정보를 획득하고 즉각적인 의견 개진 등 좋아진 내용도 있었고 오히려 열악해진 환경도 생겼다. 또한 예전에 비해 복잡하고 어려워진 몇 가지 문제점도 생겼다. 국내 농업은 WTO와 FTA를 겪으면서 세계 무역의 높은 파고를 직접적으로 맞고 있다. 예전의 농업 과정은 소출을 늘려 생산량을 극대화하여 농작물을 판매하고 소득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요즈음은 저렴한 수입농산물과 가격경쟁까지 해야 하는 실정을 맞았다. 넓은 농지에서 현대식 기계농법으로 생산한 수입농산물은 저렴한 가격을 등에 업고 물밀 듯이 밀려들어 우리의 식탁을 잠식하는 중이다.
우리의 농업형태도 그동안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대규모화와 고부가가치 시설농업, 가공산업과 관광체험 농업, 친환경 농업으로 끊임없는 진화를 시도했다. 정부의 지원 정책과 보조금이 견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지원책이란 게 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견인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정책이든 양면성이 존재하고 거기서 나온 실정은 농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한때는 전업화와 규모화를 강조했기에 빚내어 농지를 사고 규모를 늘렸더니 이젠 쌀이 남아도니 생산량을 줄이라 한다. 따르지 않으면 공공비축미 수매와 경영안전자금을 주지 않겠단다.
우리나라 농부의 1인당 평균 경지 명적은 1.5㏊, 벼농사로 계산한 총수익은 1천350만 원이다. 이 중에 농자재비와 경영비를 빼면 1천만 원도 안 되는 수입이다. 이런 소규모 농가가 농촌에는 너무나 많다. 경남의 농가당 평균 소득이 58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벼농사를 줄이거나 재배작물과 영농법을 바꾸라 하는 것은 가혹한 현실이다. 농촌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60세 이상 고령농가는 전체농업인 230만 명 중에 70%를 차지한다. 그래서 미래세대인 청년 농업인들의 유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의 농촌을 지탱하고 지키는 5060세대와 2030세대간 지원책은 상생의 원칙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청년 농업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존 농업인들의 규모화를 위한 임대 계약권을 중간에서 가로채 공고를 통해 청년세대에게 우선 지원하겠다는 정책은 무리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농촌의 등뼈 역할을 한 5060대 농업인들을 위한 배려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기존 농업인과 청년세대를 두루두루 아우르면서 각각의 분리된 지원책으로 세대간에 서로를 끌어주고 따라주는 상생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허리가 튼튼하고 기둥이 견고하게 바로 서야 서까래 위에 훌륭한 기와지붕을 올릴 수 있다. 지금 농업인들에게 요긴하게 제공되는 ‘농기계 지원 보조사업’에도 일말의 아쉬움이 있다. 중복지원과 제한기간 중 지원이 되지 않도록 공정하게 처리했으면 한다. 아직도 보조금에 대한 지원내용과 방법을 몰라 혜택에서 먼 농업인들을 찾아 그들에게도 골고루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보조금의 지원범위와 깊이, 두께도 복잡해진 농업여건을 감안하여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에서 변화를 찾아야 할 것이다. 최근 농자재 인상과 더불어 농기계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중이다. 보조금 지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이다. 임대사업소의 기계로 해결이 되지 않는 정말 필요한 농가나 법인에게 효능감 있게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같은 살림을 살아도 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실속있고 더 맛난 밥상을 마주하며 웃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몇 가지 당면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았다. 특히 앞으로 닥쳐올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작년에는 기상 이변이 현실이고 고착화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무더위도 오래가고 유별나게 많은 멸구피해와 집중폭우로 쏟아진 비로 땅이 마르지 않아 아예 벼베기를 못한 곳도 있었다. 정말 심각하다. 자연재해에 맞설 인간의 힘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방법을 정부와 농민이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할 시점이다. 정부의 감산 정책이 맞는 기조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해마다 쌀 생산량은 10%씩 감소하는 중이다. 22년 380만 톤, 23년 370만 톤에서 24년엔 360만 톤이 되었다. 자연 감소분과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 감소분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걱정해야 한다. 일본은 실제로 쌀이 모자라 가공용까지 식용으로 돌려쓰고 있다는 상황이란다. 식량 자급율의 목표치를 세우고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예측 가능한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곡물 수입량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다. 곡물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 농업의 기반을 강화하고 곡물의 자급률도 점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 농업농촌을 지키는 중장년 세대와 미래 농업을 이끌어 나갈 청년 농업인들이 함께 손잡아야 할 때다. 한국 농업이 작지만 강한 농업으로, 세계 속의 K-반도체와 같이, K-농업으로 경쟁력 있게 무한 발전하길 바란다. 우리의 농업에서 미래지향적인 희망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