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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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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제정구 기념사업회(회장 이진만)는 지난 8일 평생을 도시빈민을 위해 헌신한 빈민의 벗이자 빈민운동의 성자, 제정구 선생의 26주기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매년 대가면 척정리 선영에서 열렸던 추모행사는 올해부터 그가 학창시절 오가며 꿈을 키웠던 길목의 대가연꽃공원 제정구 커뮤니티 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추모행사에는 제정구 선생의 형님인 제정호 전 재경고성향우회장, 동생 제정원 신부, 이상근 군수, 최을석 고성군의회 의장, 군의원, 이중화 고성교육지원청 교육장 등을 비롯한 추모객 100여 명이 참여해 제 선생의 생애와 정신을 되새겼다. 이진만 회장은 “제정구 선생의 나눔과 상생의 정신은 우리 사회의 만연한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며 선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선생의 큰 정신은 고성을 움직이는 정신이 되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상이 되며, 세계를 움직이는 철학이 될 것”이라면서 “이전까지는 제례 중심에서 앞으로는 선생님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는 그런 기념 사회가 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상근 군수는 “제정구 선생의 따뜻한 인간애와 실천적 행동은 많은 희망을 줬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드는 출발점”이라면서 “요즘처럼 세상이 어렵고 어지러울 때 옳고 그름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마음, 제정구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가 늘 착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분명히 바뀔 것이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오경문 경상남도교육청 학교정책부 국장은 “제정구 선생님은 가짐없는 큰 자유의 가치와 함께 우리에게 진정한 정의와 평등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가르침을 주셨다”라면서 “그 뜻을 받아 경상남도교육청은 모든 아이가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육 지원을 확대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선생님께서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계시도록 하는 일임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정구 선생의 형인 제정호 전 재경고성향우회장은 “제정구가 저의 동생이라는 것 때문에 형인 제가 과대포장됐다.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던 시대에 빈민들을 대변하고 정치를 바로잡고자 하는 등 동생이지만 정말 높이 평가받을 인물”라면서 “누군가는 지금 우리나라는 제정구가 꼭 필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제정구는 시대적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 아닌가, 시대가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며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날 추모식에서 고성군문인협회 백영현 회장은 “제정구 선생이 꿈꾼 세상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라면서 “빈민의 벗으로 이 세상에 가장 낮은 몸짓으로, 편안한 삶 한 번 살아보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살다 가신 선생님은 고성인의 자긍심이요 자존심”이라는 편지글을 낭독했다.
이날 추모식 이후 아름다운 사람, 제정구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일부 추모객은 척곡마을 선영을 찾아 제를 올리고 생가를 둘러봤다. 제정구 선생은 1944년 대가면 척정리 척곡마을에서 태어나 대흥초, 고성중, 진주고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제적, 복학한 후에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기도 했다. 제적됐을 시기 야학 교사로 빈민들과 인연을 맺은 후 빈민운동에 헌신, 복음자리공동체 등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도시빈민의 이주를 주도해 현재의 시흥시의 바탕을 만들었다. 그는 정일우(미국명 존 데일리) 신부 1986년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혼탁한 정치판을 닦는 걸레가 되겠다”라며 시흥군포 지역구에 출마해 제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재선되면서는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냈다. 1999년 2월 9일, 폐암 투병 중 55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직후에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