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나눔을 함께!
남외경 작가, 어부의 딸 글쓴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4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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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고성으로 돌아온지 3년, 이제야 제대로 고성사람 냄새를 풍기는 중이다. 지난 3년간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쓰는 인연으로 맺은 고성의 농업인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고성군농민회 회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지난 11월 중순, 무료 칼갈이 봉사 현장에서 우연찮게 물품 및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고, 고성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윤성아 사무국장과 전화 연결이 되었다. 18년간 김장나눔을 이어오면서 그동안 사용한 칼이 무뎌져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는 기계를 싣고 현장으로 가서 칼 60여 자루와 가위 20여개를 갈아드렸다. 내친김에 김장용 액젓 10통을 기부하고, 3일간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로 약속했다.
# 배추 1만포기를 뽑는 날 첫날, 나는 배추 나르는 팀에 배속되었다. 오랜만에 수동기어가 달린 트럭을 몰고 월평리 밭으로 달려갔다. 고성군청 봉사대와 합류해 배추를 차에 실었다. 김장용 배추는 서리를 맞고 서너번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할수록 단맛이 든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부 지방의 김장을 12월이 넘어 담는 이유이다. 요즘에야 김치 냉장고 덕분에 날이 추워지기 전에 김장을 하지만, 늦을수록 배추 속이 맛있어진다는 사실을 알면 고려해볼 일이다. 읍내 덕선리 밭에는 1만 포기 이상의 배추가 켜켜이 알을 품고 나란히 서 있다. 배추속에 스민 햇살이며 바람이며 빗방울의 개수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뽑힌 배추는 공설운동장 옆으로 옮겨 내리는조, 다듬는조, 간절이는조, 쌓는조, 정리조의 손길을 거친다. 이 팀에는 청년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대학생들과 군인들이 팀을 이뤄 맡은 일에 열심이다. 5톤 물차에서는 호스를 통해 바닷물이 간절이는 곳으로 쏟아진다. 반으로 잘린 배추는 바닷물이 든 간수통으로 옮겨져 한번 목욕한 뒤, 지름 10미터의 수조로 옮겨 가운데부터 차곡차곡 쌓인다. 이 일을 맡은 육군8358부대 14명의 군인청년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알알이 맺혔고, 젊음이 보석처럼 빛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소금 포대는 간수통 옆으로 쌓이고, 배추는 수조 속에서 절여지고, 경남장애인부모연대팀은 무와 갓을 씻고, 육수를 뺐다. 일이 끝난 배추 하차팀은 작업대를 만들고, 식사 지원을 맡은 새마을부녀회의 손길은 바빠졌다.
# 둘째날 작업은 8시부터 시작되었다. 수조를 분리하고 물통을 헹구기 좋게 배열한 뒤, 물차의 호스는 민물을 쏟아냈다. 재빠른 몇 분이 배추 거치대에 비닐을 깔고 절인 배추를 작업대로 꺼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배추 씻기 시작, 결이 삭히면서 숨 죽여 절여진 배추는 60여 명의 손길에 씻김을 당했고 거치대에 쌓여 물빼기에 들어갔다. 1만 포기 사이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던 배추들은 숨 죽여진 채 다시 만나 지난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세찬 비바람의 기억을 서로 나누었을까? 사는 일이란 배추 속 한 잎만큼의 인내를, 또 한 잎만큼의 웃음과 눈물을, 이어지는 한 잎만큼의 양보와 욕심을, 또 한 잎만큼의 기다림과 보람을 이어가는 여정이 아니던가. 배추 씨를 포트에 담은 종묘상의 손길이, 이랑을 만들어 어린 모종을 땅에 심은 농부의 부지런함이, 바람과 햇살이 품어주던 여름날의 뜨거움이, 이슬과 빗방울이 모이던 촉촉함이, 가을을 건너온 시간의 숨결이 겹겹이 모여 한 포기의 배추로 속을 채웠으니. 이제는 알이 꽉 찬 한 포기의 배추가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다.
# 셋째 날 500여 명의 인원이 운동장 옆 공터를 가득 채웠다. 배추 1만 포기 이상, 고춧가루 800근, 멸치액젓 600키로, 새우젓 100키로, 무 100개, 육수 2톤, 갓 스무단, 쪽파 서른단, 설탕 다섯포대, 그리고 3일간 동원인원 1,000명. 80년을 훌쩍 넘겨 90세를 목전에 둔 할매도 할배도 함께 하셨다. 지난 수십년간 배추를 절이고 김치 속을 만들고 김장을 치대 식솔들의 주린 배를 채웠던 그 손은 무뎌지고 주름만 남았어도 기억은 선명하다. 이젠 저마다의 일가를 이룬 자식들이 늙은 부모의 김치통을 채워주건만, 받는 일은 왠지 어색하고 마땅찮다. 평생 주면서 살아왔으니 왜 아니랴? 비록 늙어 구부정한 자세건만 이젠 힘에 부치고 숨이 차지만, 어찌 시뻘건 김치속을 버무리는 즐거움을 포기하랴. 내 자리는 재빠르고 날쌘 젊은이 옆이 아니라 나이 지긋한 늙은이들 곁에 껴서 함께 배추를 버무릴테다. 김치엔 뭐니뭐니해도 정성이 최고지. 주름진 손길에 담긴 세월과 익숙함과 기도를 담고 착하고 순둥순둥한 마음까지 함께 버무려야 제 맛인게지. 학교에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앞치마를 껴입은 초등학생 중학생도, 지난 달 수능을 마친 고3도, 교정을 활보하던 대학생도,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청년도, 작년에 고아가 된 예순살 아저씨아지매도 함께다. 예전에 옴마가 비벼주던 김치의 추억은 짜고 아리다. 무뎌진 혀끝으로 옴마의 김치는 해마다 짜져만 갔었지. 최근 몇 년 간은 너무 싱겁거나 지나치게 짜서 소태맛이 났지만 ‘맛있네, 역시 우리 옴마 손맛이지!’ 라며 엄지척을 외쳤다. 아무리 짜도 김장김치는 묵은지로 먹으면 되니까. 시간이 곰삭여주는 김치의 오래된 맛은 양념을 다 씻어내고 누리끼리한 배추잎만으로도 추억의 맛이 새겨져 오붓한 법이니까. 음식을 할 때는 좋은 생각만 하고 웃음 지으며 할 일이다. 김치를 치대는 그 손길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이 배추 속으로 전해질게다. 좋은 기운을 통해 좋은 에너지를 얻고, 먹는 즐거움과 배부른 뿌듯함을 누릴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으랴. 미워하는 맘, 욕하는 입을 잠시 닫아두고 감사와 사랑으로 채울 일이다. 나눔은 물품만 아니라, 그 속에 진심까지 담아야 제 격이거늘. 오늘 몇 쪽의 김장김치를 상자에 담아 그대에게 전하노니. 여기까지 닿느라 몇 사람의 수십 번을 거쳐온 그 손길을 받으소서. 그리하여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4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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