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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그리는 디카시 – 상리면 신촌

공은정 한국디카시연구소 이사
공은정국어논술학원장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11월 01일
ⓒ 고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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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가명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경옥 노인회장님 댁 잎새 소보록한 수선화가 피기를 내내 기다렸답니다. 그 댁 삽짝을 지나며 눈여겨보았다는 분이 한두 분이 아닙니다. 왜 기다리셨냐고 묻습니다. “봄이 되모 꽃이 제일 먼저 피거든. 봄 온 것도 알고 농사 준비도 인자 해야겠다 마음도 먹꼬.” 이렇게 답하십니다. 
“꽃이 참 예쁘잖아. 탐스럽고.” 다른 분의 말씀입니다. 한 뿌리만 얻어가서 키웠으면 하는 생각이 꿀떡 같았으나, 노랗고 고운 그것을 한 뿌리 나눠달라는 말을 못 하고 입술만 달짝달짝했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경옥 회장님, “달라고 하시지. 가져가시면 되는데.” 그 시원-한 말씀에 어르신의 얼굴은 웃음으로 환해집니다. 내년 봄에는 이 댁에도 저 댁에도 노오란 수선화가 봄을 불러오겠습니다.

이곳은 상리면 신촌 마을, <연꽃피는 작은도서관(관장 박기수)>에서 추진하는 ‘황혼에 그리는 디카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어르신들이 디카시를 쓰실 수 있게 돕습니다. ‘디카시’라는 생소한 문학 장르를 처음 접하시던 날 어르신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습니다. 노래도 하러 오고, 건강도 챙기러 오고, 바리바리 음식을 해 가지고 경로당을 찾아오는 일은 다반사였지만 시를 쓰자고 선생이 찾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디카시가 뭐꼬? 나는 글도 못 쓰는데! 뚱한 표정이었던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올해 OO신문 신춘문예 디카시 부문에 500만 원 대상을 탔던 디카시부터 선을 보입니다. “웃는 얼굴이네? 탈이 웃고 있네?” 예쁘다는 분도 계시고, 그 웃음이 무섭다는 분도 계십니다. “저-, 고작 네 줄 썼는데?” 디카시가 이렇게 쉬운 것인가 의아해하십니다. “그럼요, 한 줄을 쓰셔도 되고, 두 줄을 쓰셔도 돼요. 그러나 다섯 줄은 넘으면 안 돼요. 글자 못 쓰셔도 걱정 마세요. 어머니들 하시는 말씀이 전부 시가 된답니다.”

이렇게 신촌 어머님들의 디카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옥연 부녀회장님 댁 다육이가 피운 분홍 꽃이 곱디고운데, 문득 사진을 보시던 김옥연 어머니가 이렇게 시를 짓습니다.

“너 아무리 좋아도 / 청춘 한때만 못하다”
곁에 계시던 용순자 어머니, 시를 이어받습니다.
“너 아무리 곱다 해도 / 첫사랑만 못하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민요 가락인 듯싶어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디카시는 이제 시작이니까요. 한스러움이 묻어나도 좋습니다. 사진에서 떠오르는 감흥을 직관적으로 풀어가는 게 디카시니까요.
옥천댁 손성근 씨가 사진 하나를 내보입니다. 누렇게 말라버린 콩밭! 자신의 밭이랍니다. 올해처럼 이렇게 농사가 안된 해가 없었다며, 그 넓은 콩밭이 죄다 말라버렸다며 안타까운 탄식을 쏟아냅니다. 콩 줄기보다 더 바짝바짝 타들어 갔을 괴로운 속내를 무엇으로 형용할까!

옥천댁 콩밭
/손성근
허무하다
여름내 농사 지은 게 헛일이다
콩밭이나 작나!

가슴에 고랑만 패인다
통한의 외마디, “콩밭이나 작나!”
정말 이 구절에서 저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어머니들 옥천댁의 등을 어루만집니다.
“개한타, 개한타, 땅만 있으모 내년에 또 농사 지모 댄다.”
경로당은 옥천댁을 위로하는 말로 가득 차고 그 넘실거리는 따뜻함 속에서 도리어 제가 위안을 받습니다.
개한타, 다 개한타…….
3회차 수업에 들면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경임 씨는 핸드폰으로 쓴 디카시 여러 편을 메시지로 전송해 주셨고, 윤금선 어머니, 이갑선 어머니, 백진순 어머니는 꼭꼭 접은 종이를 건네주십니다. 그 속에는 선풍기와 빨간 풍차, 감나무를 바라보며 지으신 그분들의 노래가 있습니다. 관광 가서 보고 온 호미곶의 조형물도, 논밭에 서 있는 동물 퇴치기도, 마을 위로 펼쳐졌던 무지개며 전라도 어디에 있다는 은행나무도, 감 따는 하실댁과 장미꽃보다 고운 상동 아지매도, 모두 모두 디카시가 되었습니다.

“삶이 곧 시”

이 간단한 공식을 저는 믿고 있으며, ‘하늘이 주는 대로 받’겠노라고 (디카시-“하실댁 가을”에서)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삶이야말로 시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생의 부대낌으로 평생 잊고 살던 시라는 것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며 어르신들이 고요한 읊조림 속에 머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디카시는 대상을 보고 떠오르는 바를 <사진 + 5행 이내의 시적 언어>에 담는 것이므로 어르신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노래와 더불어, 건강 체조와 더불어, 디카시가 우리 시대 노인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이제 저는 부포 마을 어르신들을 뵈러 갑니다. 담백하고 수수한 그분들의 언어를 디카시에 담겠습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1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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