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남산을 오르다보면 오른편에 귀신이 나올 듯 으스스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창문은 다 깨지고, 불이 켜진 걸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건물. 그곳이 당시로부터 20년쯤 전에는 불을 환히 밝히고 학구열에 불타던 건물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70년대 초반, 봄이면 모내기, 풀 매기 가을이면 벼 베기 등등 언제나 시험기간은 어쩌면 그렇게도 농번기와 겹치던지. 그러니 시험기간이라도 농사일을 거들어야했던 까까머리 단발머리 학생들은 도서관으로 ‘도망’을 갔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은 그 세대 도서관으로 도망 다닌 학생들, 지금은 4~50대 중년으로 자라있을 그 나이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물론 공부‘만’ 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사람도 있겠지만, 예외도 있었을 것이다.
고성도서관은 고성읍내, 군내 학생들의 집합소이다 보니 평소에는 말도 붙이기 힘들던 새침한 여학생, 과묵한 남학생들을 만날 수 있던 도서관은 ‘학업의 장’이 아니라 ‘만남의 장’이었겠지.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당연한 규칙을 어겨 눈총을 받고, 도서관에서 빌린 너덜너덜한 소설 한 권에 밤을 새버리던 그 시절. 도서관에선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더 재밌어 공부는 뒷전이고 밥 먹고, 이야기하고 놀기 바쁘던 그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이제 아이들을 도서관에 보내고 있다.
고성초등학교 뒤편의 고성도서관은 남산 아래 도서관이 문을 닫고 수년이 지난, 90년에 개관했다.
지금의 고성도서관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클레이아트나 독서토론, 종이접기나 학부모 강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치고 있다.
예전에는 대출카드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책을 대출했다면, 이젠 인터넷홈페이지에서 바로바로 대출받아 전자책(e-book)을 보기도 한다. 남산도서관을 다니던 그 시절의 도서관이 책을 읽는 것에서 만족해야했다면, 지금의 도서관은 지난 세월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거친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 음침하던 남산 도서관을 보지도 못했다. 8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아이들의 기억 속에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니, 30년 동안 강산은 세 번 변하고 도서관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즐길 거리가 가득한 놀이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렇지만 30년쯤 전의 그 시절에 흙냄새 나무냄새를 맡고 새소리를 들으며 공부하고, 쉬고, 이야기하곤 하던 그 남산의 도서관이 이제 중년에 들어선 당시의 까까머리 갈래머리 단발머리들에겐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