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4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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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춘 / 전 구만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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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나고 가을의 절기로 접어 들면 벼 이삭이 하나둘씩 패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농부들은 참새들로부터 벼 이삭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참새 쫓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다리가 하나뿐인 이가 되고 만다. 뛰어 다니지는 못할 망정 튼튼한 두 다리를 갖고 싶지만 올해도 일손이 부족한 서지 아제는 대충 옷을 입혀 바지기에 지고 참새가 제일 많이 찾는 학교 뒤 대나무밭 언저리인 논 귀퉁이에 세워두고 참새 잘 보라는 당부를 단단히 하고 풀지게를 지고 바구들로 향한다. 허수아비는 가만히 서서 자기 옷이며 모자, 신발 등을 살펴보니 허름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허수 ‘애비’인데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 파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밀짚 모자는 여름에 서지 아제가 쓰고 다녔던터라 해지고 구멍이 나 있다. 그래도 테두리는 온전하여 가을 햇살을 가려 얼굴은 타지 않을 성 싶어 다행이다. 옷은 입은 것이 아니고 차라리 걸쳤다고나 할까. 철지난 연분홍 치마와 겨울에나 입는 외투를 양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것도 양 소매에 까만 때가 반질반질 빛이 난다. 신발은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굽 높은 빨간색 하이힐을 신겼다. 그래도 디자인과 색깔은 고급이라 기분은 뽀송하다. 얼굴에 색조 화장을 너무 짙게 하여 개성만 뚜렷하고 귀엽거나 예쁘지는 않는 것 같다. 입술에 바른 루즈는 유통 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것을 발라 입술이 붉지 못해 고양이 쥐잡아 먹은 입술 같아 보기에 따라 조금 겁이난다. 손에 쥐어준 총은 옆집 손자가 가지고 놀다가 집에 버리고간 장난감 권총이라 눈치 빠른 참새가 금방이라도 알아 볼 것 같아 서지 아제에게 새총으로 바꾸어 달라고 해야겠다. 건너편 중섬들 짜구네 허수아비는 자주색 머플러가 바람에 휘날릴때는 너무 아름다워 오금이 저린다. 그리고 몸에 딱 맞는 고급스러운 명품 옷에다 모자도 털모자에 꽹과리도 손에 들고 있어 너무나도 아름다워 들판에 있는 허군 남자를 다 꼬시고도 남을 멋진 아가씨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노란 참새 가족이 떼로 달려들어 채 익지도 않은 벼 이삭을 즙만 빨아 먹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요즘 참새는 학습 능력이 풍부하여 어지간한 허수아지매에게 잘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이토 준지의 단편 중에 무덤 앞에 허수아비를 세워 두면 허수아비가 무덤에 묻힌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기묘한 이야기의 작품이 있으며, 서양에서는 확실히 공포의 상징으로 해가 저무는 저녁 즈음에 허수아비에 까마귀들이 잔뜩 올라서 있다가 한꺼번에 날아가며 울려 퍼지는 까마귀 소리는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할 때 자주보이는 오래된 공포의 고정 관념 중 하나이다. 요즘은 본연의 직업과 상관없이 출장 알바가 너무 많아 어린이에게 신기함과 귀여움을 받기도 하지만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다. 봄이되면 유채꽃 축제장이며, 대학 캠퍼스 축제장에도 자주 다녀오는 편이다. 엊그제는 낙동강 둑방길 코스모스축제에 갔다. 유행에 걸맞게 화려하고 멋스러운 옷에다 개성도 뚜렷했다. 평소 우리들은 한복을 즐겨 입는 편인데 이곳에는 양복과 양장 차림의 신사 숙녀가 더 많아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 온다. 강변 양 옆 길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꽃 밭 어디엔가 숨겨진 스피커에서 조정희 가수의 허수아비 노래가 잔잔하게 흘러나와 눈을 지그시 감고 따라 흥얼거려 본다. ♪♬나는 나는 외로운 지푸라기 허수아비, 너는 너는 슬픔도 모르는 노란 참새, 들판에 곡식이 익을 때면 날 찾아 날아온 널, 보내야만 해야 할 슬픈 너의 운명, 훠이 훠이 가거라 산 너머 멀리 멀리, 보내는 나의 심정 내 님은 아시겠지♫♪ 아마 슬픈 노래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 온다. 오늘은 왠지 나 자신이 처량하게 보이기도 하고 참새 없는 둑방길이 허전하게 보인다.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어찌하랴. 그래도 허수애비 아닌가 하고 애써 자존심을 지키려고 마음을 굳게 한다. 신께서 제일 먼저 만들었다는 코스모스의 얼굴을, 아기와 같이 꽃 구경 온 엄마는 동그란 카메라 유리알에 가을 하늘과 같이 담는다고 여념이 없다. 3박 4일의 알바를 다녀와 몸은 천근 만근이나 초가삼간 자기 집이 제일인 것처럼 휑한 들판이 금세 신선한 갈바람이 불어와 아늑한 내 고향, 내 들판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피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어 한 잠 푹자고 일어나 실눈을 떠보니 벌써 초생달이 가을 들판을 가득 채운다. 갈바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엊그제 패기 시작한 벼가 한 며칠 못 본 사이 벌써 노랑 방울이 앉아 훠이 훠이 여기 저기서 참새 쫓는 소리가 요란하다. 알곡이 여물어 고개 숙이면 네 덕이요, 빈 쭉정이는 내 탓으로 주인의 원망이 대단하다. 시월의 밤이라 서쪽에서 부는 갈바람에 추위가 엄습해 와 한 잠도 자지 못하였다. 어디선가 소모는 소리가 들려 살며시 눈을 떠 보니 억치 영감이 소먹이러 나오는 것이 아닌가…….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4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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