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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영남읍지 고성부지도 와룡산 2개로 그려져
1918년 조선총독부 지도에 하이면 향로봉에 표기
(1) 두 개의 와룡산(臥龍山)
예부터 내려오는 지명(地名)이나 산(山) 이름이 중간에 여러 가지 이유로 바뀌는 수가 간혹 있다.
고성군 하이면에 와룡산(臥龍山)이 있는데 오랜 옛날부터 와룡산(臥龍山)이라고 불러 왔으나 언젠가부터 그 이름이 향로봉(香爐峰)으로 바뀌어서 오늘날 여러 종류의 지도(地圖)에는 모두 향로봉(香爐峰)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향로봉(香爐峰)은 와룡산 안에 있는 가장 높은 봉(峰)을 말한다.
한편 와룡산(臥龍山)은 사천시(泗川市)에도 있으며, 사천시 와룡산 밑에는 와룡동(臥龍洞)이 있고, 고성군(固城郡) 하이면(下二面)에도 와룡산(臥龍山)이 있고 그 밑에 와룡리(臥龍里)가 있다.
예부터 이 두 와룡산(臥龍山)을 부를 때 진주목(晋州牧) 관내(지금의 사천시)에 있는 와룡산은 진주 와룡산(사천 와룡산 또는 삼천포 와룡산)이라고 했으며, 고성군 하이면(下二面 )에 있는 와룡산(臥龍山)은 고성 와룡산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이 두 같은 이름의 와룡산(臥龍山)이 사천시(泗川市)와 고성군(固城郡)을 경계로 이웃하여 오랫 동안 와룡산(臥龍山)으로 불러 왔었다. 그런데 이 고성의 와룡산(臥龍山)이 언제 향로봉(香爐峰)으로 지도상에 바뀌게 된 것인지 살펴 보고 와룡산에 숨겨져 있었던 이야기도 살펴 보고자 한다.
고문헌(古文獻)의 고성현편(固城縣編)을 살펴 보면 ‘여지도서(輿地圖書)’(1765),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 ‘대동지지(大東地志’(1866), ‘영남읍지(嶺南邑誌)’ (1895) 등의 기록에 의하면 와룡산(臥龍山)은 현(縣)의 서쪽 60리에 있고, 운흥사(雲興寺) 및 내원사(內院寺)는 와룡산(臥龍山)에 있다고 되어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사천현편(泗川縣編)의 산천조(山川條)에 의하면 와룡산(臥龍山)은 현 남쪽 30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으며, 불우조(佛宇條)에는 배방사(排房寺)의 옛날 명칭은 노곡(蘆谷)이며 와룡산(臥龍山)에 있다.
고려 현종(顯宗)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 절에 우거하면서 뱀 새끼를 보고 시를 짓기를 “작디 작은 뱀새끼 약포의 울타리를 도는구나. 온 몸에 붉은 무늬가 제대로 아롱졌다. 언제든지 숲 밑에만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하루 아침에 용되기 어렵지 않으리라”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주목편(晉州牧編)의 불우조(佛宇條)에는 ‘와룡사(臥龍寺)는 와룡산(臥龍山)에 있다.
고려 현종(顯宗)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놀고 간 곳이다.’라고 되어 있다.
고려 현종(顯宗)이 와 있었던 와룡산(臥龍山)에 있는 절이 배방사(排房寺)인지 와룡사(臥龍寺)인지 분명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절이면서도 현종(顯宗)과의 관련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고성 와룡산(臥龍山)에는 운흥사(雲興寺)와 내원사(內院寺)가 있고, 사천 와룡산(臥龍山)(또는 진주 와룡산)에는 와룡사(臥龍寺)와 배방사(排房寺)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와룡산(臥龍山)은 사천과 고성에 있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산(山)으로 볼 수 있다.
고지도(古地圖)를 살펴 보면 와룡산(臥龍山)이 한 개가 있는 지도가 있는가 하면, 1871년의 영남읍지(嶺南邑誌) 제2책에 고성부지도(固城府地圖)에는 와룡산(臥龍山)이 두 개가 그려져 있다. 1832년의 경상도읍지의 사천현지도(泗川縣地圖)에는 와룡산(臥龍山)이 하나뿐이다.
1871년의 영남읍지(嶺南邑誌) 제8책 사천현지도(泗川縣地圖)에는 와룡산(臥龍山)이 하나밖에 없다.
김정호(金正浩)가 지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4)에는 와룡산(臥龍山)에 배방사(排房寺)가 있으며, 동여도(東輿圖)에서도 와룡산(臥龍山)에 배방사(排房寺)가 있으며, 운흥사(雲興寺)는 없다.
대체로 고지도(古地圖)에서도 고성의 와룡산(臥龍山)에는 운흥사(雲興寺)와 내원사(內院寺)가 있고 사천의 와룡산(臥龍山)에는 배방사(排房寺)가 있어 사천(泗川)의 와룡산(臥龍山)과 고성의 와룡산(臥龍山)이 두 개의 다른 산으로 볼 수가 있다.
최근에 나오는 1:5만분의 1 지도에 의하면 사천 와룡산(泗川 臥龍山)의 최고봉인 민재봉은 798.6m이고, 고성 와룡산(固城臥龍山)의 최고봉인 향로봉(香爐峰)은 578.5m로 나타나 있으며 고성의 와룡산(臥龍山)은 산 이름이 없어지고 바로 향로봉(香爐峰)으로만 나와 있다.
다시 말하면 와룡산(臥龍山)이 사천(泗川)에도 있고 고성(固城)에도 있었는데 고성의 와룡산(臥龍山)은 지도에서 그 이름이 없어져 버렸다.
지도상에 고성의 와룡산(臥龍山)의 이름이 없어진 경위를 살펴 보면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토지측량사업을 하면서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서 발행한 1918년(大正 七年 三月三十日 發行)에 축척 5만분의 1 지도에 사천군(泗川郡) 와룡산(臥龍山) (798.6m) 으로 표기되어 있고 고성군(固城郡)에는 하이면(下二面)에 향로봉(香爐峰) (578.5m)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후 모든 지도에는 이렇게 표기됨으로써 고성의 와룡산(臥龍山)의 산명(山名)은 지도에서는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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