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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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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천씨 대종중(도유사 천기문)은 지난 3일 동해면 장좌리 하장마을에 소재한 호암사에서 중시조 화산군 충장공 천만리 장군 탄신 제481주기 제향식을 가졌다. 전국에서 후손들이 찾은 가운데 진행된 이날 제향식은 초헌관 천정로․아헌관 천세근․종헌관 천삼근․대축 천도수․집례 천영만 종인이 각각 맡아 진행됐다.
천기문 도유사는 “우리가 모인 이 공간은 천만리 할아버지의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곳”이라면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하기 위해 싸운 할아버지의 고귀한 마음을 우리 후손 모두가 본받아 더욱 정진하고 화합하며 가문을 빛낼 수 있도록 노력하자”라고 당부했다. 보통 여성 종원들이 음식만 준비하고 절은 하지 않는 데 반해 이날 제향식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여성 종원들도 함께 참여해 절을 올리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제향식은 고성요양병원, 고성영락원장례식장 등 종원들이 협찬했다.
제향식을 개최한 호암사는 조선시대 순조 임금의 명을 받들어 화산군 충장공 천만리 장군의 공훈을 기려 예조에서 건립한 경남도 내 부조묘 두 곳 중 한 곳이다. 천만리 장군은 명나라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면서 두 아들 천상, 천희와 함께 조선에 와 3전 3첩 전승의 빛나는 전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화산군의 봉작과 임진란 일등공신으로 자헌대부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이후 함께 온 장군과 병사들은 명나라로 돌아갔지만 천만리 장군은 조선에 남았다. 숙종은 대보단을 설치해 종향하도록 했고, 순조는 신주를 부조하도록 했으며 순종은 종헌의 뜻을 담은 ‘충장(忠莊)’이라는 시호를 하사했다. 호암사가 위치한 동해면 장좌리는 중시조 천만리 장군의 장자인 한성부좌윤공 천상이 1621년경 청나라의 탄압을 피해 터전을 잡은 후 집성촌이 형성되면서 현재 17세손까지 이어오고 있다. 천만리 장군은 태어난 연월일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사망과 관련된 기록은 없어 탄생일에 맞춰 제향식을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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