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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우리 역사의 환향녀

여성을 비하하던 말 이제 그 의미 사라져야
/김진환국학원경남지부이사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6월 01일
ⓒ 고성신문












요즘은 잘 돌지 않는 말 중에 환향녀라는 말이 있고 그 말은 화양년, 화장년, 양년 양색시라는 말로도 변했다. 여성를 비하하는 이 말은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단어이다.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가 스스로의 내분과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한 후 남자들은 무수히 죽고 16세 이상의 여자들은 셀 수 없이 끌려갔다.


 


이들은 나이들 때까지 종노릇하다가 늙으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 그것이 환향녀이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가 일어섰다. 초원의 푸른 꿈을 외치며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그 뿌리가 여진족이며 고구려 때만 해도 우리와 동고동락을 같이 했다.


 


그래서 고려 초기에는 우리에게 조공도 바치고 부모의 나라로 모셨다. 당시 청나라의 인구는 120만이고,이를 이끌던 누르하치는 6만 명의 정예군인 팔기군으로 중국을 쓸어버렸다.


 


,청이 마지막 결전을 벌일때 조선조정은 두 패로 갈라졌다. 임진왜란 때 도움을 준 명을 도와야하는 한다는 보명파와 기울어져가는 명을 도울 필요가 없는 외명파로 나누어졌다. 상국은 우리를 버린 적이 없다는 대의명분에 결국 명을 도왔고 화가 난 청은 명을 넘어뜨린 후 조선을 넘어왔다. 이것이 바로 이른 바 병자호란(조만전쟁)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조정에서는 청이 기마민족이므로 수전에서는 약하리라는 판단 하에 몽진을 강화도로 향했다. 이를 비웃듯 청은 명에서 투항한 수군을 앞세워 강화도를 일거에 함락시켰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가 강화도성의 함락 소식을 듣고 결국 항복하게 된다.


 


춥디 추운 겨울 1637년 1월30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   호수자리인 삼전도(三田渡)에서 치욕스런 항복조인식이 치러친다.


 


인조는 기세등등한 청태조 누르하치의 위세 앞에 군사와 무기는 일체 휴대하지도 못하고, 하급관리가 입는 남색옷을 입고 겁없이 청에 대항한 죄인의 몸이 되어 정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서문으로 나갔다.


 


왕자와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초라한 인조임금은 127개의 계단을 오르며 다시는 청을 무시하지 않고 상국으로 모시겠다는 서약을 하게된다.


 


계단은 무려 127, 한 단 한 단 오를 때마다 이른 바 삼배구고 즉 삼배를 하고 아홉번 이마를 쥐어박으며 올랐다. 인조임금의 이마에서 피가 터져 가슴에 눈물과 피가 절절히 흐르고 이를 보는 백성들은 통곡을 하였다. 조선의 자존심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인조는 그 추운 땅, 겨울 밭에서 청태종 홍타시가 물러가라고 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이후 청나라는 본색을 드러내었다. 조선에서 좋은것, 귀한 것은 모조리 쓸어갔고, 이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다.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굶어죽는 이가 도처에 생겨났으며, 제주도의 진주에서부터 어린 여자아이까지 종으로 ,성노리개로 끌고갔다.


 


끌려간 이는 무려 17만명이나 되었고 그 곳에서 다시 서역으로 팔려간 사람도 많았다. 세월이 흐른 후 쓸모가 없어진 사람들은 채홍사를 동원, 강제로 모집하여 또 교체하였다.


 


나이 들고 병든 사람이라도 혈육이라 돌려받고자 했고 10년이 지난 후 5만명이 돌아왔는데 그 비용, 즉 속환으로 양반들은 100, 선비들은 50, 일반백성들은 5냥으로 정했다. 돌아온 이들 즉 환향녀의 유래는 바로 이것이다. 그들 중 2만 명은 1년이 채 못되어 자살했다.


 


조선군대는 약하고, 조정은 무능하고 백성들은 하나되지 못하여 10년 이상, 심신을 능욕당하고도 고향이라고 돌아왔건만 따뜻한 위로는커녕 우리는 손가락질을 하며 이에는 까만칠, 빨간칠을 하게하며 환향녀라며 놀려댔던 것이다.


 


나라가 약해지면 우리가 하나되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우리는 체험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식사 때마다 우리는 파라오의 종이었다고 말한다.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떠하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진환국학원경남지부이사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07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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