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 글 싣는 순서 ① 사람이 떠난 고성, 급증하는 빈집 ② 사람을 불러들이는 제주의 빈집 활용 ③ 버려진 집의 새로운 활용법 찾는 일 ④ 지역 소통 이끄는 일본의 빈집 활용법 ⑤ 빈집 활용하면 지역이 살아난다
제주도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없다. 화산 폭발에 의해 생겨난 섬이라 땅 아래에 물이 머물지 못하니 논이 없다. 대부분의 제주도민들은 여자는 좀녀(해녀), 남자는 어부로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삼았다. 남자들은 거친 뱃일을 하면서 사고도 많이 당했다. 홀로 사는 여자 노인이 많은 이유다.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사망률 또한 높아지면서 빈집의 비율도 덩달아 늘어났다.
# 늘어나는 제주의 빈집, 활용은? 제주살이, 제주 이주 열풍이 불면서 한동안 제주 인구는 늘었다. 2011년 2천343명이었던 제주의 순유입 인구는 2013년 7천823명으로 늘었고, 2014년에는 1만 명을 넘기면서 급상승했다. 2015년 1만4천257명에 이어 2016년에는 1만4천632명으로 순유입 인구는 정점을 찍기에 이르렀다. 1년간 고성군 전체 인구의 30%에 이르는 사람들이 제주에 들어와 주민등록을 마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순유입 인구는 계속 줄어들면서 2017년 1만4천5명, 2018년에는 8천853명이었다가 2019년에는 2천936명으로 급감, 2020년에는 3천378명, 2021년에는 3천917명에 이어 2022년에는 3천148명에 그쳤다. 지난해 제주도의 전출인구가 전입인구를 넘어서는 역전이 일어났다. 사드(THAAD) 보복과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인구 유입이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1천678명이 순유출됐다. 제주의 인구 순유출은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심지어 올해 들어서는 1분기 순유출 인구가 1천678명으로, 지난해 전체 순유출 인구와 같은 상황이다. 제주의 인구감소도 급격해지고 있다. 덩달아 빈집 또한 늘어나고 있다. 빈집, 어떻게 활용할지 제주도의 고민이 시작됐다.
# 70년 된 전분 건조장 활용한 카페 한림읍의 카페 앤트러사이트가 들어서있는 공장은 해방 후인 1951년, 제주의 전분공장 최호황기에 만들어졌다. 제주에서 생산된 고구마를 반건조한 칩 모양 전분으로 만들면 40㎏씩 포장돼 전국으로 판매됐다. 제조과정 중 건조장으로 사용된 건물에 카페 앤트러사이트가 들어섰다. 쌓아올린 현무암 사이에 시멘트를 투박하게 바른 제주의 독특한 건축방법을 앤트러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다. 카페 내외부 곳곳에는 수매한 고구마와 감자 등을 씻는 수로, 세척장이 그대로 남아있다. 내부에 들어서면 커피와 음료를 만드는 공간을 제외한 손님들의 공간에는 뚫린 지붕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조명의 전부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것이 운반 도르레다. 카페 한쪽에는 고사리 같은 식물들로 플랜테리어 공간이 만들어져있는데, 천장에는 50년대에 사용된 영국산 터빈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방치돼있던 빈 공장의 원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색다른 인테리어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앤트러사이트 창업자인 김평래 대표는 “버려진 공간을 문화적으로 회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다양한 문화적 기능을 위해서는 큰 건물이 필요하지만 도심에서는 공간을 찾기가 힘들었고 비싸기도 했다”라면서 “못 쓰는 건물을 재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빈 공간을 찾았고, 최소의 자본으로 기존의 것을 최대한 활용해 직접 만드는 재생 프로젝트와 같은 생각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앤트러사이트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먼저 알려졌다. 서울 합정동에 있는 앤트러사이트 1호점도 한림점처럼 1970~80년대 신발공장으로 운영됐다가 버려진 폐공장을 재활용했다. 앤트러사이트 한림은 단순히 카페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 전시공간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부터 지금까지 수시로 자그마한 전시가 열리면서 문화허브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버려진 공장을 이용한 공간의 재생이 문화적 재생이 된 셈이다.
# 오래된 어촌계회관을 재활용한 파인 다이닝 제주 해녀의 음식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파인 다이닝, 해녀의 부엌 북촌점은 본점인 종달점에 이은 2호점이다. 조천읍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1980~90년대 먹고 살 길을 찾아 사람들이 육지로 떠나버리고, 어촌마을은 조용해졌다. 어민이 줄어드니 북촌어촌계회관은 쓸모가 없어졌고, 찾는 발길이 뜸해지면서 버려지다시피 했다.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는 본점이 있는 구좌읍 종달리 출신 청년이다. 할머니와 큰어머니, 고모는 해녀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고향에 들렀다가 ‘해녀삼춘’들의 사정을 듣게 됐다. 일본 수출길이 닫히면서 뿔소라와 톳의 판로가 사라졌다.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중 어촌인구가 줄어들면서 판매도 뜸해져 창고처럼 쓰고 있는 종달리 어판장이 눈에 들어왔다. 2018년 빈 어판장을 리모델링하고, 해녀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엮어 보여주면서 해녀들이 채취한 싱싱한 제주 해산물을 재료로 음식을 차려내는 다이닝 레스토랑을 기획했다. “해녀의 부엌은 지역민, 생산자인 해녀, 크리에이터인 청년들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해녀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산이지만 삼촌들이 생산한 해산물은 저평가받고 판로가 막히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어촌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공간도 비어갑니다. 결국 지역공동화가 가속화되는 거죠. 지역 자원을 활용해 지역을 재생하고 사람을 불러들여 새로운 형태의 관광 콘텐츠를 선보인다면 승산 있겠다 싶었어요.” 김하원 대표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늘 새로운 것을 찾는 관광객들은 제주에서도 좀 더 특별한 것을 경험하고자 했다. 제주 해녀들이 생산자이자 공연자로 참여해 거친 바다의 삶과 숨에 대해 들려주면서 자연스럽게 제주바당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알리고 해녀문화를 알리는, 이 복잡한 일을 버려진 공간에서 시작했고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종달리 해녀의 부엌은 5만9천 원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문을 연 지 1년여 만에 관광객 1만 명을 돌파했다. 기자가 찾은 북촌점은 ‘부어커’로 불리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정지’에 들어서면 해녀의 쉼터인 불턱을 형상화한 식당에 입장하게 된다. 불턱을 형상화한 식탁을 둘러싼 벽에는 제주 바다와 해녀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펼쳐진다. 한 명의 부어커가 공연을 이끌다가 해녀가 등장한다. 실제로도 물질을 하고 있는 상군해녀는 제주어로 그들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공연이라지만 그저 옛이야기를 듣는 듯도 하고, 엄마와 동네이모가 수다떠는 걸 듣는 듯도 하다. 부어커와 해녀삼춘이 마을과 해녀의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에는 자연스럽게 제주산 식재료를 소개하고 해당 식재료로 만든 상웨떡(술떡), 마른둠비(두부) 카프레제, 우영팟(텃밭) 채소, 전복샐러드, 흑돼지적, 불턱한상과 후식까지 코스로 제공된다. 식사는 전통해녀복을 입은 상군해녀가 직접 설명하고 서빙한다. 해녀의 부엌에서는 시중보다 20% 정도 높은 가격에 지역 식재료를 구매하니 지역어민들에게도 득이 된다. 공연과 식사 비용은 가장 저렴한 것이 6만9천 원이지만 공연과 함께 하는 해녀문화 체험과 식사가 가능하니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구성이 알차다. 같은 시간에 함께 식사한 예약자들은 서울, 김포 등에서 연인, 가족, 친구들과 여행온 관광객들이었다. 한 이용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제주해녀들의 삶을 해녀삼춘에게 직접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할 수 있어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다”라면서 “버려진 어촌계 회관이 지역민과 청년들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고,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놀랍다. 전혀 생각지 못한 빈공간 활용법이라 해녀의 부엌이 더욱 매력적”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 빈 공간이 지역소멸을 막을 대안 될 수도 공유숙박업체인 다자요는 제주 농어촌에 방치된 빈집을 무상임대 후 독채 숙소로 리모델링해 여행자들에게 빌려준다. 여기서 발생한 매출의 1.5%는 마을에 기부하고, 숙박시설로 사용한 빈집은 10년 후 임대기간 종료와 함께 소유주에게 돌려준다. 빈집의 소유주는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되고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리모델링하며, 업체는 주택구입비용을 아낄 수 있고, 여행자들은 제주 시골집의 매력을 고스란히 살린 공간을 체험할 수 있으며 지역은 폐가의 관리를 통해 안전 및 위생 문제나 범죄위험 등에서 걱정을 덜 수 있다. 이런 장점 덕분에 제주에서는 책방이나 소규모 문화공간으로 옛 주택을 재활용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활용이 빈집의 발생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는 형편이지만 활용한다는 것 자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빈공간 활용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은 오래된 건물과 창고, 주택 등은 그 자체로 유산으로 보존할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방치를 막고 지역 내에서 재활용을 통해 도시재생, 지역공동체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빈 공간의 활용이 지역소멸을 막을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