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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고성은 조선시대에 유명한 차 재배지로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있으나 정작 오늘날까지 현존하는 차밭이 그의 전무하다시피 하여 기록의 진 마저 의심될 지경이었다.
차 분야에 박식하신 지역의 어르신들과 차를 사랑하는 젊은 열정들이 함께 모여 1991년에 결성된 소가야 차인회는 지역의 차밭을 복원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남산, 거류산, 천황산, 연화산 등지에 산재한 몇 그루의 차나무를 기반으로 수천 평에 이르는 차밭을 조성하고 끊어져 가는 차의 맥을 이어 보고자 동분서주하는 활동을 해 오면서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옛 시배지에 대한 정보수집과 조사활동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일까?
오랜 기간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소가야차인회에서 실시한 “2006 고성 차 기행”행사에서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대가면 연지리 지동의 토골(만평 이상), 연동 소름골(2만평 이상), 평동 서지골(약 만평), 모정골 차밭(삼천평 이상)과 대가면 천황산 차 군락지(5만평 이상)등 줄잡아 십만 평은 족히 넘을 듯한 장엄한 차 군락지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차 고을이었음을 증명할 만한 확인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차의 수종 또한 평동 서지골 공동산 아래 차 밭은 대엽종인 장군차(일명 황차)가 수천 평에 달하는 면적에 분포되어 있어 다양한 차 군락이 존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차나무를 자원화하여 그 지역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경남 하동이나 전남 보성과 같은 지역은 차치하고라도 수만 평에 달하는 인공 차밭을 조성하고 미래의 차 산업을 육성코자 투자하고 있는 자치단체까지 생기고 있는게 현실이다. 고성지방에 이런 방대한 차 군락이 발견 되었다는 사실은 관광 고성의 미래의 청사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기 발견된 차 밭의 지주를 찾아 거기에 따른 사업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고 체계적인 차 밭 복원공사가 필요할 것이다.
피해목을 간벌하고 진입로 정비는 물론, 차를 따서 덖음을 할 생산시설 확충 등 여러 가지 부수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하동의 녹차 밭이 지리적 조건이 매우 열악한 것에 비해 우리 고성의 차 밭은 접근성이 아주 용이하고 보성의 차 밭처럼 사람이 조성한 인공미의 흔적 또한 전혀 없어 그야말로 야생 녹차의 보고로 우리 고성이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한다.
옥토에서 수억 원대의 농기구를 동원하여 생산하는 벼농사의 평당 조 수익이 최고로 잡아 고작 삼천 원인데 비해 녹차는 보성이나 하동의 발표대로라면 평당 최저 만원에 달하며 그 수요 또한 가하급수적인 성장국면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버려진 채 도도히 그 위용을 지켜온 고성의 넓디 넓은 차밭에서 차의 적지란 바로 이곳 우리가 사는 고성임을 아직도 여기 고성에 남아 이를 증명해 주고 있는 고성의 옛 차 밭이 묵묵히 말하고 있다. 아직도 참모습을 감추고 있는 고성의 차 밭은 많이 있다. 회화면 봉동리 일원의 자생차 밭 등 아직도 숨겨진 고성의 차 밭은 2차, 3차 답사를 통해 머지않아 그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차 밭의 면적 또한 계속 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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