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바보 할아버지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4년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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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라고 하면 사전적 의미로 지능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춰 이르는 말이고 풀이하고 있다. 처음엔 손주에게 왜 바보가 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으나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도 평범한 바보 할아버지가 돼가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나도 너그러운 할아버지, 품격있는 박사 할아버지로 보이고 싶지만 손주 앞에만 서면 나의 생각과 정반대로 바보 할아버지가 되고 마는 것은 왜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손주가 할아버지를 바보로 만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손주는 할아버지에게는 법이 없다. 모든 것을 갑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하나의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얼굴을 만지고 뽀뽀도 하고 만지고 꼬집기도 한다. 하루는 발마사지를 부탁해봤다. 대답인즉슨 발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거절하기에 발을 분리해 싱크대에서 깨끗이 씻은 다음 마사지를 하면 된다고 하니, 발을 분리하면 피가 많이 나와 안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남는 장사임은 틀림없다. 정신과 육체, 모든 것이 새로워질 뿐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에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손주다. 할아버지 세대는 아날로그 세대도 아닌 진공간 세대다. 그러나 손주는 디지털세대도 아닌 밀레니얼 세대에 태어났다. 요즘은 MZ세대이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을 한다. 요즘은 물건을 완성된 제품을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택배로 주문받아 집에서 조립해 사용하는 것이 더 많다. 하다 못해 베란다 창틀에 설치하는 화분걸이도 조립을 못해 끙끙거리면 단번에 조립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전거 운동기구도 단번에 조립 설치해주면서 하는 말이 장난감 레고보다 쉽다고 한다. 이때 나는 바보 할아버지인 것을 인정하고 만다. 어릴 때는 우리가 즐겨먹는 김치며 된장찌개까지도 잘 먹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이런 음식들을 차츰차츰 덜 먹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먹기를 싫어한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 그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아 안타깝다.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용돈을 액수나 기간을 정하지 않고 매일 주다시피까지 했다. 그 돈으로 학교를 오가며 길거리 인스턴트 음식과 과자마저 입에 배어 우리 음식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밥때만 되면 할머니는 밥그릇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한 숟갈만 더 먹자고 사정을 하다가도 애원한다. 참으로 어리석기도 하거니와 손주 바보 할아버지 할머니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제일 많이 하는 것 중 하나가 아빠가 좋으냐, 엄마가 좋으냐 하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이다. 하루는 심심해 치킨을 배달해주면서 우리 가족 중 누가 제일 좋은지 등위질문을 했다. 치킨을 입에 물고 하는 말이, 1등은 어머니, 2등은 동생이라 하고 그 다음 순위는 말하지 않고 계속 치킨만 먹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위는 누구냐고 추궁하니 할아버지, 부산 작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3명이고 할머니 역시 3명이라 의미가 없으므로 얼버무려 넘어갔다. 아뿔싸, 이놈이 제일 좋아하는 치킨까지 먹으면서 할아버지는 잠정등위인 3위 안에도 넣지 않는다. 심지어 나하고 같은 침대에서 잠까지 자면서 말이다. 등위엔 들지 못했지만 엄마와 동생을 더 좋아해 다행이라 생각하니 기분은 좋다. 그러나 바보 할아버지인 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한참 지난 후 왜 엄마와 동생이 1, 2등이냐고 물었다. 이 지구상에서 각각 1명뿐이라 그것도 당연히 1, 2등이라고 한다. 그날은 치킨 시켜주고 두 번 바보된 날이다. “할아버지, 돈 주세요” 해서 “돈 맡겨 놓았느냐”라 하면 “할아버지, 용돈 주세요” 한다. 바보 할아버지는 횟수와 기간, 금액 등은 정하지도 않고 아무 생각없이 용돈이란 말 한 마디에 지갑의 여유에 따라 액수에 관계없이 손주 비즈니스가 돼 무심코 바보처럼 돈을 건넨다. 용돈을 주면서 어디에 쓸 것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용돈이겠지, 하고 건네고 나서 ‘군것질할 것인지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구입할 것인지 물어볼 걸’ 하고 생각해보지만 이미 돈은 건넨 상태라 꼼짝없이 바보 할아버지가 되고 만다. 자식이 결혼해 손주를 낳으면 재롱떠는 모습도 보고 그저 행복해질 것 같아 손주를 기다린다. 요즘은 손주를 보고 싶어도 아예 결혼도 하지 않는다. 혹여 결혼을 해도 손주를 낳을 생각을 안 한다. 양육비 그리고 사회적 제약과 경제가 아이를 가지기에 좋지 않은 상황이라 하기에 체념을 해도 좀처럼 그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아 한숨까지 쉰다 한다. 하루빨리 자식들의 생각도 바뀌고 국가가 아이 양육비 지원책과 사회적 분위기도 큰 몫을 차지할 것 같다. 손주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나 행복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선 건강해진다. 계속 떠들고 방을 어지럽히고 그리고 뭐든 사달라고 조르니 치매와 우울증에 걸릴 시간과 여유가 없다. 새로운 지식과 컴퓨터 조작법, 유행하는 노래와 퓨전음식도 접할 수 있어 좋다. 손주가 아버지에게 배울 수 없는 사물을 할아버지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새로운 가치관도 배운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며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감정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이는 6세를 정점으로 하루에 400번 이상 웃는다고 한다. 그 웃음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줄어들어 50세가 되면 여섯 번 웃는다고 한다. 할머니의 뇌와 손주의 뇌는 그 누구보다 교감비율이 높게 나타나 엔도르핀이 팍팍 솟는다고 한다. 650개의 근육 중 231개의 근육이 움직여야 웃을 수 있다고 한다. 손주와 같이 있으면 공짜 근육운동을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의 몫일뿐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조부모가 손주의 두 번째 부모가 되는 것이다. 손주들과 어떻게 지내는지는 자식과 손주들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손주놈이 벌써 14세, 아름다운 바보가 될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때때로 생각해보면 서글퍼지는 것은 왜일까. 그래도 나는 바보 할아버지가 좋다. |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  입력 : 2024년 0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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