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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참전 수기] 아! 악전고투 동보연대 작전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3월 29일
↑↑ 구재운 재경고성향우
월남참전 소총중대장
ⓒ 고성신문
한국군 파월은 자유 월남을 침공한 공산 월맹군을 격퇴시키기 위해 연합군의 일원으로 1964년부터 연 5만 명의 국군이 파월되어 1973년 1월 철군 시까지 8년 동안 인류의 정의를 구현하고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나는 백마부대 30연대 제11중대장으로서 1년간 열대의 정글을 누비며 월맹군과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하였다.

# 악전고투(惡戰苦鬪) 동보연대 작전(백마30연대:1970.6.8~6.22)
이 작전은 15일간 정글 속에서 낮에는 소탕전, 밤에는 매복 작전을 수행하느라 전투복의 무릎과 팔꿈치가 헤어져 구멍이 났었다.
월남전이야말로 ‘베트콩(VC)이 있는 데도 없고, 없는 데도 있다’ 는 말과 같이 그들이 활동하는 곳에 전선은 존재하되 전후방의 구별이 없으며 계획된 작전이 끝났어도 포성은 여전히 메아리치는 전선 없는 전쟁터이다.
적군은 월남 중부전선 송강(SongGia) 상류의 700고지들이 즐비한 험준한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2월부터 5월에 접어들면서 중대 규모로 무리를 지어 병참선을 습격하거나 군부대를 기습 침투 파괴하는 등 그 양상이 날로 심하였다. 이에 연대는 작전 계획을 수립, 그물망 포위 작전을 개시하였다. 15일간에 걸친 작전은 일부 전과를 올리긴 하였으나, 악전고투의 전투로, 수명의 전사자와 부상병의 전투손실을 보면서 적의 요새지는 탈환 점령했지만 적들은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
이 작전에서 본인은 제3대대 제11중대장으로서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6월 16일에 공격개시선이 뉴아타토(Nui Tha Tou) 산으로부터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 산개하였다. 다음날 조효(早曉)에 공격이 시작되어 동쪽으로 하향 탐색에 들어간 지 3시간 뒤에 대정글 속의 암석지대에 부딪쳤는데 바위 사이는 1m 내외의 미로(迷路)의 동굴로 이어진 천험(天險)의 요충이었다. 이에 본인은 각 소대장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우발사태에 대비하여 화기소대와 같이 소탕작전에 임하였는데 얼마 뒤에 큰 나무 위에 관망대가 설치된 것을 확인하였으나 적은 보이지 않고 자라 한 마리가 2m 길이의 끈에 매여 있었다. 또 그 아래 20m 떨어진 조금 넓은 암석 사이에 있는 돼지우리에서 화기와 탄약, 문서 약간을 노획하였는데 호지명(胡志明) 훈장증 4매도 있었다. 본인은 이것을 보고 여기에 침거중(蟄據中)인 무리들은 VC(베트콩)의 정예분자로 판단하고 각 소대장에게 이를 전파하였다. 그런지 잠시 뒤에 갑자기 사방에서 총격이 집중되므로 곧 응전하는데 제3소대 첨병 김낙교(金洛橋) 상병이 그들에게 접근하여 수류탄을 던지려던 순간에 흉탄에 맞아 장렬(壯熱)하게 전사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르자 각소대장에게 일단 요새 암석지역 외곽으로 퇴각시키는데 인접 제9중대 제1소대의 지헌만(池憲萬) 하사가 이끄는 분대가 저격을 받아 분대장 지하사가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바위틈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의 분대원 2명이 나에게로 달러 와서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즉시 화기소대를 거느리고 池하사가 피격된 곳으로 달려가다가 그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난데없이 측방에서 집중사격을 받아 화기소대 전령 조성태(趙成泰) 상병이하 2명이 동시에 적의 저격병 흉탄에 부상을 입었다.
이를 제압하려 암석위로 올라가려는 찰나 뒤따라오던 무전병 김상병이 적의 저격병을 발견 중대장님! 부르며 나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넘어졌는데, 내가 기어오르던 바위에 총탄(銃彈) 2발이 튕기면서 하얀 탄흔을 남기고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 고성신문

이윽고 총성은 멎었으나 적정(敵情)은 종잡을 수 없는 가운데 아군이 움직이기만 하면 소재 불명의 베크콩들이 조준사격을 가해옴으로 나는 그들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때마침 쏟아지는 폭우를 이용하여「돌산」 아래쪽에 있는 옥수수밭으로 모두 퇴각시켰다. 이윽고 대대장의 부름을 받고 대대 OP로 올라갔더니 연대장 이민영 대령이 나의 손을 잡고 수고했다며 양주 한 잔을 권하면서 다시 작전명령을 하달하였다. “내일 새벽에 여명을 기해 우리 11중대를 중앙으로 좌, 우에 9, 10, 12중대을 배치 다시 돌산을 공격” 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에 중대원들은 M16소총과 유탄발사기, 수류탄, CN 깨스탄 및 방독면으로 완전무장하고 여명 전에 공격개시선으로 이동 전개하였고, 밤새도록 교전지(交戰地) 일대에 포탄을 퍼붓고, 날이 밝아지자 팬텀전투기 2대가 공중폭격을 실시한 후 공격을 개시하였다. 전 중대원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최루수류탄과 M79유탄을 암석 사이에 터트리며 가스 작전으로 요새지대를 완전점령하고 동굴을 수색하였으나 베트콩들은 포탄 사이를 뚫고 밤사이 도망가고 적의 노획 물자와 지하사의 시신만 수습한 악전고투의 실패 작전이었다.
한국군 월남 파병은 8년 8개월 동안 연 병력 32만 명이 참전하였고, 전사 5천명 부상 1만2천명의 전투손실을 본 가운데 월남 참전의 막은 내려졌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목숨 걸고 전쟁에 나섰던 참전 용사들이 무관심 속에 오늘날 잊혀가고 있으며, 오늘의 경제 부국은 참전 용사들의 피와 경제일꾼들의 땀으로 이뤄진 것이다.
초대 주월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내가 죽으면 월남전 사병 전사자 묘역에 묻어다오”라는 유언으로 서울 현충원 사병묘역에 사병과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이름 모를 베트남의 정글에서 쓰러진 전우들의 명복을 빕니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4년 0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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