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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 자조정신, 자주국방, 소득증대를 외치던 70년대 초.
고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초 당시, 아스팔트는 도시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신기한 것이었다. 어딜 가나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흙길이었다.
고성에서 창원, 마산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를 낡은 버스를 타고 털털 가다보면 산을 넘어야했다. (사진 속의 버스는 창원에서 고성을 향해 가는 중이다.) 그때의 창원은 시(市)가 아니라 군(郡)이었고, 지금처럼 공장과, 빌딩이 많지도 않은 소도시였다.
지금이야 고성에서 한 시간이면 창원에 도착하지만, 길 사정도 차 사정도 좋지 않던 그때 어디 그랬겠는가. 그때는 지금보다 두 배, 세 배의 시간이 걸렸다. 거기다 털털거리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멀미약, 멀미봉지가 필수였다.
이렇게 좁고 꼬불꼬불한 도로들이 새마을운동 덕분에 포장도로로 바뀌게 되었다.
도로뿐만 아니라 초가지붕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런 변화를 위해 도시의 향우들은 고향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끝나면서 이 길도 아마 포장된 아스팔트길로 바뀌었거나 아니면 다른 길이 나면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이 길을 넘어 다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어느 세대건 ‘옛날이 좋았지’라는 말버릇을 가졌으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