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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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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해온 향토사학자 하기호(사진) 씨가 지난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하기호 전 고성향토사연구소장은 선사대부터 근현대사, 독립운동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고성의 역사를 꿰뚫고 있었던 인물이다.
1934년 하기호 전 고성향토사연구소장은 부산대학교 문리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철성중, 고성중, 고성여중, 영현중 등에 근무하다가 교장으로 정년퇴직했다. 교직생활 당시 사회과를 가르치면서 고성향토역사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고인은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고자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1996년 고성향토사연구회를 창립해 4년간 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2003년 향토사연구회가 고성문화원 향토사연구소에 통합되면서 이듬해부터 모두 9년간 소장으로 재임했다. 이 시기 경남향토사연구회원으로도 활동하면서 경남향토사연구소 이사와 부회장,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는 고인돌에 대한 군민들의 인식이 높지 않을 때부터 군내 각 지역의 고인돌 위치와 개수를 확인해 정리하는 것은 물론 고성 송학동 고분군과 동외동유적(패총), 내산리고분군, 율대리 2호 고분, 봉수대 시굴조사, 고성토성 지표조사, 소을비포성지 지표조사, 고성지역 3.1독립운동유적지 발굴 등에 수 차례 참여했다.
하기호 전 소장은 1926년 일제가 대한민국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고성의 진산 무량산과 천왕산의 위치를 바꾼 것을 90년 만에 밝혀내면서 한국국토지리정보원에 위치를 변경해줄 것을 건의, 2014년 3월 이를 바로잡게 됐다. 이보다 앞서 2011년에는 문화재자료 제89호 ‘고성성지’의 명칭이 일본의 잔재라는 점을 밝혀내고 ‘고성읍성’으로 변경하는 데 앞장서 결국 바른 이름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하기호 전 고성향토사연구소장은 1997년부터 집필해 발표한 향토사연구 논문이 ‘폐허의 수(戍)자리 구소을비포진을 찾아서’를 비롯해 30여 편에 달할 정도로 열정적인 학자였다.
특히 하 전 소장의 향토사연구를 집대성해 2013년에 발간한 ‘고성향토사연구’는 지금까지도 학술자료로 활용되면서 고성향토역사연구의 보고(寶庫)라 정평이 나있다. 하기호 전 고성향토사연구소장은 ‘고성향토사연구’ 서문에서 “향토사 연구는 일정 공간을 토대로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지방의 사료를 활용하여 지역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분석, 고찰하여 다른 지역과의 공통성과 특수성을 구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향토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생활공동체의 형성과 변천 과정에서 생성된 고유한 문화를 발굴하고 현장을 답사하여 기존에 잘못 알려져 있거나 왜곡되었던 고성향토사를 바로잡는 일에도 미력이나마 노력을 기울여 왔다”라고 말했다.
하기호 전 소장은 향토설화에도 큰 관심을 갖고 구전되는 전설이나 설화를 수집하기도 했다. 40대 이상 고성군민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내 팔 내놔라’ 설화나 거류산의 이름에 얽힌 걸어가는 산을 세운 처녀 이야기, 마암면 석마의 유래 등도 그의 손에서 정리돼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돼있다. 하기호 전 소장은 이러한 활약상으로 2010년 제49회 경상남도 문화상(학술 및 지방문화개발부문), 2018년 영남지역 매장문화재 보호활동 유공자로 선정됐다. 저서로 고성읍성의 조사연구, 고성향토사연구 등이 있다./최민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