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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암면 삼락리 평부마을에 있는 금목신. 팽나무로 알려져 있지만 푸조나무이다.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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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세금 내는 나무가 셋 있다. 경북 예천의 석송령과 황목근, 그리고 경남 고성에 있는 금목신이시다. 석송령은 소나무, 황목근과 금목신은 팽나무라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금목신(金木神)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 금목신을 마주한 느낌, 그 자태와 위용이 대단했다. 비스듬히 드러누운 몸통에는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꿈틀꿈틀 용솟음치며 동쪽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것도 같았다. 금목신은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 평부마을에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주로 전승목이라 부른다. 삼신목이란 이름도 남아있다. 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넘었다고 전한다. 400여 년 전에 벌써 당산제를 지내고 배를 매어둘 정도로 커서 임진왜란(1592년)을 지켜본 나무라 하니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 나무가 있던 평부마을 앞쪽은 모두 바다였다고 한다.
그때 이순신 장군이 배를 이 나무에 매어두었다. 제1차 당항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을 무찌르며 대승을 거두었다. 장군의 배를 붙들고 전쟁 상황을 바라본 이 나무는 전승목(戰勝木)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순신 장군이 배를 매어 둔 이유는 육지로 도망간 패잔병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당산나무는 직접 전쟁에 참여한 것이 아닌가? 삼신목은 ‘삼락’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 때 안동김씨와 연일정씨가 모여 삼신락정(三神樂亭)이라는 정자나무에 당산제를 지냈다. 이때의 삼신(三神)은 산신(山神), 수신(水神), 목신(木神)을 일컫는다. 아이를 점지해 주는 삼신할미와는 다른 개념으로 보인다.
삼신의 ‘三’과 낙정의 ‘樂’을 따서 삼락(三樂)이란 이름을 짓게 되었으니 삼신목은 마을 이름을 낳아 준 귀하신 존재다. 스스로 목신이 되어 마을 뒤로 산맥을 잇는 ‘산신’과 앞바다를 굽어보는 ‘수신’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 전승·삼신목에 동네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동제를 지내왔다. 임진왜란 때부터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던 중 1970년 마을 주민 이동수 어른이 논 403평을 내놓았다. 이제 전승·삼신목은 토지대장에 이름을 올리게 되니 세금 내는 귀하신 몸 ‘금목신’이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 새벽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축문도 예전 그대로 읽는다. 그 당시 마을의 유지였던 이동수 어른이 논을 내놓은 것도 동제가 원활하게 잘 이어져가도록 하는 바람에서였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마을 사람들이 쌀 한두 되씩 내놓는 것을 보면서 동제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어 마을이 화합하고 평안하기를 바랐다.
금목신이란 이름은 나무를 토지대장에 등록할 때 ‘김목신’이라 적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팽나무로 알려진 금목신은 알고 보니 푸조나무였다. 푸조나무는 얼핏 팽나무와 닮았지만 수피도 잎과 열매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잎맥도 열매의 크기와 색깔도 두 나무가 완전히 다르다.
결정적으로 팽나무의 열매는 주황색으로 익지만, 푸조나무의 열매는 더 크고 검은색으로 익는다. 바로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의 걸출한 이름이 붙은 순서를 추정해 본다. 처음 삼신목(삼신락정)으로 부르다가 이순신 장군과 연결되면서 전승목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금목신이 되었다.
산신, 수신, 목신은 우리의 오랜 민간신앙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삼신목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마을 이름 삼락리가 삼신락정에서 온 것으로 볼 때 이미 당산나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나무에 민속 생활 문화의 깊은 의미를 지닌 이름이 셋이나 생겨났다니 예사로이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자연에 동화하며 마을을 지켜온 우리네 조상님들의 큰나무 철학. ‘네가 나이고 나는 곧 너이니’ 우리는 모두 하나다. 그러니 나무한테도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 것이다. 한 마을을 지켜온 큰나무의 굵직한 문화적 사연. 평부마을에는 당산나무와 동제라는 민간신앙의 전통이 명맥을 잘 유지하며 전승해오고 있다.
그 중심에 삼신목·전승목·금목신이라는 뿌리깊은 사연을 지닌 한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민속·문화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우리의 오랜 자연문화유산이다. 이제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보면 어떨까?
/최재길 식물문화연구가
최재길
치유·식물문화강사
지리산 야생화 체험농장 운영 및 생태강사
우리 소나무 기획탐방(전국 101곳)
산림치유활동(영동, 광양, 곡성치유의숲)
· 저서 : 생명의숲 함양상림
· 전시 : 함양상림 생태기획전 ‘이어봄 늘푸른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