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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외동 유적(東外洞遺蹟)은 고성읍 동외리 고성청년회의소 북쪽 뒤에 있는 해발 40m정도의 낮은 산인 당산(堂山)에 있는 유적들을 통틀어서 동외동 유적이라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동외동 패총(東外洞貝塚)이 그 대표적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 몇 가지 발굴 사례를 들면 1969년과 1970년 2차에 걸쳐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당산에 있는 동외리 245번지 일대의 유적지를 발굴 조사한 바 있는데 당산의 정상부에는 넓은 원형의 지형이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남쪽부분의 밭과 경사진 언덕에 두꺼운 조개무지층(貝각층:(貝殼層)을 발굴하였다.
이 유적지에서는 주로 여러 종류의 토기가 많이 발굴 되었는데 김해 토기시기(金海土器時期):원삼국시대)의 문화상을 밝히고자 한다.
이 패총을 ‘고성패총(固城貝塚)’이라고 이름 하였다.
새무늬 청동기(鳥文靑銅器)1995년 고성읍 동외동 유적에서 발굴 3~4세기(원삼국시대)경의 제사장(際祀長)이 소지하고 제사를 집행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여 진다.(그림설명)
1947 년에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동외리 패총(東外洞貝塚)을 발굴 조사한바 있는데 고성읍 동외동 227번지 소재 당산(堂山) 의 서남쪽 경사면에 선사시대(先史時代)에서 역사시대(歷史時代)로 바뀌는 기원 전후인 초기 철기시대에 이 일대에 살던 사람들이 조개 등을 잡아먹고 그 껍질을 버림으로써 모여 이루어진 조개무지(패총:貝塚)유적이다.
철재(鐵滓)가 덮여 있는 야철지(冶鐵地)와 왜의 광봉동모와 중국의 한경편(漢鏡片)등의 청동기와 각종 토기 및 탄화된 쌀과 밀 등의 탄화곡물(炭化穀物), 상형석관묘(箱形石棺墓), 관묘 등 많은 유적과 유물이 확인 되었다.
이 고성 동외동 패총(東外洞貝塚)은 문헌(文獻)에 나오는 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의 성읍국가(城邑國家)시대에 벼농사를 짓고 철(鐵)을 제련(製鍊) 생산하면서 주변 여러 나라와 중국(中國), 일본(日本),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였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1995년에는 진주박물관에서 고성읍 동외동 패총이 있는 당산의 산 구릉(丘陵) 정상부(頂上部) 및 주변부에서 4~5세기 대의 주거지(住居地)와 제사유구(祭祀遺構)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 유적은 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 및 그 이후 이 지역 정치집단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맨 정상부에 광장이 있고 수혈구덩이(竪穴遺構)가 연이어져 발굴되었다.
이 수혈구덩이에는 소형옹(小形甕), 소형고배(小形高杯)등의 토기(土器))와 새 모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새 무늬 청동기(鳥文靑銅器)」가 발굴 되었다.
특히 이 청동기에는 가운데 두 마리의 큰 새와 주변에 작은 새가 40마리 모두 42마리의 새가 새겨져 있다.
또 네 귀퉁이 마다 원형의 구멍이 뚫려있어 제사장(際祀長)급 지도자의 옷 장식품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청동기 유물(靑銅器遺物)로서 고대인 들은 새가 죽은 이의 영혼을 천상(天上)으로 인도한다고 믿었다.
또한 그들은 새 뼈나 깃털을 무덤 안에 넣는 경우도 있고, 3세기경에 남부 지역에서는 새를 형상화한 토기를 만들어 덧널무덤이나 돌널무덤에 죽은 이와 함께 묻었던 장례의식도 있었다.
이 동외동 유적에서 발굴된 새무늬청동기는 3~4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 김해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가 현재는 2005년 10월부터 국립중앙 박물관으로 옮겨 고고관 원삼국실에 소장전시 되고 있으며 우리 고성을 대표하는 유물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