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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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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우리 마음의 등불을 켜고, 믿고 따르십시오. 그 등불은 우리를 극락정토로 이끌 것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 기나긴 코로나19의 터널을 드디어 빠져나왔다. 하지만 높은 물가로 이러나 저러나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그래도 다행 아닌가. 손발을 묶은 듯 꼼짝도 못하게 하고, 내 가족 내 이웃도 볼 수 없게 했던 코로나19가 물러났으니 숨통은 좀 틜 테니.
무슨 일이든 마음자리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영현면 금태산 천년고찰 계승사의 회주로서 가장 가까이에서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금산 법진스님은 지난달 경남도내에서는 유일하게, 고성군내에서는 처음으로 대종사 품수를 받았다.
법진스님이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고성군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법어를 전했다. “사납고 무서운 짐승은 멀리 해도, 고양이가 예쁜 소리를 하며 다가오면 보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항상 고운 목소리, 아름다운 말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타인을 대해야 합니다.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님의 성품이니 부처님과 같이 봐야 하지요. 웃으며 기품을 갖고 대하면 무적입니다.”
아름다운 얼굴은 열린 마음에서 시작된다. 고운 말은 천금과도 같고, 나쁜 말은 때로는 상대를 죽이는 총칼이 되기도 한다. 스님은 언제나 수행하고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속인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언제나 마음을 다스리는 일, 다른 이를 나와 같이 대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일, 그것이 바로 수행이다. 이런 수행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지난 3년간 지난한 코로나19와 함께 했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빚어진 화가 인간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일등 가는 국민성 덕에 질병의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한 세상을 되찾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이의 행복을 축원해야할 때입니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외경심을 품고, 양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질병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더욱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밝으면 세상이 밝고, 마음이 어두우면 세상은 온통 어두워진다. 이 분명하고 쉬운 이치를 깨달으면 중생은 곧 부처다. 부처는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다. 석가가 노년에 죽림촌에 안거하면서 병으로 심한 고통을 겪던 중 마지막 설법을 청한 제자 아난다에게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가르침을 전했다.
석가는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설했다. 이것이 ‘자등명 법등명’이다. 석가는 스스로를 지도자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부처님 오신 날 밝히는 등은 부처의 탄생과 깨달음을 축하하는 뜻도 있지만 법진스님은 그보다 중요한 것이 나의 등불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라 강조했다.
“절집에는 초를 켜고, 부처님 오신 날 초로 등을 밝힙니다. 초는 제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사라져요. 내 몸이 초가 돼 사라지더라도 남을 밝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함께 사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내 마음이 곧 부처가 되는 길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고통이다. 그러나 부처를 품은 중생이라면 고통의 세계에서 열반의 피안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제도중생이다.
“부처는 제도중생(濟度衆生)을 위해 발고여락(拔苦與樂) 하셨습니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앞날이 보장된 왕좌를 버리고 열반에 들었습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고통입니다. 화를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화를 따라가게 되고 종국에는 스스로가 화가 돼 버립니다. 내 마음에 화가 이는 것을 알면 화는 사라집니다.”
법진스님은 ‘군민이 고성의 기둥’이라 했다. “십문(十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십견(十見)은 불여이행(不如一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보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진리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부처가 되는 길이다.
“이 땅은 우리가 살고 있지만 우리 것이 아닙니다. 후손들에게 줄 것이니 소중히 다뤄야 하지요. 아기부처가 불을 밝히고 있는 송학동고분군은 어떻습니까. 수천 년 전 조상들의 삶의 기록이 지금에 와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우리가 그 빛을 얻는 것 아닙니까. 고성은 공룡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제 송학동고분군으로 시선이 모입니다. 공룡도 송학동고분군도 빛나지만 그보다 더욱 찬란한 것은 군민의 심성입니다. 수천 수만 년 이어온 그 생명력처럼 우리는 공룡같은 단단하고 강인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극락세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법진스님은 인의예지신을 강조한다. 사람의 도리를 알고 행한다면 무엇이든 능히 해낼 수 있으므로.
“부처님 오신 날은 아기부처가 세상에 태어남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마음의 불을 밝히면 내가 부처가 되고, 등불 같은 마음을 가지면 적이 없고 원한이 없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등을 달아 밝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등불을 밝힐 때입니다. 그리 하면 부처님 세상은 바로 지금, 이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