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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동만에 띄우는 50년의 편지, 길고도 아득하여라!

김종호 (74살, 거류면)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23년 04월 07일
↑↑ 봄꽃은 얼마나 부지런한지, 당동만 물빛에 꽃잎 담은 연애편지를 띄우려 하네
ⓒ 고성신문
1950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936번지
8남매의 맏이, 가난한 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농사짓고 소를 몰아 대식구 건사에 허리가 휘신 우리 아부지
홍역으로 세 살난 큰 딸 찔레덤불 애기장터에 묻으신 우리 어무이
그 시절 아픈 역사 누구에게나 있었다지만
어린 자식을 땅에 묻은 마음, 얼마나 아렸을까?
못 입히고 못 먹이고 못 가르친 부모 맘 얼마나 고달팠을까?

1963년
“아부지 월사금 낼 때 지냈심미더.”
“쪼매마 기다리라. 올은 돈이 업따.”
1학년 담임은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
“김종호, 월사금 밀맀따. 낼 갖고 오도록!”
“아부지가 돈이 업따 하셔서.”
인정사정없이 쫓겨나 복도에 서 있다가
운동장 벚나무 밑에서 둥치를 오르내리는 개미를 잡다가
수도꼭지에 입대고 물만 벌컥벌컥 마시다가
찢어진 채 버려진 축구공만 툭툭 차다가
빠알간 동백 꽃송이 쳐다보며 섬마을 선생님 부르다가
시간은 흘러흘러 거류초 35회 졸업생이 되었다.

↑↑ 딸의 결혼식, 구순이 되어 돌아가신 내 어무이의 웃음은 꽃처럼 어여쁘시다.
ⓒ 고성신문
1965년
중학교 2학년이 되어도
지긋지긋한 가난은 우리 집에 껌딱지처럼 붙어
아직도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내 신세
날마다 공납금 납부하란 소리 지겹고도 지겨워
조회시간 학생들 앞에 불려 나갈 때의 그 창피
가난이 무슨 죄인가, 어린이가 무슨 죄인가.
‘그래, 외가로 가자. 도시에는 무슨 일이라도 있겠지’
부산시 문현동으로 도망치듯 떠난 길
외조모님께는 집에서 허락받았다 거짓말 했건만
가난해도 자식 욕심 많았던 우리 부모님
맏아들을 잃고 애태우다가 나를 찾는 전보가 닿았다.
3학년 2학기, 더 이상 학교 다니기 싫어
마침표도 찍지 않고 떠나온 고성동중학교
졸업장도 받지 않고 공납금 외상장부만 남겼다.

1966년
외삼촌이 공장장으로 계시던 직물공장에 취직
첫 월급 5천 원 받던 날 눈물이 났다.
매달 따박따박 나오던 월급이 얼마나 신통방통하던지
아무리 힘들어도 좋아, 밤을 새워도 괜찮아
공장만 돌아간다면, 월급만 나온다면
그러나 직물공장은 내리막길, 기계가 멈춰 섰고
다른 곳에서 또 얼마간 일하다가
‘사나이는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 구실 하는 게야!’
신검을 받고 대기 중

↑↑ 내 아내, 내 아이들의 옴마, 내 집사람, 내 마누라, 내 동반자, 나의 오래된 연인, 내 삶의 역사, 내 존재의 의미, 내 영원한 사랑, 아내의 손은 언제나 따뜻하다.
ⓒ 고성신문
1971년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엄하고 배고프고 줄빠따가 대기하던 군대 생활
한강철교와 원산폭격은 어찌 그리 많이 시키든지
점호 때까지 시간은 어찌 그리 더디든지
유신헌법 제정하느라 국내 정치 어수선한 틈에
12주 훈련받고 헌병교육대 근무를 위해 부산으로 배치
후임이 우연찮게 내게 잘 보이려고
“선임님, 우리 동네 누님이 부산 삽니다. 만나게 해 드릴까요?”
논산 출신의 집사람을 만났다.
청춘은 뜨겁고 불타오르고 망설임이 없는 법
“내 열심히 돈 벌어 이녘 행복하게 해 줄게요!”
총각이라면 누구나 하는 거짓말을 나도 했으니
부산에서의 신혼생활은 달콤하고 다정했다.

1980년
아부지가 눈을 감으셨다.
등이 휘게 일하셨어도 여섯 동생들 뒷바라지에 빚만 남았다.
땅이며 집을 팔아 정리를 하려는데 이웃들이 날(거저)로 먹으려 덤볐다.
“요새 그런 땅이 돈이 되던가? 내 놔도 안 팔릴끼다”
“시세보다 쪼매 내려서 줄테니 내한테 고마 넘기라.”
아부지와 어무이의 땀과 뼈가 녹아든 땅을 어찌 헐값에 넘길겐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보따리를 싸고는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이장을 맡으라고 부추겼고 7년간 일했다.
누구네 집 살림이 어떻고, 누구 아들은 무슨 일을 하고,
누구는 땅이 얼마쯤 되고, 누구네는 집이 몇 채인지 다 알게 되었다.

↑↑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같은 옷을 입고 혈육임을 증명하는 사진을 찍었다.
ⓒ 고성신문
1994년
다시 이장을 맡아 6년간 동네일을 봤다.
손맛 좋은 집사람이 식당을 해 보고 싶어 하는데
특히 아구찜을 잘 한다고 소문났고 본인도 자신이 있단다.
행나무식당을 차려 열심히 일했다.
그 동안 세 명의 자식이 태어났고
아이들 공부 시킨다고 우리 부부도 허리가 휘는 중이었다.
나는 고성에서 싱싱한 아구를 골랐고
수육을 위해 내장을 따로 주문하고
공장에 들러 콩나물을 동이째 사 왔다.
콩나물대가리 따는 것은 어머님이 도맡아 해 주셨고
음식 솜씨가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매상이 늘었다.
아이들은 오뉴월 오이처럼 자랐고, 가지처럼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어느 해 세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대학 다닐 때
돈이 줄줄 새듯이 나갔다.
우리 집 금고는 세 명 대학생의 현금자동인출기
장사를 안 했으면 어찌 공부를 시켰을까?
월사금을, 공납금을 제때 못 주셨던 아부지 생각에 눈물겨웠다.

2010년
택시를 시작했다.
성동조선이 들어서면서 활력이 넘쳤고 경제가 팡팡 돌았다.
집 사람이 운영하는 아구찜 식당도 손님이 늘었다.
택시를 타고 읍내로 외지로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룸을 짓고 아파트를 짓고 상가도 생기고
유흥주점이며 온갖 업체들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성동조선이 부도가 나고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면서
노동자들은 다른 곳으로 돈벌이를 찾아 떠났다.
거류면에도 침체기가 돌아온 것이다.

2012년
여동생 시할배 되시는 분이 나와는 갑장이고
포항에서 이주하신 선주는 이웃이라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잔뜩 마신 뒤의 숙취가 예사롭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술을 끊기로 했다.
2001년 그 힘들다던 담배도 딱, 끊은 내가 아닌가?
담배와 술을 안 하면 사람이 깨끗해진다.
냄새 안 나고 실수할 일 없고 정갈해진다.

2016년
각중에(갑자기) 소변에 혈뇨가 받쳤다.
비뇨기과에서 약을 먹다가 내과에 들러 진찰을 받다가
“낼 보호자 모시고 오세요.”
한 마디에 나는 ‘드뎌 올 것이 왔구나’를 알았다.
아들이 경상대 의대 행정실에 근무하고 있어 어렵지 않게
경상대학 병원에서 9시간에 걸친 담도암 수술을 받았다.
췌장과 십이지장까지 손을 댔다는 말을 들었다.
수술은 잘 끝났고 특히 습식을 조심해야 된다지만
살아난 것이 어딘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마음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겠다는 마음
걱정도 욕심도 모두 버리니 내 삶이 잔잔해졌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전대미문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만남을 자제하고
현미경으로 살펴야 하는 바이러스의 지시에 따라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인의 삶이 온통 뒤죽박죽
택시 운전을 하며 사람들을 만났지만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서로의 눈빛만 교환하는 동안
수많은 일들이 새로 생겼고, 사라졌고, 세상이 변해갔다.
집사람은 식당을 접고 손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김장 김치를 담갔고 절임배추도 주문받아 팔았다.
가을이 되면 주문이 왔고, 초겨울이 되면 김치를 치대고,
우리 가족의 나날이 잔잔히 흘러갔다.

2023년
봄, 모여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자식 셋은 모두 결혼하여 손주를 안겼다.
나와 가족으로 연결된 식구가 모두 열네 명
오순도순 정겹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말했다가 정정한다.
‘주위에 좋은 분들 다 두고 먼저 가는 것은 아쉽네’
내 아내, 내 아이들의 옴마, 내 집사람, 내 마누라,
내 동반자, 나의 오래된 연인, 내 삶의 역사, 내 존재의 의미,
그녀 손용순에게 진실로 감사하다.
함께 걸어온 인생길,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우산이 되고 기둥이 되어 준 사람
오래된, 지금도 쓰고 있는, 길고 긴 연애편지 한 통 보내련다.
꾹꾹 눌러 쓴 내 인생의 모든 것 담아
손용순, 진심으로 고맙다.
다음 생에도 나는 그녀를 만나고 싶다.
그 때는 고생시키지 말아야지.
부잣집 마님처럼 떵떵거리고 살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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