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한 지 반세기가 지나 은사 박용두 씨를 만나러 미국에서 온 제자 최명희 씨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고성신문
“선생님의 한 마디가 제 삶에서 희망의 씨앗이 되고 의지의 기둥이 됐습니다.” 1970년대 초, 거제 해성고등학교. “가수나 똑똑해 봐야 만고 소용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똑단발의 여고생은 젊고 열정 넘치는 교사의 말 한 마디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최명희 씨는 지난 1일, 늘 그립고 그리웠던 은사 박용두 씨를 만나러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국하고도 고성군 개천면 산골을 찾았다. 졸업한 후 반세기만이다. “사회과목을 맡아 문제를 몇 가지 냈더니 명희 혼자서 정답을 맞혔습니다. 가능성 있는 아이구나 싶어서 사법시험을 봐도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다고 격려했어요. 그 말이 큰 힘이 됐다고 하니 오히려 제가 고마운 일이지요.” 그 시절 딸들에겐 다들 그랬듯 최명희 씨의 아버지도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거제에서 큰 어장을 하니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딸 공부시키는 것보다 어장 인부들을 부리는 것이 더 큰일이었던 분이다. 공부하고 싶은 딸의 꿈을 꺾는 이야기도 종종 했다. 그 모든 것이 어린 명희에게는 대못이 돼 마음에 콕콕 박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박용두 선생님을 만났다. 그때 박용두 씨는 서울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유신으로 시험이 연기되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혀 포기하고, 교사로서 새로운 꿈을 품고 열정을 불태우던 시기였다. 똘똘하고 야무진 명희에게서 큰 가능성이 보였다. “법대에 가서 사법시험을 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엄한 아버지 슬하에 자라면서 주눅들고 상처받은 제게 선생님의 말씀은 더 큰 울림이 됐습니다. 살면서 자존감이 떨어질 때면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래, 나는 사법시험을 봐도 됐을 사람이야, 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제 꿈을 꺾었지만 선생님은 제 꿈을 키워주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그리웠습니다.” 최명희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속기사 시험에 합격해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원하는 만큼 공부하지 못한 것이 억울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며 힘들고 바빴지만 그럴 때마다 은사 박용두 씨의 말을 떠올리며 힘을 냈다. 인쇄협회의 기자로 일하다가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떠났다. 두 아이를 번듯하게 키워놓고 나니 옛생각은 더욱 새록새록했다.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을 우리 선생님께 보여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하니 그리움은 더욱 커졌다. 그때부터 은사를 찾으려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벌써 반세기가 지났으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친구들과 여고시절 이야기를 하던 중 “박용두 선생님이 그립다” 했더니 건너건너 누군가가 선생님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을 찾았다는 말에 온가족이 환호하며 축하했다. 그만큼 최명희 씨는 간절했다.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으니 은사는 그 시절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최명희가 누군지 한참 설명해야 할 줄 알았는데 은사는 단번에 명희를 알아챘다. 제자는 한 달음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 고성에서도 산중마을까지 첩첩의 길을 달려 은사를 만났다. 젊고 패기 넘치던 은사는 구순이 가까운 나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그 시절 그대로였다. 최명희 씨와 함께 은사를 찾은 동창이자 친척인 최옥미 씨는 은사 부부에게 큰절부터 올렸다. 박용두 씨와 아내 신정순 씨는 제자가 미국에서 찾아온다는 소식에 손수 장만한 찬들로 18첩 반상을 차려냈다. 정을 담은 고향밥상을 맛보여주고 싶었다. 박용두 씨는 제자들 앞에서 외국 초청공연도 다녀왔던 그의 자랑, 톱연주를 하고 신정순 씨는 남편의 연주에 맞춰 수어와 함께 노래하며 오로지 두 제자만을 위한 공연도 선보였다. 은사가 연주하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던 최명희 씨와 최옥미 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의 말 한 마디가 인생에서 힘이 됐다니 교직생활에서 이만큼 보람있는 일이 또 있을까요. 보잘 것 없는 저를 그래도 선생이라고 먼 길 마다않고 찾아와 준 제자가 너무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흔히 할 수 있는 격려였겠지만 제게는 인생의 길잡이가 돼준 격려였습니다. 이만큼 큰 가르침이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 덕분에 제가 당당하게 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반세기를 돌아 다시 만난 은사와 제자의 인연이 봄날 꽃보다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