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빛 춤추는 암전리에 봄이 왔나 ‘봄’
겨울이 채 가기 전부터 벚나무에는 이미 분홍빛이 돌았다. 좀 이르다 싶게 퐁퐁 한두 송이 솟기 시작하더니 봄비답지 않게 세찬 비가 쏟아진 다음날, 벚꽃이 정말 옥수수알이 팝콘이 되듯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와르르 피어났다.
대가저수지 탐방로를 따라 벚꽃그늘에서 보는 암전리는 군데군데 하얗고 푸르고 발그레한 것이,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드디어 봄이 왔나 봄!
최민화 기자 / 입력 : 2023년 0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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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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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채 가기 전부터 벚나무에는 이미 분홍빛이 돌았다. 좀 이르다 싶게 퐁퐁 한두 송이 솟기 시작하더니 봄비답지 않게 세찬 비가 쏟아진 다음날, 벚 이 정말 옥수수알이 팝콘이 되듯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와르르 피어났다. 대가저수지 탐방로를 따라 벚꽃그늘에서 보는 암전리는 군데군데 하얗고 푸르고 발그레한 것이, 그야말로 꽃대궐이다. 드디어 봄이 왔나 봄!
# 군수님도 동네에서 청년이라고예? 원래 가동면의 한 지역이었던 암전리는 ‘엄곡’과 ‘마전’이 합쳐진 마을이다. 대가면이 대둔면과 가동면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에는 태봉산 아래 골이 깊고 물이 맑은 이 마을을 엄곡(嚴谷)이라 불렀다. 엄곡은 상곡과 중곡, 하곡, 부수곡으로 나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되면서 엄곡과 마전을 합해 지금의 암전리가 됐고, 이후 대가면에 편입됐다. 암전리에 자연마을이 생긴 것은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 앞 대가저수지는 일제강점기에 생겼다고 하니, 그 전에는 농경지가 모두 천수답이거나 암전천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쌀농사를 주로 지었지만 마을 주변이 온통 산이라 밤이나 감 같은 과일농사를 짓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예전에는 축산농가도 몇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외지에서 들어온 이들이 부추 같은 채소 하우스를 하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큰 일거리가 없어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가곤 한다. 읍과 가까워 젊은 사람들도 있을 법한데, 이상근 군수도 동네에서는 청년이라 하니 암전리도 초고령사회다.
# 암전리에서는 인물자랑 절대 금지 이상근 군수 이야기가 나왔으니 인물 이야기를 해보자. 요즘 마을 최고 인물은 누가 뭐래도 이상근 군수다. 이상근 군수의 형님은 제4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이근식 전 장관이다. 이상근 군수는 군수가 되기 이전 대흥초등학교와 고성중학교를 다녔고, 청년시절 일가를 이뤄 암전리에 살면서 지금까지도 고향을 지켰다. 군의원을 거쳐 이제는 군수로서 고성군 살림을 산다. 동네에서는 청년 축에 드니 군수 내외는 마을 일도 살뜰히 살핀다나. 늘상 봐온 이라 군수라고 해서 별다를 것도 없이 늘 함께하는 동네사람이다. 대가저수지를 바라보는 집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기와집이 한 채 있다. 지난해 6월 별세한 무학그룹 최위승 회장이 별장으로 쓰던 집이다. 최위승 회장은 고향을 유난히 아꼈다. 최 회장은 가난 때문에 배우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장학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가난한 집안형편에 공부를 포기하고 17살에 집을 나서며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으리라 했다는데, 이렇게 고대광실을 지어두고 고향을 오갔으니 소년 시절 목표를 진작 이뤘다. 의료법인 나라의료재단 최영호 이사장도 암전리 출신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암전리 자연을 놀이터 삼아 씩씩하게 뛰어놀던 소년은 의료법인을 이끄는 재단 이사장이자 나눔을 실천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강직한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최영호 이사장은 동네분들 건강 챙기라며 마을어귀 공원에다 체육시설도 들여놔줬다. 마을 주민들은 수시로 오가며 팔도 쭉쭉 뻗고 굳은 관절도 움직이며 운동할 수 있게 됐다.
# 냉이 캐는 정씨 할매, 건강하이소 타박타박 걷다 보면 백로를 쉬 만난다. 유려한 몸매에 크고 하얀 날개를 휘적이며 나는 백로는 암전리 대밭에 둥지를 틀었다. 늦봄이면 대나무가 휠 정도로 많은 백로가 암전리 대밭을 찾아든다. 그 풍경이 마치 수묵화 같다. 봄볕이 등을 간질이는 걸 느끼며 마을을 걷는다. 최위승 회장의 별장을 기웃거리는데 밭을 매던 아낙이 자꾸만 힐끔거린다. 낯선이가 불안한가 싶어 웃으며 인사했더니 “어데서 왔소?”한다. 암전리 소개하려고 신문사에서 왔다 했더니 “이 동네는 인물이 참 많은 동네”라는 답이 돌아온다. “아이고, 할매 이름 알아서 뭐할라꼬. 안 가르쳐주끼다. 정가다 정가. 젊을 때는 일도 참 쎄가 빠지 마이 안 했나. 시접은 올매나 살았는고 모린다. 시부모 모시고, 아는 줄줄이 낳아 키우고, 농사 짓는다꼬 맨날 이리 밭에 엎디리 있제, 누에도 치야 되제, 질쌈도 해야제. 아이고야, 우찌 그리 살았으꼬. 그때는 고마 다 그리 산께 그런갑다 하고 살았다 아이가. 지금 겉으모 이 좋은 세사 내도 내 나래로 살아보낀데.” 그렇다고 고되기만 한 삶은 아니었다. 정씨 할매네 5남매는 교사가 둘이나 있고, 회사 이사 출신 아들도 있고, 외국에 자리잡고 사는 자식도 있다. 손자들도 머리가 어찌나 좋은지 콤퓨타 프로그램 만드는 손자도 있고, 똑똑하기가 말할 수가 없단다. 말씀하시면서도 호미를 든 손은 쉬지 않으신다. 뭘 캐는 거냐 하니 냉이를 캔다고, 원래 여기가 들깨밭인데 밭 갈기 전에 냉이를 한 번 캐지 않으면 씨앗이 떨어져 냉이 천지가 된다 한다. 그럼 그냥 두고 나중에 기계로 한 번에 갈면 되지 않느냐 하니 이렇게 해둬야 기계 운전하는 사람도 편하고,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소일 삼아 하기 딱 좋다 하신다. “기자는 오데 사노?” 하시기에 아버지 함자를 말씀드리니 마치 아들 소식을 들은 것마냥 반가워하신다. 근방 출신인 데다 오랫동안 근처 동네에서 직장생활을 하신 덕에 모르는 분이 없어 이럴 때는 참 편하다. 정씨 할매 얼굴에 꽃이 활짝 폈다. 알고 보니 정씨 할매의 남편 되시는, 돌아가신 할배가 전주 최씨라 한다. “전주 최가 딸들이 참 똑뚝고 인물도 참 좋다 아이가. 야무치거든. 아들 장가가기 전에 메누릿감을 내가 골라보까 싶었는데 저 아가씨 인물도 좋고 키도 크고 똑뚝고 맞춤 맞다 싶어가 물어보모 틀림음시 최가라.” 반가워하는 정씨 할매께 “옴마야, 죄송시러버서 우짜긋슴미꺼. 저는 전주최가라도 인물도 이렇고, 입만 똑뚝고, 키는 똥자루만하고 집안똑디인 거로예”했더니 배꼽을 잡으신다. 할매, 웃응께 60년 전 새색시 때 이랬긋다 싶네예. 맨날 웃음서 건강하게 지내시모 좋긋습니더.
# 근심없는 집, 봄날의 시인들 마을과 대가저수지를 나누는 길을 따라 걷다가 골목 하나를 선택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지만 깔끔하게 단장된 모습이 전원주택단지인가 싶을 때쯤, 대문간에 커다란 돌덩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인돌이다. 암전리에는 너댓 기의 지석묘가 있다는데, 그 중 일부를 만난 것이다. 고인돌이 있단 건 선사시대 이전 이미 사람이 이 근방에 살았다는 것 아닌가. 선사인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쉽거나 정착해 농사지을 수 있어야 했을 텐데, 그리 보면 암전리는 아주 풍성하지 않아도 노력하면 먹고 살 걱정은 없었겠지. 얼마 걷지 않아 도란도란 속닥이다가 웃다가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무우정, 근심 없는 집이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폐가는 강미혜 씨의 손길로 자그마한 다원이 됐다. 어차피 돈 벌자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 다도를 알리고 나누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강미혜 씨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지금은 문인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무우정을 찾은 날도 고성문인협회 손수남 회장이 찾아와 도란거리던 중이었다. “근심거리가 있다가도 이렇게 봄바람이 살랑거리면 싹 사라져요. 읍이랑 얼마 멀지도 않은데 신기하죠. 이 동네는 공기도 달아요.” 암전리에 내린 봄볕은 소녀 같은 두 시인의 얼굴을 간질이고, 냉이를 캐는 정씨 할매의 굽은 등도 다독이고, 동구나무에 묶인 백구의 반짝이는 털도 쓸고 가 마침내는 대가저수지에 윤슬을 만들어낸다. 평화로운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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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화 기자 /  입력 : 2023년 0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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