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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녀들의 책가방을 열어본 적이 있는가?
몇 권쯤의 교과서가 있다고 알고 있는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가진 적은 없는가?
많다. 그리고 교과서라는 것이 너무 두껍다.
일 년 동안에 이렇게 많은 것을 정말 다 배우고 있을까 의아스럽다.
부모님들이 학교에 다닐 때와 달리 세상이 급변했다고 하더라도 정도를 넘어선다.
논란의 시작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1월 12일 공청회를 열어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이후 이번 개정안에 관한 논의가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고 있다.
교육 관련 단체들과 교사,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각자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을 뿐, 정작 교육과정의 개정 원인이 무엇이며 초·중·고 교육과정이 근본적으로 어떠한 목표를 지녀야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省察)은 그 어디에도 없다.
우선 이번 개정안의 내용부터 짚어보자.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개정되는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이 반드시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은 현재 6개에서 8개로 2과목 늘어난다.
과목군별로 1~2 과목 이상은 반드시 이수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는 과학·기술군에서 1과목, 예·체능군에서 1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면 되지만, 2012년부터는 수학·과학군에서 1과목, 기술·가정군에서 1과목, 체육군에서 1과목, 음악·미술군에서 1과목을 이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 개정안에 반발하는 이유
이렇게 교과목이 늘어나는 이유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이라는 이상적인 교육이념이 그 바탕에 있다.
우리의 아이들을 지·덕·체(智德體)를 모두 갖춘, 어느 것 하나 지우침 없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교육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 이념이 옳고 좋아도 현실에 부딪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발은 클 수밖에 없다.
지금도 수업일수가 벅찬데 과목 수를 늘린다면 그에 따른 학습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외국의 사례를 들며, 예체능 과목을 필수과목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체능을 비롯한 일부 교과의 지식은 일상 생활에서 쓰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시험 때 외우고 나면 바로 잊어버리기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과목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학부모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개정안이 교사들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에 발표된 개정안을 보면, 백 년을 바라보는 국가 교육과정이 교사 수급 위주로 교과목의 존폐와 교과목의 비중을 지켜주는 일에 치중했다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부분도 있다.
이렇게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자 당연하다는 듯이 일부 언론은 이번 개정안을 둘러싼 왜곡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 문제의 사달의 뿌리를 교사들의 이기적 집단주의에 두고 교사들을 매도하고 있다.
예체능 교사들의 이기적인 압력으로 인해 개정안에서 예체능 교과가 확대되었고 이로 인해 '불필요한' 내신 부담이 커지고 사교육도 확대될 것이라며 여론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이런 일방적 여론몰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교사로서 전문 교과의 확장 요구는 당연한 것으로 교육과정 개편에서 짚어야 할 사안(事案)이다.
문제는 일부 교과 확장에 따른 지엽적인 문제가 아닌 교육과정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이란 교육 활동으로 가지게 되는 모든 학습 내용이나 생활 경험의 조직을 가리킨다.
이는 교과에 관한 활동뿐만 아니라 현장학습·수학여행·친구와의 토론 등 생활경험이 모두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8·15광복 후 미군정청 학무국에서 교과서를 편찬하여 쓰던 교수요목 시대 이후 7번의 개정을 거쳐, 1997년에 21세기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며 살아갈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을 육성하기 위해 제7차 교육과정을 제정하였다.
그런 중에도 주요 외국 중·고교 학생들의 수강 교과목이 10여 개인데 비해 20여 개를 넘는 한국 학생들의 교과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번번히 실현되지 못하고 다음 개정안이 나올 때까지 미루어졌다.
그러나 막상 개정안이 나올 때마다 과목 수는 도리어 더 늘어나고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교과라는 것이 오랜 시간을 두고 기획되고 준비되는 것이 아니고 즉흥적이고 지엽적(枝葉的)이다.
어린 여학생 한 명이 무절제한 이성 교제로 아기를 가지면 갑자기 ‘성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IMF 이후 부르짖은 것이 ‘경제교육’이다.
최근 일본의 독도 망언 및 중국의 ‘동북공정’이 나온 후 ‘역사교육’이 화두(話頭)가 된다.
그러면 여론의 화살은 교육의 부재(不在)로 몰아간다.
‘교육은 무엇을 했느냐?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시켜서야 옳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일부 단체나 개인의 검증되지 않은 소신이 개입하면 신설(新設)되는 교과의 중요성을 떠나서 그때그때 필요하면 교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과수가 줄어들기보다는 늘어나고, 혹은 두루뭉실하게 뭉쳐두었다가 다시 분리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인교육은 실종되고 입시교육만 남은 교육과정
주5일 수업제의 시행과 급변하는 사회상(社會相)을 담기 위해 교과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7차 교육과정 수립에 참여했던 필자는 이미 7차 교육과정이 실패할 것임을 예견한 바 있다.
7차 교육과정의 뼈대를 만들고 있을 때 5일제 수업이 준비되고 있었고 당연히 그에 맞추어 준비되어야 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부담이 갈 정도로 많은 교과목과 수업량까지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그리고 막상 5일제 수업이 시작되자 사달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과중한 교과와 수업을 해결하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 해야 할 수업만큼 다른 날로 옮겨 시행해야 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불만이 생겨났다. 교과와 수업 시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대두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인교육을 표방(標榜)한 7차 교육과정은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 시행착오를 겪었다.
국민공통기본교과의 무리한 설정과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 형식적인 선택과목의 확대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크게 증가시켰으며 지식 위주의 입시교육만을 확대 강화시켜 왔다.
또한 인성교육의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웠던 재량, 특별활동은 주5일 수업이 시작되자 일반교과시간으로 바뀌거나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무리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지금까지 일곱 번에 걸쳐 전면적, 주기적, 일시적으로 개정되었으나, 철저한 평가 연구에 기초하지 않아 설계가 허술하여 작금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스스로 불렀다.
시대의 필요에 따라 교과의 생성소멸이 다반사로 이루어졌다.
고른 영양 보충을 위해 식탁 위에 차려둔 음식을 모두 먹으라고 하면 아이들은 소화시켜내지 못한다.
도리어 과식(過食)으로 건강을 해칠 뿐이다.
전인교육(全人敎育)도 좋지만,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에 있어 교과와 수업시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다.
전인교육의 모든 과정을 학교교육에서 떠맡는 데서부터 소화불량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진만논설위원(철성중교사) 기자 /  입력 : 2007년 0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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