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백영현 시인·고성문인협회 부회장 |
ⓒ 고성신문 |
|
며칠 전에 아는 분과 읍내 분식집에 갔다. 김밥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아이는 색이 바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였고, 사내아이 둘은 몸에 조금 큰 점퍼 차림의 유치원생이었다. 아마 방학을 맞아 부모가 없는 사이에 끼니를 때우려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셋이서 김밥과 어묵을 시켜 이마를 맞댄 채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평화가 깨지는 일이 일어났다. 의자와 식탁이 자기 키에 맞지 않은 막내가 어쩌다가 어묵 그릇을 엎고 말았다. 이 일로 테이블이며 바닥에 어묵이 쏟아져 그들끼리 수습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내 우려와는 달리 여자아이가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가 물수건으로 침착하게 주변 정리를 하고 막내에겐 ‘괜찮아’하고 어른처럼 말했다. 나를 비롯한 어른들은 구경만 하고 미처 도와줄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분식집은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평화는 다시 깨졌다. 우리가 김밥을 다 먹고 일어설 때쯤, 이번에는 막내가 물컵을 여자아이 쪽으로 엎지르는 사고를 냈다. 그 바람에 여자아이 옷이 다 젖었다. 그 순간 분식집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막내가 크게 혼날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짐작은 빗나가고 말았다. 여자아이는 식당을 한번 휘 둘러보고 손님들한테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으나 아무일도 없다는 듯 냅킨을 몇 장 뽑아 자기 옷과 흥건한 식탁을 닦았다.
입술을 다문 주인 여자의 눈길을 마주할 일도 없이 지전 몇 장을 쥐어주고 분식집 문턱을 넘어선 나는, 그 삼형제의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렸다. 어른도 본받아야 할 침착한 그 여자아이는 “틀림없이 소녀 가장일 거야, 저처럼 어른 같이 행동하는 걸 보면.” 그러면서도 방학에 부모가 없는 틈을 타 끼니를 해결하려 온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싶었다.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앞으로 두 달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부모들은 변함없이 아침 일찍 일터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엄마가 일터에 가기 전에 조곤조곤 타일러 놓고 가겠지만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하겠는가? 편의점이나 분식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불규칙한 생활이 두 달간 이어질 것이다.
탄수화물 위주의 편식이 비만으로 이어져 아이들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인 학교 돌봄 교실이 운영 중인 줄 알지만, 학생들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는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어른들은 긴장해야 한다. 행정과 교육이 짜놓은 관치 말고, 우리 어른들의 도움과 관심의 손길이 필요하다.
내 ‘알바 아니다’ 이런 자세는 사회를 어둡고 차갑고 험난하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안타깝게 여기고 작은 손이나마 내밀어주는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밝아지고 변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도움만으로도 어깨가 펴질 것이다. 내 자녀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각자 아이들과 스치는 공간에서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그런 따뜻한 사회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밝고 맑은 영혼을 가진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