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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동숲 열린한마당에 참석한 박방희 선생 |
ⓒ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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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제 첫 단추를 꿴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글로 풀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30년은 족히 쓸 수 있는 주제와 소재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으니 는 행복한 글 부자임에 틀림없다. 오로지 열심히 쓸 일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젊은 시절 좋아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 한 구절을 다시 한 번 읊으며 끝맺고 싶다.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있다.
’마지막
순간
저를 불사르며
지는
별
가는 길이 참 밝다.
-별똥별.
-2015년 《열린아동문학》겨울호(통권67호), ‘이 계절에 심은 동화나무’에서 박방희 선생이 쓴 ‘내 동시관과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비행기가 하늘에
쟁기질을 하며 길게 날아갔다.
무슨 씨 뿌렸을까?
구름이 도톰하게 이랑을 덮었다.
<하늘 농사 1>로 시작한 이 글에서 섬광처럼 빛나던 한 시절을 이야기하던 선생이 지난 12월 6일, 그 30년을 채우지 못하고 별똥별처럼 세상을 떠났다. 1946년 경북 성주 출생. 향년 76세. 50세 이후를 인생의 후반으로 생각하고, 늦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60에 각오를 새롭게 한 선생은 자타가 인정할 만큼 열심히 썼다.
갑년인 2006년 새해 아침, 케이크 위에 촛불 하나 달랑 켜놓고 한 살로 시작한 선생은 미완성 원고와 노트를 들고 출가하는 심정으로 집을 떠났다. ‘말의 사원(言寺)’으로 출가한 것이다. 그 후 10년. 선생은 2007년 제5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신인상에 당선되고 2008년 제25회 새벗문학상을 받았다. 제3회 불교아동문학작가상도 받고, 한 해 세 번이나 연거푸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2009년 첫 동시집 《참새의 한자공부》를 펴내고 2010년과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2010년 두 번째 동시집 《쩌렁쩌렁 청개구리》를 펴내 제20회 방정환문학상을 받고, 세 번째 동시집 《머릿속에 사는 생쥐》도 펴냈다. 2012년에는 내 번째 동시집 《참 좋은 풍경》을 펴내 제11회 우리나라 좋은 동시문학상을 받고, 첫 시조집 《너무 큰 의자》도 펴냈다.
2013년에는 다섯 번째 동시집 《날아오른 발자국》을 펴내 제23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고, 2014년에는 여섯 번째 동시집 《우리 집은 왕국》과 일곱 번째 동시집 《바다를 끌고 온 정어리》를 펴내 올해의 좋은 동시집으로 뽑혔다. 그리고 2015년에는 세 번째 시집 《정신이 밝다》와 《박방희동시선집》, 여덟 번째 동시집 《하느님은 힘이 세다》를 펴냈다. 그리고 동시 <함께 쓰는 우산>이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실로 섬광같은 10년의 글쓰기였다. 자연을 종교로 삼고 시오리길을 걸어 다닌 중학교 시절부터 사시사철 하루하루 변하는 자연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마음으로 시를 썼다는 박방희 선생은 ‘동시야말로 문학의 시작이자 인간의 원초적 정서를 담아내고 표현하는 가장 고급한 문학’이라 정의하며 ‘동시야말로 어린이와 어른을 아우르는 국민문학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동시로 어린이의 마음을 노래하고 어린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듯 소설을 통해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더니 겨우 《달로 가는 남자》 한 권 소설집을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
동향의 중학교 동기인 문인수 시인의 표현대로 선생은 ‘제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을 감추고, 아직도 청춘의 숨을 쉬면서 성주 가야산 아래로 들어가 있다’더니, 아직도 푸릇푸릇한 청바지를 입고 가야산보다 더 깊은 우주 속으로 들어가 끊임없이 새로운 동시를 쓰고, 풀지 못했던 한을 소설로 풀어낼 것이다. 나머지 30년이 아직도 까마득하기에. |